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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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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19.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5.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학개 2:4-9
제목: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열심있는 교회생활이 곧 구원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이 성전 생활이 곧 구원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하다가 중단하고 16년 동안 방치하고 있던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을 독력하면서 성전 자체보다는 성전에 담긴 의미를 상기심키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봅시다.

1.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아라(4절).
6월 24일 공사를 시작하였음에도 7월 21일 하나님 말씀이 임합니다. 그 이유는 재건되는 성전의 규모에 모두 실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참고, 3절) 이에 하나님은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히: 하짜크=붙잡다, 달라붙다, 강하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뜻은 공사하면서 불평, 불만, 비교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붙잡고 꼭 붙어있으라는 의미입니다.

2. 유한한 것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겨라(5-7절).
사람 보기에는 초라한 성전이지만 그 안에는 '언약의 말씀'과 '영'이 있기에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전의 목적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따라서 물리적인 장소나 건물보다 그곳에 임재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3. 물질보다 영광으로 채워라(8-9절).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다"는 말은 '마음만 먹으면 금과 은으로 도배도 할 수 있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물질에는 관심 없고 오직 '영광'에만 관심 가지십니다. '영광'은 건물의 규모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이 나의 왕 되심을 고백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순종의 삶이 곧 영광의 삶임을 기억하고 따라갑시다.

은혜 안에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12.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5. 12. 주일오전예배
본문: 욥기 42:10-17
제목: 은혜 안에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욥기의 결론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욥기의 마지막은 신앙 회복을 통해 변화된 욥의 삶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따라서 욥기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앙이란 무엇이며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는 생활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부려는 것입니다. 고난에서 회복한 욥이 살아간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면서 거룩한 도전의 시간을 함께 가집시다.

1.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살자(10-12절).
1장에서 욥의 신앙을 소개할 때는 욥의 개인적인 신앙과 가족 간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고난에서 회복한 후, 욥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른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주변 이웃들의 영혼에도 관심 가져야 합니다.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곤경을 돌이키셨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2. 새로운 가치관으로 살자(13-15절).
1장에서 욥의 일상을 소개할 때는 아들들의 모습을 그리던 것에 반해 고난 후의 욥의 일상은 딸들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에게도 아들과 같이 기업을 주었다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당시 문화로는 파젹적인 것으로 새로운 가치관으로 변화됨을 의미합니다. 익숙하고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과 관점을 가지면 새로운 인생이 열립니다.

3. 채우는 인생을 살자(16-17절).
'늙어 죽었다'고 하지 않고 '나이가 차서(히:'싸베아') 죽었다'는 표현은 아주 특별한 것으로 아브라함(창25:8), 이삭(창35:29), 다윗(대상29:28)의 죽음을 소개할 때도 사용됩니다. 늙음을 소모적인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에 채워가는 긍정적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이 더 의미있고 풍성하기에 잘 계획하고 준비해야 함을 내포합니다.

적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5. 5. 12:2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5. 05. 
본문: 시편 137:1-6
제목: 적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시편 137편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의 이야기입니다. 상황적으로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두려움, 신앙적으로는 무기력에 빠져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은 유다 백성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신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세상의 권세 앞에 무기력하게 지배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아닐까요? 세상 속의 적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1. 시대와 상황을 분별해야 합니다(1-4절).
바벨론 사람이 유대인에게 '시온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려 함이 아니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환호와 요구에 열심히 맞장구치는 것이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적진 속의 그리스도인은 무기력한 영적 능력에 대하여 처절하레 애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과 벗하기보다는 깊은 영적 통찰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2. 바른 말씀을 분별하고 집중해야 합니다(5-6절).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최괴로 즐거워하겠다'라는 것은 단순히 고국이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모함입니다. 무너진 삶의 현장에서 다시 회복을 위하여 붙잡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열심인 신앙'이 아니라 '바른 신앙'을 통해 무너진 삶을 회복시키겠다는 간절한 열망의 고백입니다.

