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소망지기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주일예배 말씀'에 해당되는 글 673

  1. 2023.11.26 아홉 명의 착각
  2. 2023.11.19 이만한 믿음
  3. 2023.11.12 예수님의 추수감사절
  4. 2023.11.05 복음에 합당한 생활
  5. 2023.10.29 말씀을 가로막는 요인들
  6. 2023.10.1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7. 2023.10.08 교회와 직분
  8. 2023.10.01 교회와 장로
  9. 2023.09.24 고향 가는 길
  10. 2023.09.17 그리스도를 보기 시작할 때

아홉 명의 착각

2023. 11. 26.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26.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17:15-19
제목: 아홉 명의 착각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나 순종함으로써 치료받았지만, 그중에서 단 한명만이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는 내용입니다. 고침받은 나머지 아홉은 자신들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할까요? 물론 그들도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고쳐주었다고 여기고 간증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나아가 간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다가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에수님은 단 한 사람에게만 믿음을 인정하셨을까요?

1. 아홉 명이 가진 착각.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격리된 나병환자들이 예수를 향해 간절히 구하고, 순종하기 쉽지 않은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결국 고침받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믿음의 결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보인 믿음의 행위들은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행동들일 뿐입니다. 믿음이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2. 한 사람이 가진 믿음.
같은 기적을 경험한 열 명중의 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성전이나 제사장에게 가기보다는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와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자신을 고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행동입니다. 그는 자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통해 좀 더 나은 삶을 찾기보다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3. 예수님이 찾으시는 믿음.
예수님은 기적을 경험한 열 명 중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돌아온 한 사람에게서 구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음과 그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구원에 합당한 믿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믿음이란 내 믿음에 대한 주변 상황의 반응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대한 내 믿음의 반응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  (0) 2023.12.03
이만한 믿음  (0) 2023.11.19
예수님의 추수감사절  (0) 2023.11.12

이만한 믿음

2023. 11. 19.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7:7-9
제목: 이만한 믿음

 

 

공생애 사역 초기에 아직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제자들을 향해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8:26, 14:31)라고 하셨지만, 이방인인 백부장을 향해서는 "이만한 믿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믿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백부장이 가진 믿음이 칭찬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 "이만한 믿음"인 이유를 찾아봅시다.

1.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
예수님을 향해 "주"라고 부르며 대하는 태도가 로마의 엘리트 장교가 식민 지배하는 유대인 청년을 대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의 소뭄을 듣고' 예수님의 정체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에서 바른 지식으로 말미암은 합당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큰 믿음이란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으로 바로 '공의'입니다.

2. 이웃을 대하는 태도.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겸손하게 간구하는 것은 자기의 종의 치유를 위함입니다. 당시 종은 한낱 재물에 불과하던 시대에 종의 질병으로 예수님을 찾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믿음이란 '자기'를 넘어 '이웃'으로 영향력이 확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웃으로 확대되는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3. 큰 믿음이란?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서 특별한 행위를 함으로 칭찬받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전해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통해 정체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경외함으로 섬기며, 자신을 넘어 이웃을 향한 특별한 사랑과 섬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안에 거하며 '자기'를 넘어 이웃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홉 명의 착각  (0) 2023.11.26
예수님의 추수감사절  (0) 2023.11.12
복음에 합당한 생활  (0) 2023.11.05

예수님의 추수감사절

2023. 11. 12.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12.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계시록 14:14-16
제목: 예수님의 추수감사절

 

 

마지막 때 구원받을 자들을 모으시는 예수님("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을 낫을 들고 추수하는 농부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려놓고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추수 때까지 사랑으로 헌신하다가 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맞이하는 추수감사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예수님의 추수감사절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 추수의 결실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삶의 여러 결실에 대한 감사의 날이지만, 예수님의 추수감사절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날입니다. 가라지 속에서 자라는 알곡(참고, 마13:24-30)을 구별하여 곳간에 들이고 기뻐하듯,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온 성도들로 인해 기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의 원천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2. 믿음은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밭에 씨를 뿌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다가 나중에 결실하듯, 우리의 믿음도 여러 고난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추수의 때는 바로 그 믿음의 결실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믿음의 좋고 나쁨이나 주변 환경의 좋고 나쁨보다 각자의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고 있는가입니다.

3. 우리를 추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을 금 면류관을 쓰고 구름 위 보좌에 앉으신 왕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왕의 추수에는 일꾼들이 동원되는데 요4:38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추수꾼으로 삼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 말씀의 씨를 뿌리고 잘 보살펴 알곡 신앙으로 성장시켜 추수때에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는 일꾼들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만한 믿음  (0) 2023.11.19
복음에 합당한 생활  (0) 2023.11.05
말씀을 가로막는 요인들  (0) 2023.10.29

복음에 합당한 생활

2023. 11. 5. 12:3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1. 05. 주일오전예배
본문: 빌립보서 1:27-28
제목: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황의 아버지 빌립왕이 세운 도시로서, 로마제국의 퇴역한 군인들을 이주시켜 세금을 면제시키고 시민권을 부여함으로 그들의 헌신에 보상하고 주변 이방 민족에게 로마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시로 재건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서신서와는 달리 빌리보서는 군사적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헬: '폴리튜오마이')이 어떤 모습인지를 실감 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1. '한마음으로 사서'('스테코')
'스테코'라는 말은 전쟁에서 상대방에게 밀리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뒤로 물러가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마음'(성령) 안에서 주변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의미에 따른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참고, 빌4:1, 살전3:8). 로마제국의 숱한 전쟁을 경함한 교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했을 것입니다.

