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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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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9.06 분배의 영성
  2. 2024.09.01 오해와 진실
  3. 2024.08.30 한계를 넘는 믿음의 헌신
  4. 2024.08.25 길 위의 인생
  5. 2024.08.18 그리스도를 통해
  6. 2024.08.11 땅 한번, 하늘 두번
  7. 2024.08.09 방황하는 세대
  8. 2024.08.04 동지의 조건
  9. 2024.08.02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
  10. 2024.07.28 친구입니까 동지입니까

분배의 영성

2024. 9. 6. 22:1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9. 06. 금요기도회

본문: 수 14:1-5

제목: 분배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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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

2024. 9. 1. 12:1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9. 1.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28:16-19
제목: 오해와 진실

 

 

에서와 야곱의 삶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미리 정한 운명을 따라 사는 인생처럼 여겨집니다(참고, 창25:23).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정한 운명에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과 결정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삶의 모든 결과에 대한 최종 평가입니다. 즉, 야곱과 달리 에서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삶이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결정은 전 생애의 결론적 선언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삶의 방식은 그 성격처럼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추구하고자 하는 신앙적 가치는 같아야 함에도, 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반면, 야곱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이런 각자의 생애의 여정을 다 보시는 하나님의 신적 선언이지, 운명적 결정 때문에 일상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 매 순간의 선택이 삶의 결과를 만듭니다.
에서는 많은 장점을 가졌음에도 매 순간 자신의 유익을 위한 선택을 하지만, 야곱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합니다. 광야에서 노숙하면서 꾼 꿈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하며 헌신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이런 일상 속의 믿음의 성향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선언이 곧 야곱의 삶과 신앙을 정의합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줍니다.
에서와 야곱의 운명적 차이는 그 성격이나 환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해와 반응의 차이로 만들어졌습니다. 에서에게도 하나님의 '사닥다리'를 보여주었지만, 하나님을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은혜의 기회를 주시는데 문제는 그것에 어떻게 반은할 것인가 하는 우리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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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는 믿음의 헌신

2024. 8. 30. 22:07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8. 30. 금요기도회

본문: 수 13:1

제목: 한계를 넘는 믿음의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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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생

2024. 8. 25.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8. 25. 주일오전예배
본문: 시편 25:1-5
제목: 길 위의 인생

 

 

그리스도인의 삶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길 위의 인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좀 더 편한 길, 쉬운 길, 부자 되는 길 같은 것에 관심 가지기보다는, 믿음의 길이 주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삶에 두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에서 만난 고난 앞에서 다윗이 간절히 찾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각자의 신앙 여정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1. 길이신 하나님.
다윗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도 '여호와', '주'에 대해서는 보여주고, 가르치고, 지도하고, 교훈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문제 자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의 어떤 모습에도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곧 길이기에 당면한 문제로 인해 하나님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 길 위의 자유로움.
믿음으로 산다면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사람인 다윗도 고난, 죄, 아픔, 등 일반 사람이 겪는 일을 동일하게 겪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을 의식하며 체면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믿음 안에서 마음껏 아파하고, 애통하고, 눈물 흘리며 자유와 평안을 누립니다.

3. 길 위의 풍성함.
'풍성함'이란 물질적 넉넉함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도 감사와 만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길을 걷는 삶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주변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서의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가집니다. 물질이나 환경적인 풍성함보다는 '길 위의 삶'의 가치를 깨달음으로 인해 보람과 소망으로 한 걸은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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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통해

2024. 8. 18. 12:1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8. 18.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14:1-7
제목: 그리스도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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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한번, 하늘 두번

2024. 8. 11. 12:19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8. 11.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계시록 4:1-4
제목: 땅 한번, 하늘 두번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임할 우주적 종말의 참상이나 예수 재림의 징후를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여러 박해를 극복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지'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땅에 임한 재앙을 말하는 동시에 하늘에 임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함께 보여줍니다(참고, 4장, 7장, 14장, 19장, 21장). 믿음의 동지들의 삶의 방식은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를 보며 사는 것입니다.

