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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배우고 거하라

2019.02.10 15:16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2.10. 주일 오전예배

 

디모데후서 3:14-17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선배 목회자로서 바울은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불신앙적인 상황(1-9절)과 박해(10-13절) 속에서도 믿음의 길을 걷는 방법에 관하여 권면합니다. 미혹과 불신앙의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바로 성경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14절).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성경을 배우고 해석하고 적용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진 능력은...

 

1.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15절).

성경은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지도책과 같습니다. 성경을 통해 지질학, 천체물릭학, 성공학 등을 연구하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영혼과 삶의 구원의 길을 배우는 책입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기능을 하기에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 세상에 보여 줄 우리의 신앙 모습입니다.

 

2.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것입니다(16절).

'하나님의 감동'이란 단어는 '데오프뉴스토스'('데오스'(하나님) + '프네오'(숨쉬다))라는 단어인데 그 의미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특별한 지도자에게 임하여 이스라엘을 지도하도록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령으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도록 하셨기에 우리는 성경을 배우고 순종해야 합니다.

 

3.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줍니다(17절).

'선한 일'이란 윤리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참고, 엡6:1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안의 견고한 진, 모든 이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모든 생각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참고, 고후10:4-5). 따라서 믿음을 행함으로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는 말씀을 배우고 거하게 무장하고 이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딤후4:2-5).

내 믿음을 성도에게 보이리라

2019.02.03 14:34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2.03.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3:1-10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는데 그곳에는 기도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장애인이 그날따라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물질적인 도움만을 기대하는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예수님을 증거하였고, 그 결과 일회적인 물질적 도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

 

1. 밥보다는 복음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장 아름다운 문('미문') 앞에 가장 추한 사람이 앉아서 구걸합니다. 동정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는 사람이기에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 최선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당장의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당장의 필요를 위한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오직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2. 입과 근육을 함께 사용합시다('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걸인의 상태는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불결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로만으로 선포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한 다음에 장애인이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이제는 입만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가 담긴 몸을 사용하여 함께 힘을 합칠 때입니다.

 

3. 함께 성전 문지방을 넘읍시다('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건강을 회복한 걸인은 한번도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했던 성전의 '문지방을 넘어' 찬송하며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은혜의 목적은 단순히 문제해결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합입니다(예, 요4장 사마리아여인, 요5장 38년된 병자, 요6장 오병이어, 요7장 초막절 끝, 등). 따라서 매일 성전에 가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믿음이 훨씬더 중요합니다.

내 믿음을 세상에 보이리라

2019.01.27 15:16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27.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22:41-46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여 준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행동을 해야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있는 4가지 대화를 통해 현시대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정치, 경제문제 앞에서 우리의 자세(15-22절)

바리새인과 당시 정치적 주류였던 헤롯 당원들이 연합하여 세금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세속적인 정치 경제적인 이슈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연결합니다. 즉, 세상문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삼아야 합니다.

 

2. 전통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23-33절)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계대결혼'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는 다분히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합은 성경을 인간중심으로 해성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해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3. 사회문제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35-40절)

율법사가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이는 율법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심으로 사회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 무제로 바꾸셨습니다.

 

4. 종교문제 앞에서의 우리의 자세(41-46절)

예수님은 그리스도에 대해 질문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대답은 당시 로마로부터 독림을 갈망하는 상황에서는 상식적인 대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 종교적 문제를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 버리십니다. 결국, 세상에 보여 줄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내 믿음을 직장에서 보이리라

2019.01.20 14:47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20. 주일 오전예배

 

에베소서 6:5-9



 

신앙생활에서 가장 갈등을 많이 격는 곳이 직장입니다. 더구나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믿음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직장생활도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야 하는 신앙의 영역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직장에서 드러낼 수 있을까요?

