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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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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시다(31)

2023. 12. 8. 22:29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08. 금요예배

본문: 왕상 1:6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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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

2023. 12. 3. 12:34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03.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4:6
제목: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고, 자신의 원함을 이루기 위해 초월적인 분의 도움을 받기 위함도 아니고, 현실 속에서 보이는 성공이나 형통함이 목적이 아니라면, 왜 굳이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유익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신앙의 이유와 목적을 다시금 확인해 봅시다.

1.  길.
인생에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과 방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 삶에서 의미를 찾고 행복을 누리며 살까요? 오대사회에서 '길'이란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방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따라 걷는 인생길이 가장 의미있고 행복을 누리는 방법임을 말씀합니다.

2. 진리.
진리(Truth)는 사실(Fact)을 기초로 변하지 않는 원리나 이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항상 '사실' 너머의 의미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사실'에 연연하지 않고 더욱 차원 높은 의미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깨닫게 하여 진정한 자유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3. 생명.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란 육체적으로 살아있음의 의미도 아니고 죽어서 얻는 영원한 생명도 아니라,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살아가는 상태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생명이란 진리의 길을 걷는 결과물입니다. 이런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우리의 인생을 진정한 생명으로 살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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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시다(30)

2023. 12. 1. 22:35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2. 01. 금요예배

본문: 창 25:23-25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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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착각

2023. 11. 26.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26.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17:15-19
제목: 아홉 명의 착각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 순종함으로써 치료받았지만, 그중에서 단 한명만이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는 내용입니다. 고침받은 나머지 아홉은 자신들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할까요? 물론 그들도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고쳐주었다고 여기고 간증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나아가 간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다가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에수님은 단 한 사람에게만 믿음을 인정하셨을까요?

1. 아홉 명이 가진 착각.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격리된 나병환자들이 예수를 향해 간절히 구하고, 순종하기 쉽지 않은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결국 고침받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믿음의 결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보인 믿음의 행위들은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행동들일 뿐입니다. 믿음이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2. 한 사람이 가진 믿음.
같은 기적을 경험한 열 명중의 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성전이나 제사장에게 가기보다는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와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자신을 고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행동입니다. 그는 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통해 좀 더 나은 삶을 찾기보다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3. 예수님이 찾으시는 믿음.
예수님은 기적을 경험한 열 명 중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돌아온 한 사람에게서 구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음과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구원에 합당한 믿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내 믿음에 대한 주변 상황의 반응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대한 내 믿음의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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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시다(29)

2023. 11. 24.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24. 금요예배

본문: 창 18:16-19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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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믿음

2023. 11. 19.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7:7-9
제목: 이만한 믿음

 

 

공생애 사역 초기에 아직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해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8:26, 14:31)라고 하셨지만, 이방인인 백부장을 향해서는 "이만한 믿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믿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백부장이 가진 믿음이 칭찬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이만한 믿음"인 이유를 찾아봅시다.

1.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
예수님을 향해 "주"라고 부르며 대하는 태도가 로마의 엘리트 장교가 식민 지배하는 유대인 청년을 대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의 소뭄을 듣고' 예수님의 정체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에서 바른 지식으로 말미암은 합당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큰 믿음이란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으로 바로 '공의'입니다.

2. 이웃을 대하는 태도.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겸손하게 간구하는 것은 자기의 종의 치유를 위함입니다. 당시 종은 한낱 재물에 불과하던 시대에 종의 질병으로 예수님을 찾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믿음이란 '자기'를 넘어 '이웃'으로 영향력이 확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웃으로 확대되는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3. 큰 믿음이란?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서 특별한 행위를 함으로 칭찬받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전해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통해 정체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경외함으로 섬기며, 자신을 넘어 이웃을 향한 특별한 사랑과 섬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안에 거하며 '자기'를 넘어 이웃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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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시다(28)

2023. 11. 18. 20: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17. 금요예배

본문: 마 24:15-25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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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추수감사절

2023. 11. 12.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12.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계시록 14:14-16
제목: 예수님의 추수감사절

 

 

마지막 때 구원받을 자들을 모으시는 예수님("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을 낫을 들고 추수하는 농부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려놓고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추수 때까지 사랑으로 헌신하다가 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맞이하는 추수감사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예수님의 추수감사절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 추수의 결실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삶의 여러 결실에 대한 감사의 날이지만, 예수님의 추수감사절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날입니다. 가라지 속에서 자라는 알곡(참고, 마13:24-30)을 구별하여 곳간에 들이고 기뻐하듯,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온 성도들로 인해 기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의 원천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2. 믿음은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밭에 씨를 뿌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다가 나중에 결실하듯, 우리의 믿음도 여러 고난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추수의 때는 바로 그 믿음의 결실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믿음의 좋고 나쁨이나 주변 환경의 좋고 나쁨보다 각자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가입니다.

3. 우리를 추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을 금 면류관을 쓰고 구름 위 보좌에 앉으신 왕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왕의 추수에는 일꾼들이 동원되는데 요4:38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추수꾼으로 삼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 말씀의 씨를 뿌리고 잘 보살펴 알곡 신앙으로 성장시켜 추수때에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는 일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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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시다(27)

2023. 11. 10. 22:35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10. 금요예배

본문: 딤후 3:1-5

제목: 이렇게 기도합시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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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한 생활

2023. 11. 5. 12:3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05. 주일오전예배
본문: 빌립보서 1:27-28
제목: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황의 아버지 빌립왕이 세운 도시로서, 로마제국의 퇴역한 군인들을 이주시켜 세금을 면제시키고 시민권을 부여함으로 그들의 헌신에 보상하고 주변 이방 민족에게 로마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시로 재건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서신서와는 달리 빌리보서는 군사적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헬: '폴리튜오마이')이 어떤 모습인지를 실감 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1. '한마음으로 사서'('스테코')
'스테코'라는 말은 전쟁에서 상대방에게 밀리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뒤로 물러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마음'(성령) 안에서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의미에 따른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참고, 빌4:1, 살전3:8). 로마제국의 숱한 전쟁을 경함한 교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2. '한뜻으로 복음이 신앙을 위하여 협력'('쉰아들레오')
'쉰아들레오'는 함께 힘을 합쳐 전쟁을 치른다는 의미로 '아곤'(씨름, 시합. 참고, 빌1:30)에서 파생되어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서 단 한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자체를 영적 전쟁으로 인식하고 전쟁에 경험 많은 교인들에게 혼자의 힘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역설하면서 신앙의 협력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두려워하지 않는다'(프튀로')
'두려워하다'는 의미보다는 '깜짝 놀라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언제 어디서 적군이 나타나더라도 놀라울게 없듯이, 대적하는 사람이나 일이 발생한다고 놀라지 말고 신속히 대처하라는 의미입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산 보상으로 로마 시민권을 받고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나라 시민으로 산다는 의미는 더 확실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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