3. 영적인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7-9절).
에돔을 저주하고(7절), 바벨론을 저주하는 것은(8, 9절) 단순히 원수에 대한 복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적진 속에서야 비로소 적이 누구인지를 영적으로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연연하거나 미련 두지 말고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 은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4. 28.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4. 28. 주일오전예배
본문: 레위기 11:44-45
제목: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레위기 1-10장까지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를 소개하다가, 11-15장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성막에서 규례가 일상생활 속으로 확산하여짐을 의미합니다. 특히 11장에서 음식과 같은 '사소한' 영역까지 지켜야 할 규례를 정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단순히 문자적인 계명으로 이해하고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이해한 것에 반해,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해야 할 하나님의 의도에 대하여 함께 살펴봅시다.

1. 사소한 것에서도 '거룩'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먹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세세하게 정하신 것은 그 음식물 자체의 정함과 부정함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런 규정을 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믿음을 보려는 의도입니다. 즉, 정함과 부정함의 기준은 음식물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에, 사소한 것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곳 '거룩'입니다.

2. 일상에 깃들인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해야 합니다.
성막에서만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깃들인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매일 먹는 음식을 통해서도 '나는 너희의 하나님 되려...'(45절)하신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명심해야 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을 통해서도 능히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이루어 드릴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레위기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거룩'인데, 거룩('카도쉬' = 분리, 구별)은 성도들도 닮아야 할 하나님 성품 중의 하나입니다. 거룩은 성막이나 특별한 장소에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인 것처럼 일상의 소소한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거룩에 동참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소돔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2024. 4. 21.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4. 21.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19:12-16
제목: 소돔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온 롯은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 도시들을 불로 심판하실 때 겨우 구원받는 처지가 됩니다. 롯의 문제는 소돔 같은 죄악의 도시에 산 것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성숙한 신앙이 없었던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소돔 같은 도시를 떠나 살아야 한다면 모두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소돔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롯을 통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워봅시다.

1. 환경에 맞는 신앙훈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세상의 편안함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면 오히려 더 의미있는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위해서는 철저한 신앙적 준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과 함께 생활하면서 롯이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믿음의 준비 없는 성공은 위험합니다.

2. 영적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롯은 소돔의 문화에 동화되어 살고 있었기에(참고, 1절, 8절),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을 때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평소 롯의 삶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 줍니다. 어쩔 수 없이 소돔에 살아야 한다면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위한 기도, 말씀, 예배, 영적 친교, 등 영적 문화를 만들고 추구해야 합니다.

3. 생활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 두어야 합니다.
천사의 재촉에도 롯은 여전히 미련있어 지체하고(16절), 산으로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에 소알 성읍으로 도망하겠다고 하다가(20절), 나중에 다시 소알에서 산으로 도망합니다(30절). 이런 롯의 상태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여전히 자기 목적과 생각으로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비록 소돔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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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2024. 4. 14. 12:1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4. 14. 주일오전예배
본문: 고린도후서 11:22-23
제목: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본문에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지칭하는 네 가지 명칭이 언급되는데,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공동체의 명칭을 부여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의도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과연 당신은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요?

1. 히브리인: 경계를 넘어라.
'히브리'라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사용되었는데(창 14:13), 그 어원은 '하비루'('강을 건너온 자')에 두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은 삶의 경계요 안전을 보장해 주는 영역을 뜻합니다. 이런 익숙한 생활에 머물기보다는 순종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히브리인입니다.

2. 이스라엘: 고집을 버려라.
하나님과 씨름한 압복강에서 야곱에게 준 새 이름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계획으로 살았던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심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의 삶은 내 생각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3. 유대인: 교만을 버려라.
'아브라함의 후손'은 유대인을 의미하는데, 원래는 유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혈통적 민족적 의미로 변했습니다. 12지파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교만의 표현입니다.

4. 그리스도인: 삶으로 증명하라.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대비하여 바울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양과 모습으로 대응합니다(참고, 23~33절까지).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기 삶 속에서 실현하는 존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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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그 이후의 삶

2024. 4. 7.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4. 7.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26:23-28
제목: 부활 그 이후의 삶

 

 

창세기의 4대 족장 중에서 이삭에 관한 기록이 가장 단출하기에 그를 통한 신앙적 교훈을 간단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 이후의 행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 성도들에게 귀중한 삶의 지침을 줍니다. 창세기 26장은 이삭의 신앙적 흔적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부활의 새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 신앙의 교훈을 함께 살펴봅시다.

