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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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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도 행복한 이유

2024. 3. 22. 21:5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17.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19-23
제목: 광야에서도 행복한 이유

 

 

메마른 광야는 불행한 환경의 대명사입니다. 누구나 외면하고 벗어나고픈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런 광야에서도 행복학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야에게는 갈멜산 꼭대기가, 세례요한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행복의 장소라고 여기겠지만, 실상 그들의 삶의 터전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라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불행을 만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주어진 사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능력있게 드러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1. 내가 누구인지 알 때 행복합니다(20-21절).
세례요한에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망하고 있던 그리스도, 엘리야, 그 선지자인지를 확인하려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하고 자신은 그저 '광야의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엘리야도 초기에 자신의 정체를 망각하다가 나락에 빠졌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분명한 자아관은 광야같은 환경에서도 삶을 의미있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2.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알 때 행복합니다(23절).
광야같이 척박한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듭니다. 이사야 40장의 말씀을 인용하는 "광야의 소리"는 곧 하나님의 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며, 나아가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입니다.

3.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26-27절).
요한은 비록 광야에서 불편한 삶을 살아가지만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적으로는 광야 속에서 살지만, 실상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면 그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해 세상의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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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심령과 능력

2024. 3. 10.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10.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1:17
제목: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

 

 

타락의 길로 치닫는 구약시대를 마치면서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가 엘리야 같은 선지자를 보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참고, 말4:5-6). 그리고 그 엘리야는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도 이를 인정하셨고(마11:14), 요한도 엘리야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갈멜산에서 행한 능력일까요? 아니면 공의와 정의를 묵묵히 펼치면서 사는 삶이었을까요? 세례요한이 출생하기 전 천사가 그의 삶을 예언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하고 사모해야 할 행복한 신앙을 다시금 확인해 봅시다.

1. '주 앞에 먼저 와서'
엘리야나 세례요한을 통해 행복한 신앙생활이란 대중들 앞에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인기나 권위보다 하나님과의 믿음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바로 공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2. '돌아오게 하고'
엘리야는 처음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았지만,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후로는 자신이 주인공 되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안내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을 봅니다. 요한도 자신의 목적보다는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의의 삶입니다.

3. '주를 위하여 준비하리라'
엘리야도 가는 곳곳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을 양육한 것처럼, 요한도 제자들을 양육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결국, 행복한 신앙은 환경이나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의 변화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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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ABC

2024. 3. 3.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3. 주일오전예배
본문: 열왕기상 19:15-18
제목: 엘리야의 ABC

 

 

 

'행복한' 신앙생활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임하고 가뭄에도 비를 부르는 능력을 소유했음에도 행복하기보다는 영적 침체에 빠져 모든 의욕을 잃고 도망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를 지켜보시다가 시내산에서 그의 문제를 깨닫게 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후로 엘리야는 성경 무대에서 잠시 사라지지만 하늘로 승천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인생을 마무미 짓습니다. 이런 뜻깊은 삶을 위해 하나님은 엘리야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켰을까요?

1. 하나님 안에 머물기(Abiding).
요 15장에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열매 맺는 비결을 '거함'(헬: '메노'= 머물다, 거하다, Abide)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과는 그 의미에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대단한 일보다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2. 영적 안목 넓히기(Broad-way).
지금까지 엘리야는 '나만 남았다'는 생각에 빠질 정도로 자기 주도적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직분을 맡기는 것인데, 이 중에서 실제로 행한 것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붓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내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통찰력으로 영적 안목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3. 영적 콘서트(Concert).
본문 이후로 성경의 무대에서 잠시 사라진 엘리야는 뛰어난 '능력'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동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가는 곳곳마다 '선지자의 제자들'(왕하 2:3, 5, 7)이 있음을 볼 때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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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MBTI

2024. 2. 25. 10:3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2. 25. 주일오전예배
본문: 열왕이상 19:11-14
제목: 엘리야의 MBTI\

 

 

 

엘리야는 죽음을 뛰어넘고 승천한 선지자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교훈과 도전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지를 바르게 이해해야합니다. 승승장구하던 엘리야가 도망자가 되고 죽기를 자처하는 지경에 이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과의 공의가 무너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현상은 무엇일까요?

