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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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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4. 21.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4. 21.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19:12-16
제목: 소돔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온 롯은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도시들을 불로 심판하실 때 겨우 구원받는 처지가 됩니다. 롯의 문제는 소돔 같은 죄악의 도시에 산 것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성숙한 신앙이 없었던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소돔 같은 도시를 떠나 살아야 한다면 모두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소돔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롯을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워봅시다.

1. 환경에 맞는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세상의 편안함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의미있는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위해서는 철저한 신앙적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과 함께 생활하면서 롯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믿음의 준비 없는 성공은 위험합니다.

2. 영적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롯은 소돔의 문화에 동화되어 살고 있었기에(참고, 1절, 8절),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을 때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평소 롯의 삶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 줍니다. 어쩔 수 없이 소돔에 살아야 한다면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위한 기도, 말씀, 예배, 영적 친교, 등 영적 문화를 만들고 추구해야 합니다.

3. 생활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 두어야 합니다.
천사의 재촉에도 롯은 여전히 미련있어 지체하고(16절),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에 소알 성읍으로 도망하겠다고 하다가(20절), 나중에 다시 소알에서 산으로 도망합니다(30절). 이런 롯의 상태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여전히 자기 목적과 생각으로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비록 소돔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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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2024. 4. 14.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4. 14. 주일오전예배
본문: 고린도후서 11:22-23
제목: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본문에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지칭하는 네 가지 명칭이 언급되는데,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공동체의 명칭을 부여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의도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과연 당신은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요?

1. 히브리인: 경계를 넘어라.
'히브리'라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사용되었는데(창 14:13), 그 어원은 '하비루'('강을 건너온 자')에 두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은 삶의 경계요 안전을 보장해 주는 영역을 뜻합니다. 이런 익숙한 생활에 머물기보다는 순종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히브리인입니다.

2. 이스라엘: 고집을 버려라.
하나님과 씨름한 압복강에서 야곱에게 준 새 이름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살았던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심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의 삶은 내 생각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3. 유대인: 교만을 버려라.
'아브라함의 후손'은 유대인을 의미하는데, 원래는 유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혈통적 민족적 의미로 변했습니다. 12지파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교만의 표현입니다.

4. 그리스도인: 삶으로 증명하라.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대비하여 바울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양과 모습으로 대응합니다(참고, 23~33절까지).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기 삶 속에서 실현하는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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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 이후의 삶

2024. 4. 7.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4. 7.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26:23-28
제목: 부활 그 이후의 삶

 

 

창세기의 4대 족장 중에서 이삭에 관한 기록이 가장 단출하기에 그를 통한 신앙적 교훈을 간단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 이후의 행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 성도들에게 귀중한 삶의 지침을 줍니다. 창세기 26장은 이삭의 신앙적 흔적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부활의 새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 신앙의 교훈을 함께 살펴봅시다.

1. 예배자의 삶(25절 상).
평안했던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로 옮겼습니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상황적 안정을 추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배드렸습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것은 환경적인 축복으로 인해 감사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예배자의 삶을 보여 줍니다.

2. 생명나눔의 삶(25절 하).
이삭의 신앙적 삶의 특징은 '우물 파기'입니다. 당시의 우물은 생명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삭은 이방 땅에서도 생명의 근원인 우물을 파서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의 '우물 파기'는 단순히 자신만의 편안하고 풍족한 삶의 상징이 아니라, 참 생명의 샘을 파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사랑과 섬김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28절).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를 간청합니다. 그 이유는 이삭의 삶을 지켜본 결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삭 삶의 여정은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주변 사람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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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

2024. 3. 31.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31.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5:24-29
제목: 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

 

 

오늘은 2,000여 년 전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이 부활로 인해 모든 믿는자에게도 같은 부활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동안 사탄의 지배를 받아 행해왔던 모든 죄의 형벌로부터 용서받아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온 이러한 은혜와 의미를 깨닫고,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온 새로운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1. 부활의 과거.
예수님의 부활은 2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데 어떻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이 죄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자 섭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2. 부활의 현재(24-25절).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경험하는 행복한 삶을 가능케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킵니다.

