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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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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과 장어구이

2017. 7. 9. 15:18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7. 09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5:17-20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구약을 '완전하게'했다는 말씀을 오해해서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구약성경과는 아무 상관없이 신앙생활하는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고 신앙생활 합시다.

 

1. 구약성경은 폐하여지지 않습니다(17-20절)

구약성경이든 신약성경이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에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구약성경 또한 성도들을 신앙적으로 가르치기에 유익합니다(딤후3:16, 롬7:12).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마침(롬10:4)'은 율법의 기능적인 의미가 예수님의 심자가 대속으로 대신함을 의미합합니다. 성경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습니다(요10:35). 그러나 일부 이단들이 주장하듯이 우리가 구약의 절기나 예법들을 다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2.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친히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삶의 모든 과정을 구약성경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참고, 마1:22, 마2:5-6, 15, 23, 3:2, 요19:24, 28, 36-37).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실패한 구약의 말씀을 예수님이 온전히 이룸으로서 믿는 자의 구세주가 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히 이룸으로서 믿는 자는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의미를 심화학대하였습니다(21-48절)

구약의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신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의 참 의미를 설명해 줍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문자적 행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폭넓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의 종살이에서 자유케하여 결국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성령의 법(롬8:2) 아래 사는 '예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을 잘 지켰냐? 못 지켰냐?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 폭넓고 심오한 은혜의 세계를 사는 하나님나라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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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인듯 믿음아닌 믿음

2017. 7. 2. 15:05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7. 02 주일 오전예배

 

 

 

사사기의 내용은 가나안땅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이 어떠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결론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17:6, 21:25)입니다. 그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함께 살펴봅시다.

 

1. 내가 원하는 복을 위한 내가 만들어가는 신앙(17:1-6)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의 가정을 보면 '여호와의 복'을 말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복을 추구하고 있고, '예배'는 드리지만 자신들이 만든 예배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믿지만 결국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과 관계없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2. 성공을 위한 나만의 헌신(7-13, 18:18-20).

레위인 천년이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이 됩니다. 그런데 레위 청년의 선택은 오직 경제적인 면('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과 성공에 있습니다(참고, 18:19-20). 미가 또한 이런 청년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삼는 목적은 오직 '복'받기 위함입니다(17:13).

 

3. 내게 좋은 것이면 하나님이 주신 것(18:7-10).

하나님이 나누어 준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다니던 단 지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판단에 좋은 땅을 마치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여겼습니다(18:10). 하나님의 뜻보다는 처한 형편과 상황 속에서 나에게 좋은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깁니다.

 

4. 내가 하면 신앙, 남이 하면 우상숭배(18:17-19, 30-31).

당시에 성막이 있었고 곳곳에 예배처소가 있었지만 미가는 자신만의 예배를 위해 우상과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다 지파 사람들도 전쟁하러 가기 전에 우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갑니다. 이것은 예호와 하나님이 어느새 '신앙'이 아니라 '우상'으로 변질 되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2017. 06. 25 주일 오전예배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럴려면 하나님나라 건설을 가로막는 '세상'의 방해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의 신앙을 통해 어떻게 세상의 방해를 극복할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1. 한 손으로는 일하고,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고(17-18절).

주변의 방해를 극복하면서 성벽을 재건하는 방법은 각자 자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항상 싸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의 특징은 위협을 가함으로서 하나님의 일에서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참고 유1:6). 그러나 이런 마귀의 계략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한 손으로 일하고, 한 손에는 병기'의 자세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자리로 굳건하게 지키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일터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2. 연합하라(19-23절).

3장에 보면 예루살렘 성벽을 각 사람에게 나누어 증건합니다. 그런데 방해세력에 대응하는 방법도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 역할을 서로 바꾸어 가면서 대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헌신과 연합에 의해세워집니다(참고, 엡2:20-22). 하나님나라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고 서로의 짐을 함께 져주는 연합과 조화에 의해 세워집니다.

 

3. 내 안의 적을 이겨라(5장).