1. 땅 위에 살지만, 하늘을 보라.
욥의 치명적 실수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하늘의 영적 세계에는 무지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의 환난과 혼동 속에서도 하늘의 하나님 나라는 항상 영광과 예배와 감사로 가득함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이 땅을 살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 나라를 보면서 소망과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땅에서와는 달리 하늘에서는 항상 승리한다.
땅 위에는 각종 재앙과 죄악으로 오염되고 있지만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항상 능력으로 승리하며 아름다운 영광을 선포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승리를 위해 어떤 인간적인 노력과 수고가 아니라 이미 '임하여 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으로써 하나님의 승리를 함께 누리며 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유한한 땅에서 영원한 하늘을 소유하자.
이 땅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의 세계라면,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평안과 영광으로 충만한 영원히 변함이 없는 나라임을 보여 줍니다. 이는 유한한 세상 속에 살면서도 영원한 삶을 소망할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땅을 보면 낙심되고 두렵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보면서 설렘으로 사는 것이 바로 성도의 생활임을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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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세대

2024. 8. 9. 22:0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8. 09. 금요기도회

본문: 단 12:4

제목: 방황하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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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조건

2024. 8. 4. 1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8. 4.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일 1:1-4
제목: 동지의 조건

 

 

지난주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친구'의 관계가 인간적인 정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라, 신념과 목표로 하나가 된 '동지'의 의미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믿음의 동지가 되는 기본적인 조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믿는 모든 사람을 동지로써 '사귐'(헬: '코이노니아'=교제, 친교)을 요청하고 있는데, 단순히 사람 간의 친교만이 아니라 '생명', '더불어', '기쁨'으로 사귀는 영적인 관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생명(1-2절).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 '영생'은 죽어서 얻는 구원의 삶을 의미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됩니다(참고, 3:15, 5:11, 20). 믿음의 동지로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바로 육체로 나타나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이 예수의 삶과 뜻을 이 땅에서 세워가는 삶을 목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 더불어(3절, 헬: '메타'=함께, 안에)
사람 간의 교제가 강조되면 친목회가 되고, 하나님 안에서의 교제가 강조되면 수도원이 됩니다. 믿음의 동지는 성도 간의 친교와 교제도 중요하지만, 삼위일체의 하나님 안에 머물며 교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 기도, 말씀 등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적 속성을 바르게 배워서 그 하나님의 성품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사귐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3. 기쁨(4절).
이 기쁨은 단순히 환경이 주는 감정적인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함께 거함으로서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적 기쁨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믿음의 동지로 산다는 것이 상황이 호전됨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더 악화될 수도 있지만 이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한마음으로 거룩한 사귐을 유지하고 있는 동지임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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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모르는 세대

2024. 8. 2. 22:1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8. 02. 금요기도회

본문: 삿 2:10

제목: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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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입니까 동지입니까

2024. 7. 28. 12:15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7. 28.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 15:12-15
제목: 친구입니까 동지입니까

 

 

욥기에서 욥과 세친구 간의 논쟁을 통해 서로의 신앙을 살펴보았습니다. 욥의 친구들과 반드시 비교해 봐야 할 대상이 바로 다니엘의 친구들입니다. 욥의 '친구'를 표현할 깨는 "레아"(친구, 형제, 이웃 등, 일반적으로 가까운 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 비해 다니엘의 '친구'는 "하바르"(연합, 결합, 연결)라는 단어로서, 이 의미를 담은 단어가 바로 '동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는 친구일까요? 아니면 동지일까요?

1. 친구와 동지.
갑자기 닥쳐온 고난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욥의 친구들은 위로와 권면으로 현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 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친구들은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된 상황에서 인간적인 위로보다는 공동 목표인 신앙수호에 마음을 같이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우상숭배에는 목숨을 내놓습니다.

2. 예수님의 친구.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이 말씀하는 '친구'는 우정 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위해 힘을 합쳐 투쟁하는 '동지'의 의미입니다. 심지가를 향해 가는 예수님은 욥과 같이 고난(죽음)의 문제를 앞에 두고 인간적인 위로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다니엘과 친구들처럼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는 뜨거운 동지애를 선언하고 계십니다.

3.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하나님의 친구로 표현할 때나(참고, 약2:23, 출33:11), 죽음을 앞둔 예수님이 말씀하는 친구라는 표현은 '우정'이 아니라 '동지'의 의미인데, 이는 다니엘과 친구들처럼 영적 전쟁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현실 상황인식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영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입니까? 동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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