 

2. '한뜻으로 복음이 신앙을 위하여 협력'('쉰아들레오')
'쉰아들레오'는 함께 힘을 합쳐 전쟁을 치른다는 의미로 '아곤'(씨름, 시합. 참고, 빌1:30)에서 파생되어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서 단 한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자체를 영적 전쟁으로 인식하고 전쟁에 경험 많은 교인들에게 혼자의 힘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역설하면서 신앙의 협력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두려워하지 않는다'(프튀로')
'두려워하다'는 의미보다는 '깜짝 놀라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전쟁터에서는 언제 어디서 적군이 나타나더라도 놀라울게 없듯이, 대적하는 사람이나 일이 발생한다고 놀라지 말고 신속히 대처하라는 의미입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산 보상으로 로마 시민권을 받고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나라 시민으로 산다는 의미는 더 확실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의 추수감사절  (0) 2023.11.12
말씀을 가로막는 요인들  (0) 2023.10.29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0) 2023.10.15

말씀을 가로막는 요인들

2023. 10. 29.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0. 29. 주일오전예배
본문: 예레미야 37:3-5
제목: 말씀을 가로막는 요인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틈틈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려 노력하지만, 말씀에 순종하거나 엄중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모함으로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1. 교만(렘 37:3-5)
위기 앞에서 기도를 요청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고 난 후에는 원래의 태도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려는 숨은 속셈도 교만의 한 면입니다.

2. 부정(렘 37:17, 참고 19)
애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기보다는 자기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왕의 선지자')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궁금해할까요?

3. 체면(렘 38:14, 참고 19, 24)
시드기야는 암울해지는 현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체면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보다는 여전히 주변 사람과 자신의 체면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4. 자기 고집(렘 38:1-3, 참고 43:2,7)
바벨론의 침입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고 모였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이곳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을 전하지만(참고 10절), 그들은 거짓말이라며 애굽으로 도망갑니다. 이들은 이미 애굽으로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에 합당한 생활  (0) 2023.11.0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0) 2023.10.15
교회와 직분  (0) 2023.10.08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023. 10. 15.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0. 15. 주일오전예배
본문: 에베소서 2:14-20
제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무장단체와의 전쟁 상황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의 배경이자 무대이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데 있어서 바른 성경적 관점과 이해를 바탕으로 분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 옳으냐?', '누구 편이냐?'의 논쟁을 넘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시는 방향을 바르게 인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1. 갈등의 원인.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으로 가나안인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나안 원주민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다가, 출애굽으로 인해 정복 전쟁으로 국가가 세워지면서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세우며 기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영토를 점령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집니다.

2. 성경적 이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윗의 언약(삼하 7:13)의 성취를 믿고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데, 이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유이자 이슬람 국가들과 충돌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의 언약이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3. 갈등의 해법과 기도 제목.
예수님의 '새 언약'으로 인해 더 이상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며, 특정 지역에 세워지는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온 세상이 하나님 나라며, 예수의 이름으로 예배하는 모든 사람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이에 따라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사라지고 모든 믿는 자들이 한 형제요 자매가 되며 새 피조물들이 되었음을 알아야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을 가로막는 요인들  (0) 2023.10.29
교회와 직분  (0) 2023.10.08
교회와 장로  (0) 2023.10.01

교회와 직분

2023. 10. 8. 12:1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0. 08. 주일오전예배
본문: 에베소서 4:1-12
제목: 교회와 직분

 

 

오늘은 권사를 선출하는 공동의회가 있는 날입니다. 권사의 직분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직분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미와 기능을 수행해야 진정한 존재의 의미와 가칭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 분야의 직분자가 갖추어야 할 신앙 자세와 태도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1. 하나됨을 유지하는 직분입니다(3-6절).
교회는 하나님이 이미 믿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신 곳이기에 직분자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먼저 교회의 하나됨을 잘 유지해 나가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 겸손하게 감당해야 합니다(7-10절).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낮은 곳으로 임하신 결과임을 설명합니다. 이는 높아짐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짐으로써 하나님의 높임을 받는다는 것을 확증해 줍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겸손하게 낮아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3. 말씀에 헌신해야 합니다(11절).
교회의 5가지 직임을 소개하는데 공통적으로 모두 '말씀'에 관련된 직분입니다. 이는 각각의 특징과 기능을 가진 직분일지라도 직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 있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말씀에서 떠난 열심은 결국 자기의 만족에 불과합니다.