주변의 적들이 계속적인 위협을 가하지만 정작 치명적인 적은 '내부의 적'입니다. 5장에 보면 유대인들 내부의 다툼과 분열의 모습들이 해겨로딜 때 비로소 6장에 있는 대적들의 치밀한 공격을 능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밖에 있는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을 정복해야 하나님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보이는 적에만 신경쓰다보면 자칫 내부의 적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하게됩니다. 이겨야 할 적은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원리(19) - '십자가'

2017. 6. 18. 15:22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6. 18 주일 오전예배

 

고린도전서 2:2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형상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에 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로 그것을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1. 죽음.

구약성경은 '피흘림'의 제사를 통해 죄인인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왜냐하면 죄의 대가가 죽음이기에 그 죽음의 실체를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이 제물들의 죽음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입니다(참고, 마26:26). 그래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 뒤를 따르는 삶이어야 합니다(마 16:24). 이것은 곧 우리 '자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2. 약속.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죽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흘릴 피를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마26:28). 그 언약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레26:12, 렘31:33). 결국 십자가 사건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행하는 것이 크리스천입니다.

 

3. 용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용서(속죄)'입니다. 용서란 죄가 있음에도 '덮어주시는(히: 카파르, 참고 시78:38)'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그의 보혈로 덮어서 죄가 '안보이는' 상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용서함을 받은 성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허물도 덮어 주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참고 벧전4:8).

하나님 나라의 원리(18) - '지금부터'

2017. 6. 11. 14:55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6. 11 주일 오전예배

 

 

사무엘상 17:45-49

 

 

 

지난 주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택함 받았던 사울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에서 실패한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를 뒤이어 왕이 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산 다윗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원리를 살펴 봅시다.

 

1. 지금 여기에서(삼상17:26).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오게 된 소년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전의를 상실한 이스라엘 군대를 보면서 의분을 느낍니다. '전쟁터'는 누구나 피하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피하지 않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하나님나라가 펼쳐질 곳입니다. '여기서' 못하면 '저기서도' 못합니다.

 

2. 가진 것으로(삼성17:40).

다윗은 사울의 갑옷이나 칼로 싸우지 않고 자신이 가진 '목자의 제구'로 싸우러 갑니다(40절).

평범한 물맷돌에 불과하지만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며(참고, 37절) 싸웁니다. 소년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고, 더 강하고, 더 최신의 무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익숙한 도구로 싸웁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입니다. '이것으로' 못하면 '저것으로'도 못합니다.

 

3. 하나님만을(삼상17:45-47).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선포하는 말 속에 하나님을 6번이나 언급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40일 동안이나 괴롭히고 있는 골리앗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삶의 중심에는 오직 하나님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보이는 곳'입니다. 삶 속의 문제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문제 속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하나님나라'를 살지 못합니다.

 

 

 

 

2017. 06. 04 주일 오전예배

 

 

사무엘상 10:1-8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택함을 받은 사울에게 몇 가지 징조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으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자질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연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훈련으로 되어집니다.

 

1. 가치관(2절).

잃어버린 암마귀를 찾아 헤매던 사울에게 아버지가 걱정한다는 말을 듣게 합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닫게 합니다.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2. 섬김(3-4절).

예배하러 가던 사람들이 사울에게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나누는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예배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는 것도 중요함을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이때 하나님께 드릴 것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먹을 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3. 새 사람(5-7절).

선지자의 무리들과 함께 성령으로 충만함을 통해 '새 사람'이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옛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사람들과 함께 사모할 때 그 은혜를 같이 누릴 수 있습니다.

 

4. 예배와 말씀(8절).

마지막으로 예배와 말씀을 배우기 위해 '칠 일 동안 기다려야'합니다. '7'이란 숫자는 완전수의 의미이기에 '예배와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시작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중요한 요소이며, 또한 이것은 최종 훈련목표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울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참고, 삼상13장, 15장).

