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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세 가지 실수

2023. 3. 26.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2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욥기 23:10-17
제목 : 욥의 세 가지 실수

 

 

마귀가 욥에게 고난을 통해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참고, 욥1:11, 2:5). 그러나 이런 점에서 무지했던 욥은 하나님 앞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욥의 경우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중에 깨닫고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회복이 일어나지만(참고, 욥42:5), 고난 중에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점을 살펴봅시다.

1. 억울함(10절).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항의하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6-9절).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고난은 해결될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2. 자기 의(11-13절).
억울함의 근원은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의'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은 모든 선악의 기준을 자기에게 두려는 죄의 영향 때문입니다(참고, 창3:5). 인간이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모르고 자신이 행한 일만을 생각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오해(13-17절).
그 결과 하나님을 오해하는데, 하나님은 누구의 말이나 형편을 살피지 않는 고집불통이고, 예측할 수 없는 분이며, 자기 일 외에는 무관심한 분으로 여깁니다(참고, 욥24:1-12). 결국 욥은 고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 자체가 두렵다고 고백합니다(16-17절). 하나님을 자신의 상황에서 조성된 단편적인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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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앞에 섰을 때

2023. 3. 19.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19.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시편 46:10-11
제목 : 문제 앞에 섰을 때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딛치게 됩니다.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따라 삶의 의미와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는 장애물이기보다는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겻은 어떤 종류의 문제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문제 앞에 섰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본문을 통해 이에 대한 지혜를 구해봅시다.

1. 하던 일을 멈추십시오(10절 상).
"너희는 가만히 있어(Be Still)"라는 것은 모든 행동이나 동작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운전할 때 가속페달보다 브레이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듯이, 언제 멈춰야 하는지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홍해 앞에서(출14:13-14), 여리고 성 앞에서(수6:10), 호렙산에서 엘리야(왕상19:12)처럼 잠잠히 있어야 볼 수 있고 들리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10절 하).
문제 앞에 서게 되면 문제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고 연구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것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깨달음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은혜가 문제를 극복할 힘과 지혜를 공급해 줍니다.

3.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십시오(11절).
묵상함으로 깨달아진 하나님은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 속에 그대로 임재하는 분입니다. 문제 앞에서 어리둥절한 그 상황 곳에 하나님도 함께 계심을 느끼고 고백할 때, 문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영광의 하나님만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말씀과 예배와 기도, 그리고 믿음의 선포로 인해 그 존재감이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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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탈출

2023. 3. 12.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1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5:8-10
제목 : 광야 탈출

 

 

베드로 사도는 고난과 역경 속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참고, 1:6-7, 4:12-13). 누구나 빨리 광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단순히 광야의 환경에서 벗어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광야로 인도하는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듯이,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고난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까요?

1. 환경보다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8-9절 상).
광야에서는 환경이 주는 어려움으로 인해 당면한 문제에 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눈앞에 다가온 "문제"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문제를 왜곡하거나 포장해서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 해서 결국 낙심하고 절망케 합니다. 광야에 있을 때는 환경보다 마귀의 미혹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2.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9절 하).
광야에 들어가면 외롭고 불안해서 자신의 형편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쉽습니다. 그로 인해 자괴감이나 열등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더 편한 사람도, 더 불편한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힘들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광야의 길을 걷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고난 속에 숨겨진 은혜를 누리십시오(10절).
광야에 오아시스가 있듯이, 인생의 광야에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이 은혜는  광야에서 장막을 치듯이, 먼저 '터를 닦고', '뼈대인 기둥을 세우고', '넘어지지 않게 튼튼히 묶고', '온전한 집을 완성'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결국, 관야에서 임하는 은혜는 믿음의 집을 짓도록 합니다. 믿음의 집이 완성된다면 그것이 광야의 졸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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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이 힘든 이유

2023. 3. 5.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3.05. 주일오전예배
본문 : 출애굽기 13:17-18
제목 : 믿음의 길이 힘든 이유

 

 

하나님은 출애굽하는 이수라엘 백성들을 가장 편하고 빠른 길인 해변 길("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면 1주일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음에도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십니다. 쉽고 빠른 길을 두고 왜 돌아가야 하는 광야로 인도하시는 걸까요? 인생길이 힘들고 고달프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광야의 한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것 같은 때 있습니다. 여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 봅시다.

