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소망지기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2017. 05. 07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1:6-8

 

 

 

최초의 하나님나라였던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다시 하나님나라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라(6-7절).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관심을 '너희'에게 돌리고 있습니다('너희가 알바 아니요'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주변상황을 의식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 상황에서 살아가야 합니다.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으로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삶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2. 성령으로 살아라(8절 상).

예수님은 죽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성령의 임하심을 말씀하셨고(요14:16,26, 16:7). 부활하신 후에도 말씀하셨습니다(눅24:49). 그리고 행1:4-5에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성령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티끌(히:'아파르')'로 만들어진 사람은 그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티끌속에 하나님의 생기를 가졌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으로 채워질때만 가능합니다.

 

3. 증인으로 살아라(8절 하).

'증인'이란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그것에 대하여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지 않고 '증인'이 되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나라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나 성도들은 예수님으로 완성된 하나님나라를 경허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주는 목적은 하나님나라의 증이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2017. 04. 30 주일 오전예배

 

 

창세기 2:4-9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세우기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 곳으로 인간을 인도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최초의 하나님나라였던 에덴동산을 통하여 우리가 세워야할 하나님나라의 구성요소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1. 사람(7절).

하나님나라 첫 번째 구성요소인 사람을 '땅의 흙'으로 빚어 (히:'야짜르') 만들었습니다. 땅 ('아다마'=흙, 땅)에 있는 흙('아파르'=먼지, 티끌)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참고, 2:19 흘='아다마')가장 보잘 것 없는 땅의 '먼지나 티끌'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생기'가 임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됐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를 자랑합니다.

 

2. 에덴동산(8절).

하나님나라 두 번째 구성요소로 동방에 있는 에덴(기쁨, 즐거움)에 세상과 구별되도록 동산(히:간=울타리)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에덴을 하나님나라의 '동산'으로 정하신 것은 그 이름의 의미처럼 모든 삶에서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하신 것입니다.(살전 5:16-18).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상황에서 기뻐하는 삶(에덴)이지 내가 나의 기쁨을 추구하는(아단)삶이 아닙니다.

 

3. 두 나무(9절).

하나님나라의 세 번째 구성요소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선(히:토브=창1:4,10,12,18,21,25,31)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고, '악'이란 이것의 반대 개념입니다. '사람'의 불순종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으로 다시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계2:7). 그래서 하나님나라는 나의 의지로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11) - '드림과 나눔'

2017. 4. 23. 12:44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4. 23 주일 오전예배

 

 

신명기 14:22-29

 

 

 

세상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주인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돈'이 하나님의 자라를 위협한은 형국이 되어 갑니다. 하나님나라의 물질관을 잘 대변해주는 것이 십일조와 헌금생활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돈' '헌금생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율법이전의 십일조

성경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십일조의 모습은 두 번 등장합니다(창 14장의 아브라함, 28장의 야곱). 이런 모습은 고대사회에서 전반적으로 행해지는 습관이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은 왕이나 신에게 보호와 승리의 감사로 드려지는 관례였습니다(참고, 창47:26).

 

2. 율법시대의 십일조

하나님의 율법속에 담긴 십일조의 의미는 고대사회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땅의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에게 주고 또한 고아와 가난한 자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도록한 것입니다(민18:21-31, 신12:5-8, 11-12, 17-19, 26:12-15). 당시 주변 사회에서 행하듯 신적인 존재에게 의무적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가난한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3. 신약시대의 십일조

예수님으로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십일조'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완성되었습니다(마5:17-18). 모든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마22:37-40)임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의 물질은 이러한 두 가지의 큰 원리에 따라 사용되어야 합니다. 십일조의 유무효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으로 '드리고' 이것을 이웃과 어떻게 행복하게 '나눌'것인가의 문제입니다.

 

 

 

 

2017. 04. 16 주일 오전예배

 

 

골로새서 2:13-15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는 흉악범을 사형시키는 형틀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극한 죄를 지어 사형선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십자가가 능력이고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기독교에서 십자가를 높이 세우는 것은 십자가 자체의 의미보다는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어둠의 권세들과 싸워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1. 승리의 원천(15절)

십자가로 '이기다(헬: '트라암뷰오')는 의미는 단순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 로마시대에 큰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포로와 전리품을 앞장세우고(참고,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당당히 행진하는 장군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모든 권세들을 이긴 승리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싸울 무기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참고, 고전2:2, 갈6:14)

 

2. 십자가의 능력(13-14절)

십자가의 능력을 다음의 5가지로 말씀합니다.

