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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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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일으킨 변화(3)

2023. 4. 30.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2:19-22
제목 : 부활이 일으킨 변화(3)

 

 

성전은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 다시 짓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말의 의미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헐라는 예수님의 의미와 성전이 된 예수님의 육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부활로 인하여 드러난 신앙의 변화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1. 예수님이 성전 되시다.
성전을 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 이상 성정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전이 무너짐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통으로 설명하셨습니다(참고, 막13:8).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의 신분이 드러남으로써 신앙의 중심이 성전에서 예수님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앙의 모든 의미는 예수님이고 예수 안에서 있음을 알려 줍니다.

2. 교회가 시작되다.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와 절기의 유대교 신앙은 막을 내리고, 혈통이나 성별을 초월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새로운 공동체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장소나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그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상징은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예수입니다.

3. 일꾼들이 세워지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장이나 서기관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자발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졌습니다. 이 들은 종교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져서 섬기는 일꾼으로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지고 유지되며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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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일으킨 변화(2)

2023. 4. 23.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33-35
제목 : 부활이 일으킨 변화(2)

 

 

시편16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변화에 대하여 설교한 베드로는 계속해서 시편 110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신분이 누구인가를 설명합니다. 한낱 갈릴리의 가난한 목수 또는 종교 지도자들이 가진 기득권에 반발하는 사회 개혁가가 아니라 예수는 예언된 그리스도요 하나님이라고 결론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드러난 예수님의 신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1. 성령이 임하셨습니다(33절).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자라고 증언하였고(막1:8), 예수님 자신도 부활 승천함으로써 보혜사이신 성령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요16:7).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지시하신 대로 성령이 임하였습니다(행1:4-5).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2.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34-35절).
시편 110:1절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주"라고 고백한 사실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의 하나님임을 알려줍니다(참고, 막12:36-37). 따라서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와서 다윗의 나라를 재건하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으로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일을 하시는 분임을 말해줍니다.

3.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입니다(36절).
예호와 하나님은 위엄과 영광스럽고 초월적인 존재이기에 감히 마주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친히 인간의 삶을 사셨기에 우리와 충분히 공유하고 공감하는 하나님으로서 친밀함과 친근함을 줍니다.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든지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고 동행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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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일으킨 변화(1)

2023. 4. 16.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25-32
제목 : 부활이 일으킨 변화(1)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술 취한 사람들로 오해받자 베드로는 처음으로 설교하게 됩니다. 성령에 관하여 설명하나가(15-21절) 본론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전하고 있는데, 시편 16장을 언급하면서 메시아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임을 증명합니다. 베드로는 시편 16장이 메시아 시편으로서 다윗의 입을 통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고백을 담고 있음을 소개하는 것에서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줍니다.

1. 존재감의 변화(시 16:1-3절).
시편 16장에서 "나", "내가"는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고난의 십자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다면 오늘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있는 성도들'로 즐거움을 삼으셨습니다. 성도의 존재감은 무슨 일을 해야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2. 삶의 의미 변화(시 16:4-8절).
죽음을 이기고 부활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여호와가 나의 산업이며 분깃'(5절)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날마다 밤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재물과 권세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알게 됩니다.

3. 영, 혼, 육의 변화(시 16:9-11절).
이런 결과들로 인해 당면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게 됩니다. 즉, 부활은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소생'의 의미(예: 나사로)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는 '거듭남'의 의미입니다. 다윗은 장차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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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부활시키자

2023. 4. 9.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09. 주일오전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1:3-5
제목 : 부활을 부활시키자

 

 

