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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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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공동체

2024. 2. 4.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2. 04. 주일오전예배
본문: 사도행전 13:1-3
제목: 성령 공동체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예루살렘 밖에서 이방인 성도에 의해 세워진 이방인들의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성령사역을 가장 잘 구현해 나가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안디옥 교회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성령으로 사역하는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함께 도전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를 보면 '선지자들' '교사들'로서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초빙하여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을 보면(참고, 11:26), 성령 공동체는 우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2. 동역 공동체.
교회 구성원들이 지리적으로나 계층적으로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에 의해 바울도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 다양성이 있지만 성령으로 하나된 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다양성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3. 순종 공동체.
기도 가운데 임한 성령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 가르침 받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이나(참고, 11:26),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에 따라 예루살렘에 부조를 보내는 것을 보면(참고, 11:28-29), 성령과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4. 은혜 공동체.
안디옥 교회 소문을 듣고 첫 방문에서 바나바가 본 것은 '하나님의 은혜'(11:23)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선교사로 파송받아 사역하다가 다시 돌아갈 때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으로 부릅니다. 기도와 말씀, 사랑과 헌신 등으로 가득한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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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꿈꾸는 세상

2024. 1. 28. 1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1. 28.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16-21
제목 :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베드로는 성령의 사역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어쩌다 생긴 일이 아니라 구약 요엘서에 기록된 말씀의 성취임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참고, 욜2:28-31). 즉,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것이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요엘에게 성령에 대한 예언서를 주셨고, 수백년 뒤 오순절에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1. 성령으로 거듭나는 세상.
성령을 모든 '육체(헬: 싸르크 = 살, 고기, 참고, 히:바싸르)'에 부어주신다는 것은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성령으로 만들듯 제2의 인간 창조를 다시 부어주심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탄에 의해 잃어버린 은혜와 축복을 회복하는 성령의 재창조를 꿈꿉니다.

2. 성령으로 차별없는 세상.
자녀(헬: '딸'), 늙은이, 젊은이, 남종, 여종은 신구약 시대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말합니다. 경제적 계층적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달리 하나님은 성령으로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주어진 신분과 계층에서 살지만, 모두가 성령으로 기쁨과 감사,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세상입니다.

3. 구원으로 사는 세상.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하여 요엘서에서 좀 더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구원이란 '피한 자', '남은 자', '부름받은 자'입니다(참고, 욜2:32). 하나님은 세상을 평화로운 상태로 만들기보다는 문제 속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구원의 삶을 살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은 성령과 더불어 구원의 삶을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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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과 베드로가 만나다

2024. 1. 21.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1. 2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다니엘 6:3-4
제목 : 다니엘과 베드로가 만나다

 

 

'성령충만한 삶'은 오순절 사건처럼 어떤 은사나 능력이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아,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에서 가장 성령충만한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그는 유대인 포로였음에도 바벨론 제국에서 세 왕을 거치면서도 승승장구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지칭하여 '마음('루아흐')이 민첩한 자', '거룩한 영을 가진 자'(4:8-9, 5:11)라고 부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다니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1. 사소함의 중요성.
1장에서 어린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채식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어린 나이에 먹거리가 중요한 요소일 텐데도 먹는 것으로 신앙의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대단한 기적이나 이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또한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평소 보지 못했던 작은 부분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2. 신실함의 능력
성경에서 '믿음'을 표현할 때 구약에서는 '에무나', 신약에서는 '피스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똑같이 '믿음'. '신실', '충성'을 뜻합니다. 어린 다니엘이 채식을 선택한 것은 한순간의 결정이 아니라, 그 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신앙의 삶이 바벨론에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은 삶으로 인도합니다.

3. 단순함의 신비.
다니엘이 마주한 삶의 문제들은 다양했지만, 그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문제의 종류에는 상관없이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단순하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기도로 단순한 삶을 삽니다. 그 단순함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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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2024. 1. 14. 1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1. 14.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4:15-17
제목 :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유월절 만찬에서 행한 마지막 가르침인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은 문맥상으로 14장 31절에서 마칩니다('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과도 같은 가르침은 14장의 내용입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길, 진리, 생명'에 관한 말씀을 하셨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간절히 전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시나요?

1.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8절, 22절).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기에 자신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하셨지만, 빌립은 '복잡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그냥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8절)라고 반문합니다. 이런 태도는 빌립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성도의 속마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처럼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설명(9-14절, 23-24절).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으라(11절)고 하시면서 믿는 자들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하도록 하나님께로 간다(12절)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구하든지 행하시겠다는 약속을 두 번이나 하십니다(13, 14절). 이는 승천하실 예수님이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3. 마지막 유언(15-17절, 25-26절).
15절은 명령문이 아니라 조건문이어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다'의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떠나지만 대신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참고, 26, 16:7). 여전히 제자들은 부족해도 오실 성령이 그 부족함을 채워 능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킬 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살려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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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주시는 목적

2024. 1. 7.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1. 7. 주일오전예배
본문: 민수기 11:25-29
제목: 성령을 주시는 목적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임했고, 신약시대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면서 또한 잘못된 말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최초로 다수의 일반인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성령에 대한 가절함이 생겨나길 기대합니다.