 '그와 함께 살리시고' : 죄의 삯인 사망을 이기고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리심.

 '모든 죄를 사하시고' :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심.

 '증서를 지우시고' : 마귀와의 모든 거래와 계약을 다 지우고 취소시켜 주심.

 '제하여 버리사' : 우리와 상관이 없도록 멀리 던져버리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죽도록 사형선고내리심.

 

3. 영적전쟁의 전략

영적전쟁을 싸워나가는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 물질, 명예, 지식 등으로 싸워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과 권세뿐입니다(고후10:4).

 

 

 

 

2017. 04. 09 주일 오전예배

 

 

여호수아 21:43-45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에게 큰 기대를 하면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나라를 세우기 보다는 십자가에서 죽음 을 맞이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낙심하여 뿔뿔이 흩어졌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는 완성되었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온 땅을 다 주셨으므로'(43절 상).

가나안땅을 주기로한 약속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데(45절), 그 땅이 완전히 정복되었을까요? 아닙니다(수13:1, 삿1:19, 21, 27-35). 가나안족속을 다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시기로한 땅에 대한 약속을 확증받았을 때 다 정복하지는 못했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제 자신들의 소유가 됐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만이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2. '거기에 거주하였으니'(43절 하).

가나안 땅에는 여전히 이방족속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사이에 거주하였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의 위협과 위험요소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주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완전한 상황이나 상태가 아니라, 완전케하시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삶입니다.

 

3.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44절).

하나님나라의 안식은 아무런 위험요소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맞선 자가 없는' 상태의 안식입니다. 원수들은 주변에 있지만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을 때 안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 주셨기에' 우리의 힘으로 그들을 통제함으로써 안식을 누리는 곳입니다.

 

 

 

 

2017. 04. 02 주일 오전예배

 

 

사무엘하 7:4-16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구약시대의 '성전'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윗을 통하여 성전과 교회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고, 하나님나라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봅시다. 교회 건물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장엄한 분위기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모습일까요?

 

1. 성전은 무엇인가?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허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성전'이라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저 '내가 살 집(히:바이트)'이라고 불렀습니다(5, 6, 7, 13절). 더구나 누구에게 건축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냐고 반문합니다(7절). 하나님에게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필요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사는 집과 같으면 족하고 오히려 하나미은 다윗에게 믿음의 집을 세워주길 기뻐하셨습니다(참고, 7:14, 16, 29).

 

2. 왜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집을 지을 사람은 '네 몸에서 날 네 씨'라고 합니다(12절). 이때 이미 솔로몬이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함고, 1절). 그러면 솔로몬이 아닌 다른 후손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게 될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참고 요2:19-22).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울 하나님의 집을 굳이 다윗을 통해 '성전'처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고 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지어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분명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건물이나 예배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믿음의 집을 짓기 원하십니다(참고, 고전3:9-17). 때로는 하나님나라의 가장 큰 장애물이 선전과 교회가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2017. 03. 26 주일 오전예배

 

 

로마서 14:17

 

 

 

오늘 본문은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3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 '평강', '희락'.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평강'과 '희락'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관계가 바르게 형성된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느 것이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열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갈5:22). 이 두가지가 하나님나라에서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주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1. '평강' - 헬: '에이레네', 히: '샬롬'  번역: 평강, 평화, 평안, 화평

유대인들에게 '샬롬'은 일상에서 서로 나누는 인사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샬롬'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느 사람 관계에서나 주변 환경과의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안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요14:27).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에서는 세상적이고 일반적인 '평안함'이 우선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평안함'에 있습니다. 이 평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엡2:14-15). 여러분은 하나님과 안녕하십니까?