4. 성도들을 양육해야 합니다(12절).
직분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을 온전한 신앙인으로 양육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봉사하고 교회를 세우는데 동참하도록 가르치고 권면한고 인도하는 직분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0) 2023.10.15
교회와 장로  (0) 2023.10.01
고향 가는 길  (0) 2023.09.24

교회와 장로

2023. 10. 1.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10. 01.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14:23-26
제목 : 교회와 장로

 

 

일반 교회에 있는 장로직은 다분히 교회 역사 속에서 파생된 직분인데, 이것이 마치 장로직의 원형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합니다. 성경적 장로는 오늘날의 자로직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전도여행을 하면서 개척한 교회에 그 책임자로 자로를 세웠습니다. 아직 신앙의 체계가 완성되기 전 상황에서 장로를 세운 의도와 의미를 생각하면서 예수애교회 에클레이사의 의미와 사역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봅시다.

1. 교회를 섬기는 직분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을 하면서 개척한 각 교회마다 '장로'를 임명했습니다. 어찌 보면 초신자에 불과한 신앙 상태지만 세워진 교회를 책임지고 섬길만한 헌신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나 요한도 교회 내의 가르침을 전할 때 자신들을 '장로'라고 호칭하는 것에서 보듯이(참고, 벧전5:1, 요이1:1) 장로는 교회를 책임지는 직분입니다.

2. 성도를 섬기는 직분입니다.
당시 세워진 교회는 특정인의 가정에 세워진 에클레시아였습니다. '교회'라는 의미가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믿음을 가진 소수의 공동체였기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차별없이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여러 가지로 섬김을 다하는 직분입니다. 성경적 장로는 실질적으로 성도를 신앙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3. 영성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책임을 맡은 자들이기에 강조되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영성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금식기도'를 하며 예수께 '헌신'(위탁)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는 장로의 사역이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나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나옴을 인정하고 고백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와 직분  (0) 2023.10.08
고향 가는 길  (0) 2023.09.24
그리스도를 보기 시작할 때  (0) 2023.09.17

고향 가는 길

2023. 9. 24.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09. 24. 주일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4:16-20
제목 : 고향 가는 길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사방으로 소문나서 뭇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기 시작했습니다(참고, 14-15절). 그러다가 처음으로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해야 할 사적이 생겼습니다. 너무나 친근하고 익숙한 고향을 방문하는 것에는 거리낄 것이 없으나 이번 방문길은 굳은 각오가 특별한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을 향해 옮겨가시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이번 추석 명절에 고향 가는 길을 준비해 봅시다.

1. 예수님의 준비(17-19절).
회당에서 읽은 이사야 61장의 말씀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암송하고 있고, 대망하며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를 통한 회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자신임을 선언하기 위함입니다. 고향 사람들과 가족들도 함께 있는 회당에서 자신의 신분과 사명 선언은 곧 자기 신앙의 '커밍-아웃'인 동시에 신앙 고백입니다.

2. 고향 사람들의 반응(22-23, 28-29절).
정작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에 더 관심을 보입니다(22절).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외적 반응뿐만 아니라 내면의 소리까지 알고 계셨습니다(23절). 결국에는 가장 가까운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했던 고향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기까지 처하게 됩니다(29절).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3. 예수님의 반응(24, 30절).
예수님의 고향 가는 길은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육적이고 사회적 관계 속에 형성된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영적 신분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차 직면하게 될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미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어쩌면 복음에 대한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와 장로  (0) 2023.10.01
그리스도를 보기 시작할 때  (0) 2023.09.17
21세기 예레미야  (0) 2023.09.10

그리스도를 보기 시작할 때

2023. 9. 17.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 09. 17. 주일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후서 3:13-18
제목 : 그리스도를 보기 시잘 할 때

 

 

사도 바울은 한때 고린도 교인들에게 여러가지 오해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오해가 풀린 후 지난 소회를 담담히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주변 상황이나 내적 갈등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믿음을 지키며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처럼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분별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배워봅시다.

1. 사람을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봅시다.
바울은 자신을 모세와 비교하면서 "더욱 영광"된 직분을 수행한다고 당당히 말합니다(8-11절). 그 이유는 모세의 수건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은 없어질 모세 얼굴의 영광을 주목했다면(참고, 출34:29-35), 자신은 수건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는 눈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2.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시다.
모세 얼굴에 있는 영광은 곧 없어질 영광입니다(참고, 7, 13절). 모세는 이것을 알기에 수건으로 가렸지만 정작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수건에 가려진 영광에 더 관심 가집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수건을 벗고 '주의 영광'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예수를 닮아가려고 할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3. 성령으로 삽시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의 지식이나 계획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17절, 18절). 비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담대함 때문이라면 내 안에 임재하는 성령을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살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 가는 길  (0) 2023.09.24
21세기 예레미야  (0) 2023.09.10
'돌탕'과 '돌마' 중 누가 더 문제일까?  (0) 20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