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하고 굳센 것을 누른다는 뜻입니다. 어떤 상황에 대처할 때 강한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이기는 것 같지만 부드러움으로 대하는 것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부드러움은 굳셈을 제어하고 약한 것은 능히 강한 것을 제어하는 힘이 있습니다. 약함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강함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강한 것은 늘 약하고 부드러운 것에 무너지게 됩니다.
미국 콜로라도의 한 산봉우리에 400년 동안이나 자라오던 거대한 나무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콜롬버스가 산살바도르에 상륙했을 때 그 나무는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나무였고, 청교도들이 미국에 왔을 때는 그 나무는 반쯤 자랐을 것입니다. 그 나무는 긴 세월동안 14번이나 벼락에 맞았고, 헤아릴 수 없는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그만 딱정벌레의 공격을 받고 그만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벌레들은 나무의 속을 파먹어 나무의 버티는 힘을 약화시켰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거센 폭풍과 벼락을 이겨온 이 거목이 아무 것도 아닌 작은 발레들에게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노자’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음을 당하고 나면 굳어지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게되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그렇기에 나무가 강하면 꺾이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자리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알건마는 그 이치를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가 긴장되고 각박해질수록 부드러움을 이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다고 힘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큰 바윗돌을 들기 위해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저마다 힘 자랑을 하면서 바위를 들려고 애썼으나 모두 실패했지만 한 작은 아이가 지렛대를 이용하여 큰 힘 안들이고 바위를 옮겨 놓았다는 이야기는 ‘힘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조건 힘만 쓰는 것보다는 지혜롭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비록 약할지라도 능히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강한 쇠라도 물 앞에서는 약해집니다. 녹이 쇠를 점점 약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강풍보다는 따스한 햇살이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듯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강함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사회가 될 때 살맛 나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마11:29)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아무런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드러움이 곧 강함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들과 만나게됩니다. 그럴때일수록 나의 감정, 나의 혈기, 나의 기질로 맞대응할게 아니라,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겸손해지는 것이 곧 이기는 지름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강한 자가 가지는 여유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을 낮출 때입니다.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곧 강함입니다.
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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