1. 예배자의 삶(25절 상).
평안했던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로 옮겼습니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상황적 안정을 추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배드렸습니다.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것은 환경적인 축복으로 인해 감사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예배자의 삶을 보여 줍니다.

2. 생명나눔의 삶(25절 하).
이삭의 신앙적 삶의 특징은 '우물 파기'입니다. 당시의 우물은 생명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삭은 이방 땅에서도 생명의 근원인 우물을 파서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의 '우물 파기'는 단순히 자신만의 편안하고 풍족한 삶의 상징이 아니라, 참 생명의 샘을 파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사랑과 섬김입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28절).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를 간청합니다. 그 이유는 이삭의 삶을 지켜본 결과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삭 삶의 여정은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주변 사람도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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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

2024. 3. 31.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31.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5:24-29
제목: 과거, 현재, 미래의 부활

 

 

오늘은 2,000여 년 전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이 부활로 인해 모든 믿는자에게도 같은 부활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동안 사탄의 지배를 받아 행해왔던 모든 죄의 형벌로부터 용서받아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온 이러한 은혜와 의미를 깨닫고, 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온 새로운 삶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1. 부활의 과거.
예수님의 부활은 2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인데 어떻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이 죄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믿는 자에게 새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자 섭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 부활의 보증입니다.

2. 부활의 현재(24-25절).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경험하는 행복한 삶을 가능케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킵니다.

3. 부활의 미래(26-29절).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강의 미래에 일어날 일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 달린 강도의 운명이 갈라진 것처럼 믿음의 사람과 불신앙 사람의 운명이 확연히 달라질 것을 알려줍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려주기에 믿음의 사람에게는 소망을 주고, 불신앙의 사람에게는 복음을 믿도록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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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서 십자가까지

2024. 3. 29. 22:0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24. 주일오전예배
본문: 고린도후서 4:7-11
제목: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하면 '구유에서 십자가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 세계로 오시는데 고작 말 구유에서 탄생하시고, 갖은 고초를 당하시다가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굳이 이런 삶을 사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친히 이렇게 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같은 삶의 모양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예수님 삶의 자세와 의미를 본받아야 합니다.

1. 삶의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7절).
세상 사람들은 능력을 갖춘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지만, 성도들은 자기 자신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습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보배'이신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이유는 '그릇'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는 상식처럼 예수님이 모든 능력과 의미의 근본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릇만 깨끗하면 됩니다.

2. 삶의 관점이 달라져야 합니다(8-9절).
신앙 여정에는 많은 고난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마다 환경을 바라본다면 누구나 물 위를 걷던 베드로처럼 두려움과 의심에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중한 것에 집중합니다. 다윗이나(참고, 시편63편) 바울은 고난을 피하기보다는 고난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어떤 것보다 중요히 여겼습니다.

3. 삶의 목적이 달라져야 합니다(10-11절).
10절과 11절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의 생명"을 맛보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생명"이란 부활의 생명뿐만 아니라, 구유에서 십자가까지 살아가시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능력 있는 삶을 가능케 한 원동력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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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도 행복한 이유

2024. 3. 22. 21:5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3. 17.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19-23
제목: 광야에서도 행복한 이유

 

 

메마른 광야는 불행한 환경의 대명사입니다. 누구나 외면하고 벗어나고픈 장소입니다. 그러나 이런 광야에서도 행복학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야에게는 갈멜산 꼭대기가, 세례요한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행복의 장소라고 여기겠지만, 실상 그들의 삶의 터전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라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불행을 만듭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주어진 사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능력있게 드러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1. 내가 누구인지 알 때 행복합니다(20-21절).
세례요한에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망하고 있던 그리스도, 엘리야, 그 선지자인지를 확인하려는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하고 자신은 그저 '광야의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엘리야도 초기에 자신의 정체를 망각하다가 나락에 빠졌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분명한 자아관은 광야같은 환경에서도 삶을 의미있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2.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알 때 행복합니다(23절).
광야같이 척박한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듭니다. 이사야 40장의 말씀을 인용하는 "광야의 소리"는 곧 하나님의 임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며, 나아가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입니다.

3.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26-27절).
요한은 비록 광야에서 불편한 삶을 살아가지만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적으로는 광야 속에서 살지만, 실상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물면 그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해 세상의 불편함이나 부족함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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