3. 부활의 미래(26-29절).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강의 미래에 일어날 일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 달린 강도의 운명이 갈라진 것처럼 믿음의 사람과 불신앙 사람의 운명이 확연히 달라질 것을 알려줍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려주기에 믿음의 사람에게는 소망을 주고, 불신앙의 사람에게는 복음을 믿도록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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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서 십자가까지

2024. 3. 29. 22:0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24. 주일오전예배
본문: 고린도후서 4:7-11
제목: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하면 '구유에서 십자가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 세계로 오시는데 고작 말 구유에서 탄생하시고, 갖은 고초를 당하시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굳이 이런 삶을 사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친히 이렇게 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같은 삶의 모양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예수님 삶의 자세와 의미를 본받아야 합니다.

1. 삶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7절).
세상 사람들은 능력을 갖춘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지만, 성도들은 자기 자신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습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보배'이신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이유는 '그릇'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는 상식처럼 예수님이 모든 능력과 의미의 근본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릇만 깨끗하면 됩니다.

2. 삶의 관점이 달라져야 합니다(8-9절).
신앙 여정에는 많은 고난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마다 환경을 바라본다면 누구나 물 위를 걷던 베드로처럼 두려움과 의심에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중한 것에 집중합니다. 다윗이나(참고, 시편63편) 바울은 고난을 피하기보다는 고난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어떤 것보다 중요히 여겼습니다.

3. 삶의 목적이 달라져야 합니다(10-11절).
10절과 11절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의 생명"을 맛보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생명"이란 부활의 생명뿐만 아니라,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살아가시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능력 있는 삶을 가능케 한 원동력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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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도 행복한 이유

2024. 3. 22. 21:5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17.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19-23
제목: 광야에서도 행복한 이유

 

 

메마른 광야는 불행한 환경의 대명사입니다. 누구나 외면하고 벗어나고픈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런 광야에서도 행복학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야에게는 갈멜산 꼭대기가, 세례요한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행복의 장소라고 여기겠지만, 실상 그들의 삶의 터전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라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불행을 만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주어진 사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능력있게 드러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1. 내가 누구인지 알 때 행복합니다(20-21절).
세례요한에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망하고 있던 그리스도, 엘리야, 그 선지자인지를 확인하려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하고 자신은 그저 '광야의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엘리야도 초기에 자신의 정체를 망각하다가 나락에 빠졌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분명한 자아관은 광야같은 환경에서도 삶을 의미있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2.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알 때 행복합니다(23절).
광야같이 척박한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듭니다. 이사야 40장의 말씀을 인용하는 "광야의 소리"는 곧 하나님의 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며, 나아가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입니다.

3.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26-27절).
요한은 비록 광야에서 불편한 삶을 살아가지만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적으로는 광야 속에서 살지만, 실상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면 그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해 세상의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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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심령과 능력

2024. 3. 10.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10.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1:17
제목: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

 

 

타락의 길로 치닫는 구약시대를 마치면서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가 엘리야 같은 선지자를 보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참고, 말4:5-6). 그리고 그 엘리야는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인정하셨고(마11:14), 요한도 엘리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갈멜산에서 행한 능력일까요? 아니면 공의와 정의를 묵묵히 펼치면서 사는 삶이었을까요? 세례요한이 출생하기 전 천사가 그의 삶을 예언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하고 사모해야 할 행복한 신앙을 다시금 확인해 봅시다.

1. '주 앞에 먼저 와서'
엘리야나 세례요한을 통해 행복한 신앙생활이란 대중들 앞에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인기나 권위보다 하나님과의 믿음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바로 공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2. '돌아오게 하고'
엘리야는 처음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았지만,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후로는 자신이 주인공 되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안내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을 봅니다. 요한도 자신의 목적보다는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의의 삶입니다.