 

 

 

 

 

2017. 05. 28 주일 오전예배

 

 

요한복음 15:13-15

 

 

 

예수님은 자신과 이별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원리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점진적(progressive) 의미를 가진 것으로 각기 독립된 의미가 아니라, 상호간에 원인과 결과를 야기하는 종속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어느 한 순간에 되어지는 것(Being)이 아니라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Doing)입니다. 신앙생활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가지(요 15:5).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우리를 '가지'로 말씀합니다. 가지의 생명력은 줄기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줄기에 붙어 있으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주신 첫 언급은 나뭇가지처럼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있는 삶입니다. 교회, 행사, 프로그램, 교인들과 친밀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2. 제자(요 15:8).

줄기에 단단히 붙어있어 자양분을 공급받는 '가지'의 삶을 통해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제자'가 됩니다. 이 단계는 자양분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가지'의 단계에서 발전하여 삶으로 '열매'를 맺는 단계입니다. 따라서 '제자'란 하나님께서 영광이 되는 삶의 열매를 맺도록 훈련받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수동적인 신앙'이 아니라 '생산적인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친구(요 15:14).

'제자'가 상하관계를 의미한다면 '친구'란 수평관계를 의미합니다. 참신앙의 모습은 아브라함(약2:23)과 모세(출33:11)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관계는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 함께 있음으로 힘과 기쁨이 되며, 서로의 깊은 마음까지도 함께 나누는 사이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친구입니까?

 

 

 

 

2017. 05. 21 주일 오전예배

 

 

스가랴 2:1-5

 

 

 

오늘은 교회설립 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9년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과 성도들께 감사드리고 예수애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할지 말씀을 통해 도전받기 바랍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성전 재건을 포기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재건축을 독려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서의 내용은 당연히 성전재건에 대한 권면과 축복의 내용이 담겨져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느 것이 주 목적임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 봅시다.

 

1.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1-3절)

'측량줄'을 잡은 천사가 예루살렘을 측량하러 갔을 때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나서 예루살렘이 '성곽없는 성읍(히:페라자 = plaza)'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의 손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되고, 보호받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이 되어 다스리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 의해,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우는 건물은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 성전은 사람만 위할 뿐입니다.

 

2. 내가 성전이 되리라(4-5절)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이것이 진정한 성전의 모습이자 교회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물질로 세워진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성벽이 되셔서 세상으로부터 구별시켜주시고, 영적 대적으로부터 지켜주시며, 항상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전을 자신의 육체로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요2:19).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의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과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2017. 05. 14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4:42-44

 

 

하나님이 '티끌'로 만들어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은 기적이며 이해불가능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나라의 회복이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하나님이 친히 감행하신 일입니다. 그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하나님의 나라 복음 전파'라고 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명인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전념하셨습니다. 이것을 '몸소 하나님나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러한 삶을 사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1. 하나님나라는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은 '사람에 관한 하나님의 책'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잃어버리고 저주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참 모범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곧 '티끌'인 육체에 성령으로 오셔서 친히 하나님나라를 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는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나'로부터 시작함을 말씀합니다.

 

2. 하나님나라를 사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신앙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이나 성전에 매이지 않고, 모든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소수의 사람들이 듣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결국 그들에 의해 세상이 뒤바뀌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내 안에서 회복되면 개인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생깁니다. 이것은 세상 변혁의 원동력이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증명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나라 복음이 전파된 것은 개인구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바꾸는 능력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몸소 하나님나라'를 사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시다.

 

 

 

 

2017. 05. 07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1:6-8

 

 

 

최초의 하나님나라였던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다시 하나님나라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라(6-7절).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관심을 '너희'에게 돌리고 있습니다('너희가 알바 아니요'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주변상황을 의식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 상황에서 살아가야 합니다.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으로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삶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2. 성령으로 살아라(8절 상).

예수님은 죽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성령의 임하심을 말씀하셨고(요14:16,26, 16:7). 부활하신 후에도 말씀하셨습니다(눅24:49). 그리고 행1:4-5에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성령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티끌(히:'아파르')'로 만들어진 사람은 그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티끌속에 하나님의 생기를 가졌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으로 채워질때만 가능합니다.

 

3. 증인으로 살아라(8절 하).

'증인'이란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그것에 대하여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지 않고 '증인'이 되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나라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나 성도들은 예수님으로 완성된 하나님나라를 경허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주는 목적은 하나님나라의 증이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