 

2. '희락' - 헬: '카라'  번역: 기쁨, 즐거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하나님나라는 기쁨으로 가득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와는 달리 이 땅의 하나님나라에도 역시 슬픔과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되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마13장에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처럼, 종들은 가라지를 보면서 불평하지만 주인은 알곡에 주목하며 추수때를 기다립니다. 하나님나라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기뻐서 기쁜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기쁨을 발견합니다(빌4:4). 많은 사람들이 요즘은 웃을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뻐할 일이 생기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017. 03. 19 주일 오전예배

 

 

로마서 14:17

 

 

 

오늘 본문은 하나님나라의 3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 '평강', '희락'. 오늘은 그 첫번째인 '의'에 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항상 '의'와 함께 세워집니다(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도들이 가져야 할 '의'는 어떤 의미이며 모습일까요?

 

1. '의'란 무엇인가?

세속적인 '의'의 의미는 그 사회의 윤리와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올바름'입니다. 그래서 세속적 '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모습과 모양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성경적인 '의(히: '짜다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올바름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상황에 관계없이 동일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게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 또는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의'가 만들어 집니다.

 

2. 하나님나라의 '의'의 실제.

하나님나라의 '의'는 세속적인 '의'의 의미와는 다릅니다. 창세기 37장부터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하다가 창38장은 유다의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그것도 부끄러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이유(참고, 창49:8-12, 룻4:12, 마1:3)는 며느리 다말의 믿음때문입니다. 다말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기에 도덕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혈통을 이어갔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의'가 되었습니다(창38:26).

 

3. 어떻게 의롭게 살 것인가?

사람 사이에서도 신뢰의 관계가 중요하듯, 하나님나라의 삶도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는 '의리(義理)'의 삶입니다. 종교적인 열심난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심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하는(참고, 삼상8:7-8) 인격적인 관계의 삶이 하나님나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5) - '감추인 보화'

2017. 3. 12.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3. 12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13:44

 

 

마태복음 11장에는 7가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시려고하는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생각해보고, 이에 합당한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누립시다.

 

1. 일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나라.

'보화'이 하나님나라는 '밭'으로 상징되어지는 우리의 일상속에 존재합니다(참고, 눅 17:21). 교회, 기도원, 부흥회처럼 '있을 만한 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듯이 모든 곳에 존재하시기에 하나님이 계실만한 특별한 곳을 찾아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상황속에도, 기쁘고 즐거운 삶속에도, 고통과 번민의 현장 속에도 하나님나라는 존재합니다.

 

2. 일상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나라.

그런데 감추어져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신앙의 열심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감추어 있기 떄문이듯, 비록 눈에는 '밭'만 보이겠지만 그 안에 '보화'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단순히 평범한 일상이 아닌 보화로 가득한 의미있는 곳입니다.

 

3. '밭'을 보지말고 '보화'를 보라.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다음 반응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천국은 '참노'하는 자의 것처럼(마 11:12), 자신의 전부를 바쳐서 밭을 삽니다. 이것은 밭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보화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 사람은 밭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화를 보면서 행복해 합니다. 이것이 믿음생활입니다.

 

 

 

 

2017. 03. 05 주일 오전예배

 

 

이사야 11:6-9

 

이사야 11장은 하나님이 메시야를 통해 회복하실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참고 사64:25). 특히 오늘 본문은 각종 짐승들을 통해 장차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나라는 어떤 모습입니까?

 

1. 나는 나로 존재해야 합니다.
본문에 여러종류의 짐승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마찬가지로('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 '나'는 '나'로 존재함을 뜻합니다. 내가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실수중의 하나가 바로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다가 지쳐버린다는 것입니다,

 

2. 유일한 나는 유일한 너와 '함께'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다양함이 각기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나의 '다름'은 나의 개성이나 독립성을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다름'과 옂합과 조화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유다의 사자인 예수님이 어린양이 된 것은 사자로서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죄인인 인간과 연합되고자 스스로 어린양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우는 하나님나라는 이웃을 위하여 스슷로 나의 잇빨을 뽑고, 발톱을 뽑고, 맛없는 풀도 기꺼이 먹는 삶입니다.

 

3. 하나님의 지식은 무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삶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히: 다아트)'에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삶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에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knowing about God)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knowing God)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없음변 '구별'과 '차별', '연합'과 '통합'의 의미를 분별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