 

1. '두려워하고 떨며'(5절)

이 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한 표현입니다(고전2:3, 고후7:15, 빌2:12). 바울이 이런 말을 할 때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때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장생활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성실한 마음으로'(5절)

'성실'(헬: 하프로테스)하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종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6절)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것없는 일을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3.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5절)

상전을 예수님처럼 섬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을 대하듯이 성심껏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요(딤전6:10-2, 벧전2:13-14, 18),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기 때문입니다(마10:41-42). 따라서 상전을 주께 하듯 섬긴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4.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8절)

세상에서는 종과 상전의 구분이 있으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 구분 없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모습 그대로를 받드신다는 것입니다. 상전 또한 하나님 앞에서 종이기에(9절) 모든 사람이 서로 섬기는 일터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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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고하나 죽은 자

2019.01.13 14:39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13. 주일 오전예배

 

요한계시록 3:1-3

 

 

어떻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의 모습일까요? 사데교회는 난공불락의 안정함이 보장받는 지리적 이점과 사금을 채취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화려함과 풍성함으로 그 명성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았다고 하나 죽은' 교회라고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행휘로 말미암는 믿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1. '일깨어'(Wake up, 2절).

'죽어가는 신앙'을 다시 살리는 길은 자기교만과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으로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신랄하게 책망받은 이유는 잘 안다고 하지만 잘못 알고, 잘못 행하고,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먼저 바른 말씀과 바른 믿음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2. '생각하고'(Remember, 3절).

'행함이 있는 믿음'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받은 은혜와 믿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기억하다' (히:'자카르' 헬:'므네모뉴오')는 그 뒤에 구체적인 행위를 동반하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행위의 온전함'이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이미 받은 은혜를 되새기며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회개하라'(Repent, 3절).

'행위의 온전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참된 믿음은 새롭고 대단한 일을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 항상 은혜의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부흥은 항상 회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 결과 '흰옷'을 입을 자격이 주어집니다(계3:18, 7:14, 19:8). 그래서 '행함이 있는 믿음'은 지금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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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2019.01.06 15:0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1. 06. 주일 오전예배

 

야고보서 2:18-22

 

 

2019년 한 해의 표어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가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단순히 구호나 개인적인 고백의 영역을 넣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믿음의 모습이 되길 바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19절에서는 귀신들과 같이 여기고 있습니다. 반면에 행함이 있는 믿음을 아브라함(21절)과 라합(25절)의 예를 들면서 행함과 믿음은 각각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합니다(22절). 어떻게 하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을까요?

 

1. 믿음이 움직이게 놓아 주십시오.

믿음이 행함으로 움직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의 고집과 게으름, 무관심이 믿음의 행함을 가로막고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움직이도록 처음에는 작은 행동이지만 조금씩 순종하고 실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참고, 갈 5:16, 18절, 25절).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2. 말보다는 행동드로 실천하십시오.

"네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불신자들을 향해 굳이 말로 설명하고 가르치기보다는 묵묵히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을 먼저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복음에 대하여 모르는 시대가 아니라,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드문 시대입니다. 입보다는 몸이 움직이게 합시다.

 

3. 완전함이 아니라 온전함으로 행하십시오.

세상은 성도들에게 완전하고 완벽한 종교인의 모습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삶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완전할 수 없음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이게 '온전함'(헬: '텔레이오스' = 끝까지, 완전한, 온전한)을 요고합니다. 이는 비록 허물과 약함이 있음에도 끝까지 믿음으로 극복하며 나아가는 신실함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믿음의 걸림돌이 아니라, 믿음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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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회가 위험합니다!

2018.12.30 15:13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30.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2:41-47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교회(에클레시아)'라고 부른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에클레시아'란 기독교적인 의미의 용어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시대부터 사용되던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용어였습니다. 그런데도 초기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부른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음과 같은 교회의 본질적 특징을 보면서, 진정한 교회(에클레시아)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1. '그 말을 받은 사람들'(41절).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라고 하지 않고 '받고'(헬: '아포테코마이')라고 합니다. '받다'라는 표현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만 사용한 단어인데 다른 곳에서는 '영접하다'(눅9:11, 행18:27, 21:17, 28:30)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이룬 사람들은 단순히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2.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46절).

