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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에 해당되는 글 397

  1. 2018.05.13 하나님의 기쁨
  2. 2018.05.06 우리의 자랑
  3. 2018.04.29 우리의 가데스바네아
  4. 2018.04.22 구원받았습니까?
  5. 2018.04.15 부부 속에 숨겨진 비밀
  6. 2018.04.08 비슷한 것은 가짜다
  7. 2018.04.01 세개의 십자가
  8. 2018.03.25 혼돈의 시대의 신앙
  9. 2018.03.18 벧엘과 벧아웬
  10. 2018.03.11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하나님의 기쁨

2018.05.13 15:23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5. 13.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17:1-5

 

 

 

5월은 가정의 달로 가족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기뻐할 선물을 정성껏 준비했지만 정작 상대방은 감동이 없을 때 난감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성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할까요? 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그것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즐거움을 드리는 삶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기쁴게하는 생활을 합시다.

 

1. 하나님의 아들을 기뻐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또한 다른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케만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참고, 골1:19-20). 예수님만 한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으로 행하는 모든 자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엡1:5).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2. 하나님의 일(삶)을 기뻐합니다.

오늘 변화산의 이야기의 앞뒤에는 특별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언급입니다(16:21-27, 17:9). 예수님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전진하고 있습니다. 마12:18-21의 내용도 예수님의 삶에 관한 하나님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속에 있습니다.

 

3. 거룩한 헌신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일(삶)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헌신'을 성경에서는 '영적예배'라고 합니다(롬12:1). 영적예배란 초대교회 당시의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제사나 의식과 는 달리 예수님으로 인한 전혀 다른 예배를 의미합니다(요4:23-24). 교회 안의 예배예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거룩히 구별된 삶의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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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랑

2018.05.06 15:21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5. 06. 주일 오전예배

 

고린도후서 12:9-10

 

 

 

세상적인 가치간과 성경적인 가치관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의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세상중에 살다보면 이러한 다름을 망각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신앙생활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적인 삶으로 인한 '자랑거리'는 어떤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가 추구하고 세상에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1. 강함이 아니라 약함이 자랑입니다.

바울은 육체적인 질벼으로 인해 간절히 기도한 결과, 치료되기 보다는 이런 '약함'의 의미를 깨닫고 오히려 기뻐하고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랑은 단순히 우리의 '약함'이 아니라 '해석되어진 약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약함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그 약함의 현상이 아니라 그 의미로 인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이자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약함은 말슴으로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2. 성공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랑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몸으로 복음을 전파할 때 더 많으 결과를 얻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육적이 회복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여겼습니다(참고, 갈6:14, 빌3:3). 우리의 만족이나 성공보다는 예수님을 드러내고, 그 은혜를 누리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3. 최고가 아니라 최우선이 자랑입니다.

세상적인 가치는 '최고', '최대', '최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치는 '최우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첫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간의 남은 '짜투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간의 '가장 먼저'를 구별하여 드리는 신앙의 모습이 우리의 자랑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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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데스바네아

2018.04.29 15:32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4. 29. 주일 오전예배

 

신명기 1:19-21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순간순간 확인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항상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기 전에 항상 '가데스바네아'(또는 '가데스')에 머물게 합니다. 우리 신앙의 가데스바네아는 어디일까요?

 

1. 가데스바네아

이스라엘 남쪽 광야에 있는 곳으로 '가데스'('카도쉬' = 성별, 구별)의 원래의 이름은 '엔미스밧'(창14:7, '아인'(샘, 눈) + '미슈파트'(심판, 판단))입니다. 원래는 '판단하는 눈' 또는 '심판의 샘'이란 이름을 가진 곳인데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란 '가데스'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네아'란 그 뜻이 분명치 않지만 '성소'또는 '특별한 곳'으로 해석합니다. 성경에서는 '가데스'와 '가데스바네아'를 혼용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믿음과 현실사이에서의 선택의 순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말씀과 성막을 통한 예배방법을 배우고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 간 곳이 가데스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10명의 가나안 정탐꾼들의 정탐보고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은혜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방법과 나의 방법사이에서의 선택의 순간.

38년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가데스로 옵니다(민20:1). 그곳에서 물이 없어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반석에서 물을 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로인해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땅에 못들어 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방버븡로 살아가는지 확인하고자 날마다 '가데스바네아'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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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았습니까?

2018.04.22 15:26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4. 22.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10:25-37

 

 

 

'어떻게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성도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참고, 눅18:18). 왜냐하면 '구원'이나 '영생'은 단순한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생활의 실체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관해 전문가인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구원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진정한 구원의 참 모습을 발견해 봅시다.

 

1.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여기며 예수님을 시험하는 율법교사.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구원의 질문을 던지는 율법교사는 지식적으로도, 삶으로도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자부심과 확신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구원에 대한 확신은 비록 분명한 성경지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만의 만족과 교만에 빠져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진정한 구원의 삶에 관해 들려주신 비유가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2. 구원은 '이와 같이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교사는 구원에 관하여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바가 무엇인지 정확학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옳음'(헬: '디카이오스')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고 있는 지식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행함만으로의 구원이 아니라, 믿음에 합당한 실천적인 삶으로의 구원입니다.