1. 전쟁보다는 광야를 선택했습니다.
가난안으로 가는 지름길인 해변 길은 블레셋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과는 전쟁해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도우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 것보다 광야에서 믿음의 훈련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만들어지는 승리보다는 스스로 준비하고 훈련하여 쟁취하는 승리를 더 기대하셨습니다.

2.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빠른 길보다는 더디 가는 광야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으로 가는 목적이 가나안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부족함이 많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필요성과 하나님 임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삶의 '힘듦'은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알람입니다.

3. 하나님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삶의 환란과 고난은 하나님을 찾고 배우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오히려 좋은 환경은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광야의 삶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속으로 인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우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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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보다 더 귀한 은혜

2023. 2. 26. 12:3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2.2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4-18
제목 : 은혜보다 더 귀한 은혜

 

 

성도들이 바라는 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특히 문제 속에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이 궁극적인 은혜일까요? 예수님이 바라는 은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자칫하면 은혜란 당면한 문제로부터 해결받아 평안한 상태를 누리는 것으로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도 소중하지만, 더 크고 중한 은혜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1. "은혜 위에 은혜러라"(16절).
'은혜 위에 은혜'의 의미는 단순히 '충만한 은혜', '충분한 은혜'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좀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합니다. 원문에는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헬: '카리스')를 '카린 안티 카리토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안티'란 '반대되는', '마주대하는'의 뜻을 가집니다. 즉, 예수님으로 인한 은혜는 '은혜를 반대하는 은혜'입니다.

2. 가장 크고 소중한 은혜(18절).
'은혜를 반대하는 은혜'란 기존에 은혜로 여겨왔던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은혜란 의미입니다. 율법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도 소중하지만, 인간으로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을 통한 은혜가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시는 예수를 '보고'(14절), '받고'(16절), '나타난'(18절) 것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은혜입니다.

3. 은혜 위에 은혜를 추구하라.
일반적인 은혜를 초월하는 은혜를 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은혜만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의 모세의 경우가 '은혜 위에 은혜'를 누리는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모세와는 달리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보고, 만나고,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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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우는 에클레시아

2023. 2. 19.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2.19. 주일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16:1-5
제목 : 우리가 세우는 에클레시아

 

 

로마서 16장은 바울의 서신중에서 아주 특별한 인사말로 마칩니다. 약 26명이나 되는 성도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서로 문안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단순한 인사나 안부의 차원이 아니라, 로마 시대의 교회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오늘의 교회가 본받아야 할 본질이 담겨있습니다.

1. 사역에 예외가 없는 교회(1절).
16장에 등장하는 26명의 사람 중에서 9명이 여성, 11명이 노예들입니다.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도 다양한 사람들이 차별 없이 사역에 동참하는 모습은 교회만이 가지는 특별함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위해 헌신함으로 세워진 것이 교회였습니다.

2. 합당한 예절이 있는 교회(2절).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성경에 6번 언급되는데, 4번은 아내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보다 낮은 상황에서 이례적이지만, 신앙 안에서 합당한 예절로 볼 때 신앙적인 지위가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삶의 현장 속에 세워진 교회(5절).
가정 교회 형태로 시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성전에서 사제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타 종교와는 달리, 일반인이 자신의 가정에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통한 예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의 현장은 교회의 터전입니다.

4. 연합과 조화를 이루는 교회.
다양한 부류와 계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받은 은혜와 은사를 통하여 조화를 이루며 연합하여 세운 것이 교회입니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과 섬김이 있었고, 손해와 피해를 감수하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예수님 외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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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이 막혔을 때

2023. 2. 12.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2.1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15:22-29
제목 : 가는 길이 막혔을 때

 

 

