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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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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 봐라

2022. 1. 16.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열왕기하 5:15-18
제목 : 나아만 봐라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믿고 적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보다는 보고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성경을 이해하기 때문에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나아만 장군의 치유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1. 나아만을 고치신 이유.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한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있어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순종하면 은혜가 회복되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란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북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아람의 군대장관도 순종하기에 고쳐 주신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나아만의 반응.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말에 순종한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이 달성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려 했고,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가고, 림몬의 신당에 가는 것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거나 믿으려는 노력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참 '믿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3. 은혜는 믿음이 아니다.
은혜나 응답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향한 시작이나 동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른 믿음은 하나님을 알고, 이해하고, 예배하며, 그 통치 아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성경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방법으로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신앙생활의 유일한 지침으로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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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말고 믿으세요

2022. 1. 9.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09.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34-36
제목 : 듣지 말고 믿으세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의 신앙 여정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우리이게 도전과 교훈을 줍니다. 3년 넘게 예수님을 따르면서 많은 기적을 목격했고, 직접적인 가르침도 많이 받았음에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났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베드로가 보여 준 헌신과 충성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리고 베드로는 언제, 어떻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까요?

1. 베드로가 가진 믿음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여 그 뜻을 이루는 사람인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세속적인 메시아사상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말씀보다는 자신의 확신을 더 믿었습니다.

2. 베드로의 변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 120명의 성도가 전심으로 기도했을 때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됩니다. 이때 방언의 역사만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도 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 속에도 요엘과 시편의 말씀이 인용되면서 그 말씀이 이루어짐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드이어 말씀이 이해를 넘어 믿음이 되었습니다.

3. 말씀은 듣지만 말고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많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실패한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통해 말씀을 믿음으로써 변화되어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읽고 듣고 암송하도록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믿을 때 능력이 생기고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낼 지혜와 명철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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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이 헌신합니다

2022. 1. 2.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1.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시편 110:1-7
제목 : 즐거이 헌신합시다

 

 

신약성경 속에서 시편 110편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에게 복음과 믿음을 가르치는데 가장 많이 인용된 시편입니다(약 20회 정도). 예수님도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는데 인용하기도 하셨습니다(마22:41-46). 본문은 1-2절은 성부의 역사를, 4-7절은 성자 예수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그 한가운데 '주의 백성'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사역은 무엇일까요?

1. '거룩한 옷을 입고'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거룩한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ㄴ의 자녀로 굽졀되고 성별된 삶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문제 많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수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마치 유니폼을 입은 사람처럼, 예수 믿는 사람인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언행과 삶의 가치관이 믿는 자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2. '즐거이 헌신하니'
'즐거이 헌신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네바다'라는 말인데 '자원' '자발'의 뜻이 있어 레위기에는 '자원예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원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신앙을 뜻합니다.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헌심함으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사역에 동역해야 합니다.

3.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자원하여 헌신함으로써 열정으로 물쳐진 또 다른 '주의 청년'들이 예수님께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마중물'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에 매여있기보다는 다른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주의 일꾼으로 삼기 위해 신앙의 모범으로서 헌신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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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 코로나시대의 희망

2021. 12. 26.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1.12.26. 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46-50
제목 : 성탄-코로나시대의 희망

 

 

어린 나이에 약혼한 처녀에게 임신 소식은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큰 충격이고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사실이 다른 어떤 두려움보다 더 크고 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염려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 가슴 속에 예수님이 구세주로 임하신다면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삶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현 상황을 극복할 유일한 희망입니다.

1. 비천한 자를 복되게 하십니다(48절).
마리아가 자신을 향해 '비천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가난한 목수와 결혼하고, 갈릴리에 거주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마리아의 형편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잉태함으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릴 것을 확신합니다. 모든 사람이 간절히 찾던 행복은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마리아는 알고 있습니다.

2. 연약한 자에게 큰일을 행하십니다(49절).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유능한 사람을 찾는다면 마리아는 제일 먼저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연약한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거러나 그리스도를 잉태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요6:29). 그렇다면 혼란한 세상에서 하는 가장 큰 일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3. 경외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50절).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임신 소식을 듣고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천사의 말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그리고 치러야 할 대가보다 하나님이 베푸실 '긍휼'이 영원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믿음의 대가는 혹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값비싼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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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 속에 사는 예수님

2021. 12. 19. 12:43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12.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4:16-19
제목 : 적진 속에 사는 예수님

룻이나 모르드게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으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이 믿음의 참 모습이라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요? 예수님은 탄생하자마자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공생애를 시작하자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고향에서 처음으로 행하신 설교입니다. 이 설교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격게될 갖은 핍박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실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예배하는 삶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고향에서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예배드렸습니다. 당시 종교인들의 타락과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임에도 회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주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못하는 이유들은 단지 핑계에 불과합니다.

2. 말씀으로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 61:1-2의 말씀은 예수님의 삶을 압축한 엑기스와 같은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삶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배우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3. 사명으로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삶의 방향을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자', '눌린 자'들을 위한 삶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메시야로서 더 멋있는 모습의 사역이 가능했지만 이런 것을 사명으로 삼고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받은 사명을 하나님의 뜻이요 운명이로 알고 살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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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진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2021. 12. 12. 12:43 | Posted by 소망지기

 

2021.12.1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에스더 3:1-6
제목 : 적진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에스더서에는 예루살렘으로 귀한하지 않고 이방인 땅에 정착한 유대인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룻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란 언급도 없고, 하나님의 특별한 말씀도 없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이방인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책입니다. 모르드개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함께 살펴봅시다.