1. 자기 자리에서 도망친다(Moving).
실의에 빠진 엘리야를 시내산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도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두 번씩이나 묻습니다(9, 13절). 그 이유는 지금의 자리를 엘리야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있어야 할 곳에서 멀어지는 것은 환경이 아닌 공의 문제입니다.

2. 본질보다는 현상을 중요시하다(Burning).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명하신 것은 단순히 아합을 만나 하나님이 비를 준다는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참고, 18:1). 그런데 그는 바알 제사장들과 갈멜산에서 '불의 대결'을 요청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보여 주는 것은 대단한 '현상'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였습니다.

3. 자기 열심을 자랑한다(Topping).
엘리야의 자부심은 자신이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다는 것입니다(참고, 10, 14절). 갈멜산의 영적 대결과 기도를 보면 그런 듯합니다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말씀에 순종하는 열심이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열심일 뿐입니다.

4.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다(I).
'나만 남았거늘'이라는 말의 앞뒤에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자신만 홀로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고 있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만난 오바댜를 보면 그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참고,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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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리스도인

2024. 2. 18. 12:1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2. 18. 주일오전예배
본문: 시편 106:1-5
제목: 행복한 그리스도인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에는 '행복'이란 말보다는 '축복'이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하는데, 3절의 '복'은 '행복하다!'(히: '에쉐르')는 감탄사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고 난 후에 터져 나오는 감사와 찬양의 고백적 선포입니다. 행복한 신앙인이란 바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임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확인시켜 줍니다(참고, 6-48절). 공의와 정의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있는 거대한 강과 같은 개념입니다(예, 십계명, 이사야서, 산상수훈, 예수님의 가르침, 등). 공의와 정의의 삶이 행복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1. '나를 기억하시며'(4절 상).
세상은 '큰일'을 한 사람을 기억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인정받을 만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몸 바쳐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사는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 이유는 이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나를 돌보사'(4절 하).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에게는 세상에서 '큰일'을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인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더 귀중하기에 하나님의 관심과 손길이 이 사람에게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참고, 사43:2-3).

3. '자랑하게 하소서'(5절).
'주의 유산'이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베푸시는 모든 은혜입니다. 성도들이 자랑하고 간증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이고 환경적인 축복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공의와 정의'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만이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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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사는 자의 특권

2024. 2. 11. 12:18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2. 11. 주일오전예배
본문: 에베소서 1:13-14
제목: 성령으로 사는 자의 특권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인사를 전한 후, 첫 마디가 "찬송하리로다"입니다(3절). 무엇을 찬양하라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3절), 예수님(4-12절), 그리고 성령(13-14절)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신령한 복'(3절)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성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성령으로 확실한 보증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로 구원받고 성령으로 사는 성도에게는 어떤 특권이 주어졌을까요?

1. 하나님의 소유.
'인치심'이란 도장을 찍었다는 말인데, 이것은 소유권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죄로 인해 사탄에게 빼앗긴 인간을 되찾아 하나님의 소유로 만들었음을 확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은 예수님처럼(예, 요6:27), 자신의 환경이나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고도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2. 소망.
'보증'이란 계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일정 액수를 미리 지급하는 돈입니다. 성령을 주신 것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보증이란 사실은 성도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자들이 아니라, 가장 분명하고도 확실한 미래의 현재를 사는 자임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현재 어떤 어려움속에 있더라도 다가오는 미래는 항상 밝고 아름답습니다.

3. 속량.
'속량'이란 대가를 지불하고 노예나 종에게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죄와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 자녀로 자유케 됩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사는 성도들은 죄를 안 짓는 사람이 아니라 죄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삶으로 인도하는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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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공동체

2024. 2. 4.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2. 04. 주일오전예배
본문: 사도행전 13:1-3
제목: 성령 공동체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예루살렘 밖에서 이방인 성도에 의해 세워진 이방인들의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성령사역을 가장 잘 구현해 나가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안디옥 교회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성령으로 사역하는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함께 도전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
안디옥 교회의 사역자를 보면 '선지자들' '교사들'로서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초빙하여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을 보면(참고, 11:26), 성령 공동체는 우선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2. 동역 공동체.
교회 구성원들이 지리적으로나 계층적으로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에 의해 바울도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 다양성이 있지만 성령으로 하나된 공동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만이 다양성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3. 순종 공동체.
기도 가운데 임한 성령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 가르침 받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이나(참고, 11:26),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에 따라 예루살렘에 부조를 보내는 것을 보면(참고, 11:28-29), 성령과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4. 은혜 공동체.
안디옥 교회 소문을 듣고 첫 방문에서 바나바가 본 것은 '하나님의 은혜'(11:23)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선교사로 파송받아 사역하다가 다시 돌아갈 때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으로 부릅니다. 기도와 말씀, 사랑과 헌신 등으로 가득한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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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꿈꾸는 세상

