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는 큰 것은 무조건 좋다는 식의 ‘점보 신드롬’에 현혹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큰 냉장고, 큰 평수의 아파트, 배기량이 큰 자동차, 등 자신의 형편과는 관계없이 주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큰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크고 비싼것이어야 상대적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큰 것’들이 시련을 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작은 것’에 관심을 가기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작고, 간편하고, 다기능의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기업들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교차로에 내 걸린 아파트 분양 현수막을 보면 ‘큰 것’의 비애는 더 커 보입니다.
남북한의 최대 현안인 핵문제도 따지고 보면 '작은 것'에 기인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아주 작은 원자의 집합체로서, 원자는 중앙의 원자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구성되며 원자핵은 양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자핵은 외부에서 중성자를 흡수하면 둘로 쪼개지는데 이를 원자핵분열이라 합니다. 이러한 핵분열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원리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라늄 1g이 핵분열 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약 1,000kw(열량)이며 이는 석탄 3톤을 태울 때 내는 열량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핵분열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에 발전용 원자로나 큰 위력을 가진 핵무기로 이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것을 가르쳤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중의 한 사람은 자기 스승을 배반하기까지 했지요. 결국 예수님은 11명의 보잘 것 없는 ‘작은 자’들을 이 땅에 남겨두고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로 말미암은 복음의 능력은 세대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까지 더욱 힘있게 전파되어 갈 것입니다.
결국 세상은 ‘큰 것’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비교우위에 있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넓고, 크고, 많고, 비싸고... 반대로 좁고, 작고, 적고, 값싸고... 현재 놓여진 상태보다 더 결정적인 조건은 누구의 손에서 사용되어 지는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들려진 어린아이의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5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의 도구가 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크고 많은 것 보다는 작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이 시대를 열어 가시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작은 것이 더 크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 절망하기 보다는 작더라도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어지길 위해 더 기도하고 헌신하는 신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작은' 내 자신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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