1. 세상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2-4절).
하만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각'은 아말렉의 왕 이름입니다.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아말렉의 후손이 하만입니다. 유대인으로서 아각 사람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지조를 지키는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비록 이에 대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단호히 영적인 정절을 지키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2.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합니다(8절).
하만이 왕에게 보고한 것처럼 이방 나라에 살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8절). 세상은 마귀의 정체성으로 살 것인지(참고, 계13:17), 하나님의 정체성으로 살 것인지(참고, 계14:1)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핍박을 당하더라도 하나님 자녀의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삽니다(4:14절).
사람들은 왕후가 도니 에스더가 위기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모르드개는 하나님은 에스더가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도 능히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나 권세보다 하나님과 연합된 삶이 능력임을 잘 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참고, 9: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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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이 전하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

2021. 12. 5.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1.12.05. 주일오전예배
본문 : 룻기 4:9-12
제목 : 룻이 전하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백성들과 장로들은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같이 되기를 축복합니다(12절).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과의 사이이에서 태어난 베레스(참고, 창38장)가 어떻게 축복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요? 믿음의 가문을 세운 다말에 견주어지는 룻의 이야기는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룻기가 말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1. 말씀대로의 사랑.
공통으로 이방인인 다말과 룻은 자기의 대를 잇기 위해 '고엘'을 추구한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자신의 원함이나 상황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 뜻에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이고 육감적인 사랑은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기 위해 어떤 비난이나 조롱도 감수할 각오를 하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2. 쟁취하는 사랑.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은 '어쩌다'의 사랑이 아니라 '기필코'의 사랑입니다. 범죄한 인간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회개를 촉구하여 구원코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듯,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보여드릴 사랑 또한 '반드시'의 사랑입니다. 다말과 룻이 보여주는 열정과 치밀함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귀한 믿음의 모범입니다.

3. 이 모습 그대로의 사랑.
세상의 사랑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이나 약함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비로소 완전하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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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가 품은 믿음, 소망, 사랑

2021. 11. 28. 12:40 | Posted by 소망지기

 

2021.11.28. 주일오전예배
본문 : 룻기 4:9-12
제목 : 룻기가 품은 믿음, 소망, 사랑

룻기는 흔하지 않게 이방 여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성경책입니다.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이 룻기를 성경으로 인정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룻기는 단순히 유대 남자와 모압 여자가 결혼하여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룻기를 통해 말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기 바랍니다.

1. 룻기의 시대적 배경.
룻기는 사사시대의 베들레헴을 배경으로 하는데, 사사 시대의 특징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삿21:25)로 압축되고, 베들레헴은 사사기 17장 이후에 소개되는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타락의 도시입니다(참고, 삿17:7, 19:1). 그러나 이토록 타락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 속에서 무명의 한 가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시대의 희망은 여기 있다. 
사사기를 통해 사가시다는 지도자나 백성들이 모두 타락한 시대임을 고발합니다. 영적 암흑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 무명의 한 가정을 통해 시작됩니다. 가난한 과부요 이방인이지만 타락한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시대적 희망은 유능한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3. 믿음은 운명을 바꾼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은 일반적인 결혼이 아니라 끊어진 가문을 이어주는 '기업 무를 자'('고엘')로서 결혼입니다(참고, 신25:5-6). 이 결혼으로 운명이 바뀐 사람은 누구일까요? 원래는 보아스가 나오미의 가문을 계승해 주어야 하지만, 성경은 보아스의 가문을 계승한다고 말합니다(12절). 믿음의 헌신은 결국 자신을 유익되게 만들어줍니다. 믿음의 헌신에는 결코 공짜가 없고 헛것이 없습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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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말고 사랑하세요

2021. 11. 21. 12:47 | Posted by 소망지기

 

2021.11.2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12:1-2
제목 : 믿지 말고 사랑하세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로마서의 전반부(1-11장)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후반부(12장-15장)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세상에서 보고 듣고 배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행해져아 하는데 그것은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효율과 효과를 가장 큰 가치관으로 여기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때로는 비효율적이고 손해를 보더라도 성경이 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마음은 행동의 '뿌리'입니다.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임기웅변식의 행동이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마음의 중심으로 보시는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3.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은 '불레'와 '델레마'를 사용하는데 '불레'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순종해야 할 때, '델레마'는 선택의 여지가 있어 잘 분별해야 할 대 사용합니다. 본문에서는 '델리마'로 사람 중심에서 분별하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에서 선하고, 기뻐하고, 온전케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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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감사

2021. 11. 14.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11. 14.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신명기 2:7
제목 : 광야의 감사

 

광야의 삶은 힘들고 고달픈 생활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으면서도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광야처럼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 봅시다.

1.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광야는 하나님의 복과는 상관이 없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고 하는데 어떤 복일까요? 믿는 자에게 광야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무리 힘든 과정도 추억이고 감사가 됩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경유지로 만듭니다.

2.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성경에서 '안다'라는 의미는 지적인 인식의 차원만이 아니라 의지의 차원도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환경적인 힘듦속에 있어도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하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3. '이 사십년 동안을 너희와 함께 하셨으므로'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땅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지 광야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천국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천국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4.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넉넉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는 부족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만나나 물이나 환경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넘치는데 있지 않고, 있는 것 중에서 부족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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