1.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모세는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다며 죽기를 구합니다(15절). 이에 70명의 장로를 세워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7절).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는 목적은 개인적인 유익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겨험하려면 우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면 됩니다.

2. 하나님을 중거하기 위해.
성령을 경험한 70명의 장로에게 나타난 현상은 '예언'입니다. 성경에서 '예언'은 미래를 미리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의 뜻을 깨닫고 그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임하십니다. 단순히 성령은 어떤 능력의 수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증거하고 드러내느 하나님의 영입니다.

3. 삶을 의미있게 하기 위해.
여호수아는 모세와 함께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던 두 사람에게도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화를 냅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히려 여호수아를 야단칩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획일적으로 일하는 분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분이기에 작자의 삶과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의 삶이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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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Veritas, Vita

2024. 1. 7. 11: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31.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4:6
제목: Via, Veritas, Vita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 진리, 생명'을 단순히 성경 속의 한 구절로 머물지 않고 지금도 사회의 각 분야에 차용되고 있습니다.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은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복음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고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삶의 방향과 자세를 확고히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Via, Veritas, Vita.
라틴어로 Via(길), Veritas(진리), Vita(생명)는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 익숙해진 용어가 되었습니다. '경유지(Via)', 대학교의 표어로(Veritas), 건강한 생활로(Vita) 폭넓게 사용되지만 정작 그 참 의미는 사라지고 단순히 시대적 필요에 따른 용어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사람들은 역적 진리를 갈망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 영적 갈급함.
살아가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시간에 쫒겨 살아가로, 진리를 배운다고는 하지만 정작 얄팍한 '기술'하나 배워 삶의 전쟁터로 내몰리며, 삶을 말하지만 정작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현실을 무기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 현대인입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능력의 원천인 줄을 모른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픕니다.

3. 우리가 걸어가는 길
세상은 진리를 찾아 헤매지만, 우리는 이미 진리를 찾아 '그 진리'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인생이 아니라 이미 찾았음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어떤 아쉬움도 후회도 없이 그저 한 걸음씩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알게 하는 바로 '그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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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시다(34)

2023. 12. 29. 2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29. 금요예배

본문: 왕상 12:12-14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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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명, 새로운 지평이 열리다

2023. 12. 24. 12:3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14.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4:1-6
제목: 그 생명, 새로운 지평이 열리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대사건입니다. '그 진리'이신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 사는 것이 진정한 '그 생명'임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생명'은 단순히 주어진 삶을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걷는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 생명'은 인생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생명력입니다.

1. 자기 너머의 삶
1-4절에서 계속 반복하는 단어가 "너희"입니다. 죽음의 고통을 이긴 후 얻게 될 자신의 영광을 말하기보다는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열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그 생명'은 자신을 넘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며 행복한 삶을 누리게 만듭니다. 자신의 것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이웃을 배려하는 삶이 바로 '정의'(미슈파트)입니다.

2. 인생 너머의 삶.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예수의 '그 생명'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고, 섬기게 하고, 소망하게 하는 '공의(쩨데크)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3. 한계 너머의 삶.
죽음을 누 앞에 둔 예수님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이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그 생명'이 어떤 한계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한계 너머의 삶으로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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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시다(33)

2023. 12. 22. 22:3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22. 금요예배

본문: 사 2:4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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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리, 가까이 있음에 놀라다

2023. 12. 17. 12:22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17.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4:6-7
제목: 그 진리, 가까이 있음에 놀라다.

 

 

오늘날의 사고체계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는데 이성과 인간중심의 헬레니즘과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를 근간으로 감성과 신 중심의 헤브라이즘이 그것입니다. 성경의 저자나 독자는 모두 헤브라이즘 사고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그 진리'란 헬레니즘적인 철학이나 탐구적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진리'는 일상적이며 경험 가능한 것이며 누구나 자기 삶에서 터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진리'라는 의미는?

1. 원어적 의미에서 '그 진리'
'진리'의 히브리어는 '에메트'입니다. 이 단어는 '진실' '신실' '진리'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에서 파생된 단어가 '아멘'입니다. '에메트'는 하나님의 성품 중의 하나로서 예수님을 지칭한느 용어이기도 합니다(요1:14, 계3:14, 19:11). '에메트'는 히브리어 자음의 첫 자(A)와 중간(M), 그리고 맨 마지막(T)으로서 헬라어의 알파와 오메가 되는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2. '그 진리'인 예수님이 곧 하나님.
3년 반 동안 함께해온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 진리'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신분과 정체를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여인처럼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알게 되면 얽매여있는 모든 근심과 상황에서 자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 '그 진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3. '그 진리', 그렇게 가까이?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님은 너무나 익숙한 분입니다. 그러나 익숙한 만큼 예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친히 삶으로 보이셨고, 가르치셨고, 선포하셨습니다. 더 이상 어떤 진리나 원리를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계신 예수님을 알아가며 친밀해진다면 그것이 진리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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