네로 황제의 박제로 각지로 흩어진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지하는 베드로는 가장 먼저 부활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부활은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영적인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속죄만 강조하다 보니 용서 부활시켜야 할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거듭남(2절 상).
거듭남은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전에는 예수를 부인했지만, 부활을 목격한 후 모두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부활은 장차 변화될 우리의 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2. 산 소망(3절 하).
일반적인 소망에 반하여 '산 소망(Living Hope)'은 살리는 소망 또는 살아있는 소망을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통해 세속적인 소망에서 진정한 소망이 되는 예수님을 바라고 기대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3. 유업을 잇게 함(4절).
우리를 위해 하늘에 있던 썩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는 자가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고난 겪지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이 땅에서도 환경에 얽메이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4. 하나님의 보호(5절).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안전을 위함이 아니라, 예비한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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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2023. 4. 2.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4.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가복음 11:2-3
제목 :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오늘은 종려주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주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 입성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동안 여러번 예루살렘을 방문했었겠지만 오늘 마지막 방문은 가장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왜 일반적인 왕이나 메시아의 등장처럼 화려하고 위엄있는 모습이 아닌 사람이 타 보지 않은 나귀의 새끼를 타고 가셨을까요? 여기에 담긴 교훈을 알아봅시다.

1. 순종하는 신앙.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은 약 500년 전에 슥9:9절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참고, 마21:2-5). 자신이 메시아이자 왕이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려는 예수님은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오늘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줍니다.

2. 겸손한 신앙.
슥 9:9에서 나귀 새끼를 타는 것은 '겸손'을 의미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나귀 새끼뿐이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새끼를 타신 것은 그만큼 겸손에 대한 각별한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뽑은 칼보다 칼집에 꽂힌 칼이 더 위엄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거룩한 신앙.
'거룩'은 세상과 다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10절) 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이 세우려고 하는 하나님나라는 세상 나라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라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실패처럼 보였지만 결국 영생의 승리의 길이듯, 성도의 삶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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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세 가지 실수

2023. 3. 26.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2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욥기 23:10-17
제목 : 욥의 세 가지 실수

 

 

마귀가 욥에게 고난을 통해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참고, 욥1:11, 2:5). 그러나 이런 점에서 무지했던 욥은 하나님 앞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욥의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중에 깨닫고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회복이 일어나지만(참고, 욥42:5), 고난 중에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점을 살펴봅시다.

1. 억울함(10절).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항의하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6-9절).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고난은 해결될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2. 자기 의(11-13절).
억울함의 근원은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의'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모든 선악의 기준을 자기에게 두려는 죄의 영향 때문입니다(참고, 창3:5). 인간이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모르고 자신이 행한 일만을 생각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오해(13-17절).
그 결과 하나님을 오해하는데, 하나님은 누구의 말이나 형편을 살피지 않는 고집불통이고, 예측할 수 없는 분이며, 자기 일 외에는 무관심한 분으로 여깁니다(참고, 욥24:1-12). 결국 욥은 고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 자체가 두렵다고 고백합니다(16-17절). 하나님을 자신의 상황에서 조성된 단편적인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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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앞에 섰을 때

2023. 3. 19.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19.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시편 46:10-11
제목 : 문제 앞에 섰을 때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딛치게 됩니다.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따라 삶의 의미와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는 장애물이기보다는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겻은 어떤 종류의 문제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문제 앞에 섰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본문을 통해 이에 대한 지혜를 구해봅시다.

1. 하던 일을 멈추십시오(10절 상).
"너희는 가만히 있어(Be Still)"라는 것은 모든 행동이나 동작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운전할 때 가속페달보다 브레이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듯이,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홍해 앞에서(출14:13-14), 여리고 성 앞에서(수6:10), 호렙산에서 엘리야(왕상19:12)처럼 잠잠히 있어야 볼 수 있고 들리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10절 하).
문제 앞에 서게 되면 문제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연구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것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깨달음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은혜가 문제를 극복할 힘과 지혜를 공급해 줍니다.

