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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은혜의 함정

2014. 11. 13.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덧입고 신앙생활하는 우리가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 볼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율법을 통한 의인이 되기보다는 여전히 죄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하여 결국 심판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스라엘을 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실패한 이스라엘에 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새로운 확신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마음의 뿌리에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요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의도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베푸시는 의도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의 의미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인간들이 율법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는 죄인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사 55:1-2]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믿는 자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셔서 구원을 주시기 위함일까요? 성경은 은혜를 덧입은 성도를 ‘양자’로 표현합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양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을 아들로 인정하여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양자가 된 아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자신이 양자인 것을 잊고 친아들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아버지에게 무례한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요?

 

친아들의 권리를 주고 친아들처럼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양자에게 친아들처럼 편하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이기에 양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어 환경을 바꾸어 주려고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된 아들은 친아들의 모든 권리를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을 요구하는 순간부터 이미 ‘은혜’는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양자의 입장에서는 친아들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사랑과 선택하심에 의해 아들의 자리로 불러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켜야 합니다. 아버지는 친아들처럼 행동하라고 하지만 양자에게는 여전히 얼떨떨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친아들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의 의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여전히 이 아버지의 호의를 감당할 수 없다는 ‘믿음의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율법이나 신약의 은혜는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여전히 ‘죄인’임을 고백하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이나 은혜 앞에서 우리의 의나 권리나 능력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지는 것입니다.

 

율법과 은혜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아닙니다.

율법과 은혜 앞에서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율법과 은혜 앞에서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율법과 은혜 앞에서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율법과 은혜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용서 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용서 받은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은혜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도착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죄인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겠지요.

 

안타깝게도 죄인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양자’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 무례히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사와 겸손으로 채우기보다는 권리 주장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너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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