바울은 로마교회를 방문하려던 계획이 계속해서 무산되는 것에 큰 아쉬움을 표합니다(참고, 1:10-11, 13, 15, 15:22).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바울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순종하려 함에도 계획한 바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1. 가는 목적을 확인하십시오(23-24절).
바울에게 로마행 목적지가 아니라 서바나(스페인) 선교를 위한 경유지였습니다. 이 사실은 로마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니 이상 로마행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때로는 가야 할 이유와 가는 목적을 혼동하기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방향을 바꾸십시오.
로마행의 의미가 분명하다면 반드시 지금 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서바나로 가는 길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직접 방문보다는 편지를 보내기로 합니다. 편지는 직접 방문보다 비효율적이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로마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열린 길로 들어가십시오(25-29절).
예루살렘행은 로마행과는 정반대 방향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은 로마를 포기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면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길이 막힌 것이 아니라 열린 길도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발로 인해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군인의 보호를 받으며 로마로 압송됩니다(참고, 행23:11). 이것으로 볼 때 바울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이 막히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 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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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이 아니라 개혁이다

2023. 2. 5. 12:29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2.05. 주일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12:1-2
제목 : 개선이 아니라 개혁이다

 

 

로마서 12장 1절의 "그러므로"는 1장부터 8장까지의 복음으로 인한 구원과 9장부터 11장까지의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결론을 이끄는 말입니다. 따라서 12장 이하의 내용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가르침인데, 당시 상황에서 볼 때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개선'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상태로의 '변혁'적인 모습입니다. 구원받은자의 삶은 카멜레온의 변화가 아니라 번데기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1. '영적 예배'(절)
로마교회의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은 제사나 예배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생소한 것은 '너희 몸을 산 재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예식의 예배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뿐만 아니라, 삶과 행동 하나하나까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참고, 3-13절).

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2절 상).
'이 세대'란 여전히 악하고 죄의 유혹이 있는 세상을 의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런 문제 많은 세상으로부터 숨거나 도망갈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면서도 세태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본받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문화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손해를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3.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19절)
구원받은 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추구하는 변화는 자기 의지나 신념을 통한 변화가 아니라 성령이 임하심으로 일어나는 혁신적인 변화입니다(참고, 겔36:26-27, 롬8:13-14). 그리고 이 변화는 주어진 상황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쁜 뜻을 이루어감으로 행복과 감사의 열매를 맞보게 합니다(참고, 14-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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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계획

2023. 1. 29.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1.29. 주일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9:6-24
제목 : 하나님의 구원 계획

 

 

로마서 9장부터 11장까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여러 가지 특별한 은혜를 베풀며 인도하셨는데 결과적으로는 예수를 죽이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나 의도하심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은 이런 의문에 대한 바울의 설명인데,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인가?'(6절).
현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효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들'에 대한 것이기에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하심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신실하게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 구원입니다.

2. '하나님께 불의가 있는가?'(14절).
하나님이 전적으로 선택을 결정한다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 이유는 모세와 바로의 예를 들면서 하나님의 선택으로 그들의 운명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이 결정된 것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모세에게는 은혜를, 완악함을 택한 바로는 그대로 됨을 확인해 줍니다.

3. '왜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하는가?'(19절).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인데 왜 우리를 책망하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에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여러가지 종류의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고, 또한 잘못 사용하여 '진노의 그릇'과 잘 사용한 '긍휼의 그릇'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 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책망은 결국은 우리가 인생을 잘못 산 것에 대한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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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중에 만난 성령

2023. 1. 22. 12:11 | Posted by 소망지기

 

 

2023.01.2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8:1-2
제목 : 절망 중에 만난 성령

 

 

성경 66권의 요약이 로마서라고 하고, 로마서의 핵심이 8장에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절망 중에 고통하는 성도들에게 분명하고도 명확한 해결의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낙심할 때 다시 일어나 성화의 삶을 힘차게 달리레 하는 하나님의 성령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1. '그러므로'
'그러므로'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받고 성화의 삶을 살게 하는 복음이 있음에도 여전히 죄의 문제로 절망하는 7장의 상황을 말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실제 삶에는 여전히 죄인으로 사는 상황을 말합니다.

2. '스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죄성으로 인해 죄의 종노릇하기도 하지만,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으로 죄와 상관없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며 성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비록 여전히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예수 안에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예수 안에 여전히 죄인인 나의 모습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존재가 있는데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살게 하는 '돕는 배필'('에쩨르' '파라클레토스')입니다.

4. '정죄함이 없나니'
죄가 율법으로 우리를 정죄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성령은 우리를 도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책감이나 아픔 기억으로부터 자유케하여 성령과 함께 생활하게 합니다. 회개는 성령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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