2024. 1. 28. 1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1. 28.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16-21
제목 :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베드로는 성령의 사역에 놀라워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어쩌다 생긴 일이 아니라 구약 요엘서에 기록된 말씀의 성취임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참고, 욜2:28-31). 즉,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것이 자신들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요엘에게 성령에 대한 예언서를 주셨고, 수백년 뒤 오순절에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1. 성령으로 거듭나는 세상.
성령을 모든 '육체(헬: 싸르크 = 살, 고기, 참고, 히:바싸르)'에 부어주신다는 것은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성령으로 만들듯 제2의 인간 창조를 다시 부어주심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탄에 의해 잃어버린 은혜와 축복을 회복하는 성령의 재창조를 꿈꿉니다.

2. 성령으로 차별없는 세상.
자녀(헬: '딸'), 늙은이, 젊은이, 남종, 여종은 신구약 시대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말합니다. 경제적 계층적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달리 하나님은 성령으로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주어진 신분과 계층에서 살지만, 모두가 성령으로 기쁨과 감사,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세상입니다.

3. 구원으로 사는 세상.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하여 요엘서에서 좀 더 그 의미를 설명합니다. 구원이란 '피한 자', '남은 자', '부름받은 자'입니다(참고, 욜2:32). 하나님은 세상을 평화로운 상태로 만들기보다는 문제 속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구원의 삶을 살도록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세상은 성령과 더불어 구원의 삶을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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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과 베드로가 만나다

2024. 1. 21.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1. 2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다니엘 6:3-4
제목 : 다니엘과 베드로가 만나다

 

 

'성령충만한 삶'은 오순절 사건처럼 어떤 은사나 능력이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아,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에서 가장 성령충만한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그는 유대인 포로였음에도 바벨론 제국에서 세 왕을 거치면서도 승승장구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지칭하여 '마음('루아흐')이 민첩한 자', '거룩한 영을 가진 자'(4:8-9, 5:11)라고 부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다니엘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1. 사소함의 중요성.
1장에서 어린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채식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어린 나이에 먹거리가 중요한 요소일 텐데도 먹는 것으로 신앙의 정절을 지키려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대단한 기적이나 이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또한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성령은 평소 보지 못했던 작은 부분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2. 신실함의 능력
성경에서 '믿음'을 표현할 때 구약에서는 '에무나', 신약에서는 '피스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똑같이 '믿음'. '신실', '충성'을 뜻합니다. 어린 다니엘이 채식을 선택한 것은 한순간의 결정이 아니라, 그 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신앙의 삶이 바벨론에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은 삶으로 인도합니다.

3. 단순함의 신비.
다니엘이 마주한 삶의 문제들은 다양했지만, 그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문제의 종류에는 상관없이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단순하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기도로 단순한 삶을 삽니다. 그 단순함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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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2024. 1. 14. 1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1. 14.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4:15-17
제목 :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유월절 만찬에서 행한 마지막 가르침인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은 문맥상으로 14장 31절에서 마칩니다('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과도 같은 가르침은 14장의 내용입니다.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길, 진리, 생명'에 관한 말씀을 하셨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간절히 전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시나요?

1.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8절, 22절).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기에 자신을 통해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하셨지만, 빌립은 '복잡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그냥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8절)라고 반문합니다. 이런 태도는 빌립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성도의 속마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처럼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설명(9-14절, 23-24절).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으라(11절)고 하시면서 믿는 자들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하도록 하나님께로 간다(12절)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구하든지 행하시겠다는 약속을 두 번이나 하십니다(13, 14절). 이는 승천하실 예수님이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3. 마지막 유언(15-17절, 25-26절).
15절은 명령문이 아니라 조건문이어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다'의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떠나지만 대신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참고, 26, 16:7). 여전히 제자들은 부족해도 오실 성령이 그 부족함을 채워 능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킬 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살려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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