기독교인들에게 성전의 의미는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성전에 가셨지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눅19:47, 20:1, 21:37, 22:53, 24:53). 따라서 제자들과 믿는 성도들도 전도하기 위해 성전에갔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바른 복음과 말씀을 전하려는 각별한 노력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3.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구원받는 사람을 더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지 전도의 열매를 의미할까요? 죽어서 천국 가는 사람들을 의미할까요? 저자인 누가를 통해 말씀하시는 '구원'의 의미를 살펴보면 단순히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에 합당한 행위와 모습을 보여 주는 의미의 구원을 말씀합니다(눅7:50, 8:48, 17:19, 18:42). 따라서 교회는 교인 수의 증가만이 아니라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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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서 십자가까지

2018.12.23 15:17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23.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2:10-14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탄생은 신비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삶의 전 과정을 살펴보면 믿는 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구유에서 십자가까지'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이 성도들에게 주는 도전과 위로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은 작은 것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삶에 등장하는 '목자' '강보' '구유' 등의 의미나, '목수' '나사렛' '십자가' 등의 의미는 부유함이나 높음이 아닌 비천한 상황을 암시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가난하고, 낮고, 비천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성도들도 '큰 것'만이 아닌 '작은 것'으로도 능히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변방을 중심으로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목자나 동방박사에게 알리셨고,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성장하였고, 사역의 중심지도 예루살렘이 아닌 사마리아와 주변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모이는 중심지가 아닌 예수님이 계신 곳을 '중심'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여기'가 바로 하나님 역사의 중심부가 됩니다.

 

3. 하나님은 환경이 아니라 삶으로 영광 받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성장했지만 그런 환경과 싸운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복음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뿐이었습니다. 30년을 준비하여 3년 반 동안의 짧은 공생애를 살았지만,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이룬 업적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 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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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이 위험합니다!

2018.12.16 15:18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16. 주일 오전예배

 

베드로후서 3:8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젤대값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과 환경에 따라 느끼는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리적 신간도 변한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요?  질문에 대한 정답을 분명히 알아야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뜻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시간개념('크로노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와 개념으로 표현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나라, 거룩함, 등에 대한 시간적인 의미를 표현할 때 '시제(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개념을 사용하여 표현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시간개념에 익숙해져 있기에 하나님의 시간을 사람들의 시간으로 표현한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시간개념('카이로스')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이 가진 시간과는 다릅니다(참고, 시90:4, 계22:13).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으로 시간 밖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간은 항상 현재('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입니다. 미래를 의미하는 '영원'도 하나님에게는 언제나 '현재'입니다.

 

3.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간

성경속의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의 시간'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사람의 시간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예정'은 과거가 아닌 '현재'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설명하고 찬양하기 위함(엡1:5-6, 9-12)이고, '영원'은 미래가 아닌 '하나님과 공유하는 현재'(요17:3)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리적 시간을 따르는 사람의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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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이 위험합니다!

2018.12.09 15:22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12. 09. 주일 오전예배

 

로마서 10:5-10

 

 

 

성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씀이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 '영접기도', 세례받을 때 '고백기도', 신앙생활 시작할 때 '헌신기도' 등을 하면 구원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성경 말씀과는 무관하고 단지 자신의 만족만 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합니까?

 

1. 본문의 이해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믿음에 관하여 설명하다가 9장부터 10장까지는 유대인들의 구원에 관해 설명합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올바른 지식 없는 열심'(2절)임을 말하면서 신명기 30:11-14절의 내용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6-8절).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들은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주 쉽다는 것입니다.

 

2.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을 믿는다'는  의미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쉬움을 표현하기 위해 사요한 개념이 '입'과 '마음'(신30:14)입니다. 성경에서 '입'과 '마음'이 함께 사용될 때는 인간의 내면('마음')과 외면('입')이 함께 드러나는 삶의 행위나 모습을 의미합니다. (참고, 시19:14, 사29:13, 겔33:31, 롬15:6, 고후6:11)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의미는 단순히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바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3. 당신이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유대인들이 오해한 '올바른 지식'은 밥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인시키고, 예수를 믿ㄴ는다면 '입과 마음'으로 그 뜻을 실천해야 하며(참고, 롬5:1, 2), 그러한 삶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바울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들도 한결같이 주장한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구원의 확신'은 강조하지만 정작 구원의 열매인 '거룩한 삶'은 소홀히 여기는 기형적인 신앙인들이 되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