3.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십시오(11절).
묵상함으로 깨달아진 하나님은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 속에 그대로 임재하는 분입니다. 문제 앞에서 어리둥절한 그 상황 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심을 느끼고 고백할 때, 문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영광의 하나님만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말씀과 예배와 기도, 그리고 믿음의 선포로 인해 그 존재감이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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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탈출

2023. 3. 12.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1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5:8-10
제목 : 광야 탈출

 

 

베드로 사도는 고난과 역경 속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참고, 1:6-7, 4:12-13). 누구나 빨리 광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단순히 광야의 환경에서 벗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광야로 인도하는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듯이,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고난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까요?

1. 환경보다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8-9절 상).
광야에서는 환경이 주는 어려움으로 인해 당면한 문제에 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눈앞에 다가온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문제를 왜곡하거나 포장해서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 해서 결국 낙심하고 절망케 합니다. 광야에 있을 때는 환경보다 마귀의 미혹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2.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9절 하).
광야에 들어가면 외롭고 불안해서 자신의 형편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쉽습니다. 그로 인해 자괴감이나 열등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더 편한 사람도, 더 불편한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힘들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광야의 길을 걷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고난 속에 숨겨진 은혜를 누리십시오(10절).
광야에 오아시스가 있듯이, 인생의 광야에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이 은혜는  광야에서 장막을 치듯이, 먼저 '터를 닦고', '뼈대인 기둥을 세우고', '넘어지지 않게 튼튼히 묶고', '온전한 집을 완성'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결국, 관야에서 임하는 은혜는 믿음의 집을 짓도록 합니다. 믿음의 집이 완성된다면 그것이 광야의 졸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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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이 힘든 이유

2023. 3. 5.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05. 주일오전예배
본문 : 출애굽기 13:17-18
제목 : 믿음의 길이 힘든 이유

 

 

하나님은 출애굽하는 이수라엘 백성들을 가장 편하고 빠른 길인 해변 길("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면 1주일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음에도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십니다. 쉽고 빠른 길을 두고 왜 돌아가야 하는 광야로 인도하시는 걸까요? 인생길이 힘들고 고달프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광야의 한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것 같은 때 있습니다. 여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 봅시다.

1. 전쟁보다는 광야를 선택했습니다.
가난안으로 가는 지름길인 해변 길은 블레셋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과는 전쟁해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도우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것보다 광야에서 믿음의 훈련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만들어지는 승리보다는 스스로 준비하고 훈련하여 쟁취하는 승리를 더 기대하셨습니다.

2.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빠른 길보다는 더디 가는 광야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으로 가는 목적이 가나안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부족함이 많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필요성과 하나님 임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삶의 '힘듦'은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알람입니다.

3. 하나님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삶의 환란과 고난은 하나님을 찾고 배우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오히려 좋은 환경은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광야의 삶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속으로 인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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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보다 더 귀한 은혜

2023. 2. 26. 12:3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2.2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4-18
제목 : 은혜보다 더 귀한 은혜

 

 

성도들이 바라는 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특히 문제 속에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이 궁극적인 은혜일까요? 예수님이 바라는 은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자칫하면 은혜란 당면한 문제로부터 해결받아 평안한 상태를 누리는 것으로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도 소중하지만, 더 크고 중한 은혜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1. "은혜 위에 은혜러라"(16절).
'은혜 위에 은혜'의 의미는 단순히 '충만한 은혜', '충분한 은혜'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좀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합니다. 원문에는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헬: '카리스')를 '카린 안티 카리토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안티'란 '반대되는', '마주대하는'의 뜻을 가집니다. 즉,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는 '은혜를 반대하는 은혜'입니다.

2. 가장 크고 소중한 은혜(18절).
'은혜를 반대하는 은혜'란 기존에 은혜로 여겨왔던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은혜란 의미입니다. 율법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도 소중하지만, 인간으로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을 통한 은혜가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시는 예수를 '보고'(14절), '받고'(16절), '나타난'(18절) 것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은혜입니다.

3. 은혜 위에 은혜를 추구하라.
일반적인 은혜를 초월하는 은혜를 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은혜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의 모세의 경우가 '은혜 위에 은혜'를 누리는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모세와는 달리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보고, 만나고,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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