3. '주를 위하여 준비하리라'
엘리야도 가는 곳곳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을 양육한 것처럼, 요한도 제자들을 양육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결국, 행복한 신앙은 환경이나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변화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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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ABC

2024. 3. 3.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3. 주일오전예배
본문: 열왕기상 19:15-18
제목: 엘리야의 ABC

 

 

 

'행복한' 신앙생활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임하고 가뭄에도 비를 부르는 능력을 소유했음에도 행복하기보다는 영적 침체에 빠져 모든 의욕을 잃고 도망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를 지켜보시다가 시내산에서 그의 문제를 깨닫게 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후로 엘리야는 성경 무대에서 잠시 사라지지만 하늘로 승천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인생을 마무미 짓습니다. 이런 뜻깊은 삶을 위해 하나님은 엘리야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켰을까요?

1. 하나님 안에 머물기(Abiding).
요 15장에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열매 맺는 비결을 '거함'(헬: '메노'= 머물다, 거하다, Abide)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과는 그 의미에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대단한 일보다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2. 영적 안목 넓히기(Broad-way).
지금까지 엘리야는 '나만 남았다'는 생각에 빠질 정도로 자기 주도적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직분을 맡기는 것인데, 이 중에서 실제로 행한 것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내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통찰력으로 영적 안목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3. 영적 콘서트(Concert).
본문 이후로 성경의 무대에서 잠시 사라진 엘리야는 뛰어난 '능력'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동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가는 곳곳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왕하 2:3, 5, 7)이 있음을 볼 때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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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MBTI

2024. 2. 25. 10:3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2. 25. 주일오전예배
본문: 열왕이상 19:11-14
제목: 엘리야의 MBTI\

 

 

 

엘리야는 죽음을 뛰어넘고 승천한 선지자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교훈과 도전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지를 바르게 이해해야합니다. 승승장구하던 엘리야가 도망자가 되고 죽기를 자처하는 지경에 이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과의 공의가 무너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현상은 무엇일까요?

1. 자기 자리에서 도망친다(Moving).
실의에 빠진 엘리야를 시내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도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두 번씩이나 묻습니다(9, 13절). 그 이유는 지금의 자리를 엘리야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있어야 할 곳에서 멀어지는 것은 환경이 아닌 공의 문제입니다.

2. 본질보다는 현상을 중요시하다(Burning).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명하신 것은 단순히 아합을 만나 하나님이 비를 준다는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참고, 18:1). 그런데 그는 바알 제사장들과 갈멜산에서 '불의 대결'을 요청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보여 주는 것은 대단한 '현상'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였습니다.

3. 자기 열심을 자랑한다(Topping).
엘리야의 자부심은 자신이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다는 것입니다(참고, 10, 14절). 갈멜산의 영적 대결과 기도를 보면 그런 듯합니다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열심이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열심일 뿐입니다.

4.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다(I).
'나만 남았거늘'이라는 말의 앞뒤에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 홀로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고 있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만난 오바댜를 보면 그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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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리스도인

2024. 2. 18. 12:1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2. 18. 주일오전예배
본문: 시편 106:1-5
제목: 행복한 그리스도인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에는 '행복'이란 말보다는 '축복'이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하는데, 3절의 '복'은 '행복하다!'(히: '에쉐르')는 감탄사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고 난 후에 터져 나오는 감사와 찬양의 고백적 선포입니다. 행복한 신앙인이란 바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임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확인시켜 줍니다(참고, 6-48절). 공의와 정의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있는 거대한 강과 같은 개념입니다(예, 십계명, 이사야서, 산상수훈, 예수님의 가르침, 등). 공의와 정의의 삶이 행복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1. '나를 기억하시며'(4절 상).
세상은 '큰일'을 한 사람을 기억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인정받을 만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몸 바쳐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사는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 이유는 이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나를 돌보사'(4절 하).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에게는 세상에서 '큰일'을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인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더 귀중하기에 하나님의 관심과 손길이 이 사람에게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참고, 사43:2-3).

3. '자랑하게 하소서'(5절).
'주의 유산'이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베푸시는 모든 은혜입니다. 성도들이 자랑하고 간증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이고 환경적인 축복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공의와 정의'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만이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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