 

3. 결국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대답에 28절 '이를 행하라'하시고 37절에서도 '이와 같이 하라'하시면서 행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사랑(공의)와 이웃사랑(정의)의 구체적인 행함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것음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입니다. 영생의 문제를 질문하는 부자관원에게도 '나를 따르라'(눈18:22)고 하셨듯이 구원에 이르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사마리아사람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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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속에 숨겨진 비밀

2018.04.15 13:31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4. 15. 주일 오전예배

 

창세기 2:18-25

 

 

 

남녀가 만나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쳐 가정을 세우는 것은 단순히 '사랑'의 결실만이 아닙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창조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부관계 소ㅗㄱ에는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비밀을 바르게 이해하고 살아갈 때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또한 건강한 가정을 세움으로 행복과 보람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부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요?

 

1. 인간 창조의 비밀입니다.

'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을까?'란 질문에 바른 대답은 '행복한 삶을 주시기 위함'입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함께 힘쓰도록 하셨습니다(참고, 18절). 따라서 부부의 행복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그 뜻을 순정하는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부부관계 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2. 예수님과 교회의 비밀입니다.

결혼을 통해우리이게 '가정'을 경험하도록 하신 하나님은 믿고 따르는 성도들('교회')에게 자신을 '남편'으로 표현합니다(참고, 렘3:14, 사54:5, 호2:16, 계21:2, 엡3:31-32). 부부관계는 하나님과 성도관계의 축소판입니다. 남펴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는 것은(엡5:33)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당연한 삶의 모습입니다.

 

3. 하나님 성품의 비밀입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여자'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합니다(23절, 참고 창3:20).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그의 자녀로 부르시는 것과 같습니다(참고, 고전1:2, 딤후1:9, 계17:14).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인한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녀가 된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를 때 부부의 존재의 의미가 바뀌어 인생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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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은 가짜다

2018.04.08 15:24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4. 08.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2:43-47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교회성장과 부흥에 대한 소망은 너무나 간절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를 교회성장의 롤모델로 삼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외적성장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중요한 내적 성장요인들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저나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초대교회의 신앙의 진면목은 어떤 모습일까요?

 

1. 믿음의 헌신을 후원하라(44-45절).

'가난'의 일반적인 단어는 '프토코스'인데 초대교회의 '가난(행4:34)'은 '엔데이스(앤+데오)'로 신양성경에 단 한번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신앙을 위해 재산을 버리다가 가난해진 사람'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구제'의 의미보다는 복음을 위해 세상의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음과 이들을 돕는 일이 자발적으로 일어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2. 전도하러 교회로 가라(46절 상).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있는 성전에는 왜 날마다 가서 모였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성전에서 예배드리러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참고, 행전에서 예배드리러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참고, 행5:17-21, 25, 42). 비록 육신적인 두려움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안타까워 그들이 죽인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전하기 위해 성전에 간 것입니다.

 

3. 집을 교회로 바꿔라(46절 하).

'떡을 떼고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친히 헁하신 성만찬을 의미합니다. 즉, 예배의 형태가 완성되기 전이기에 각 가정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성찬과 함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성전 중심의 예배와는 달리 자신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변화됨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항상 드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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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십자가

2018.04.01 15:24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4. 01.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23:49-43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 좌우에는 행악자 두 사람도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십자가형은 가장 무서운 사형 형벌이기에 이 사람들도 아주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똑같은 십자가 형벌을 받았지만 이 세사람의 운명은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들도 저마다 지고자는 크고 작은 십자가가 있습니다(참고, 막8:34). 우리들이 지고가는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십자가를 어떻게 지고 가야 할까요?

 

1. 비방하는 행악자가 달린 십자가.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롬3:10). 죄를 지은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용서받아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행악자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합니다. 많은 불신자들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나의 죄를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2. 회개하는 행악자가 달린 십자가.

또 다른 한 행악자는 비록 흉악한 죄를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구원의 소망을 고백합니다. 큰 죄를 저지른 죄인으로서 자격없지만 그는 간절히 구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할 때 구원이 임합니다.

 

3.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

예수님은 두 행악자와는 달리 죄가 없음에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져야 할 십자가는 구원받은 행악자의 십자가처럼 겨우 자신의 영혼만 구원을 얻기 위한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의 십자가가 어느 때 보다 절실해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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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의 신앙

2018.03.25 15:21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3. 25.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7:18-23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사명을 가지고 예수님께 세례를 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헤롯왕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세례요한의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의 정체를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신앙은?

 

1.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흔들리는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말고 오히려 믿는 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여러 가지 미디어를 통해  '듣는'데 익숙한 시대입니다. 듣고 아는 것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들은 것을 이해하여 그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놀리로는 신앙을 지킬 수 없습니다.

 

2.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22절).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현장을 잃어버리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칫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인 것을 직접 보여주십니다(21절). 형식적이고 이론적인 신앙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적용되고 실천되어지는 실제를 보여주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첩경입니다.

 

3. 분별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31-35절).

예수님은 당시의 시대모습을 장터에서 장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비유하면서 무감각하고 이기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시대임을 진단합니다(31-32절). 그래서 사람들마다 자기생각에 사로잡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33-34절). 세태를 분별하지 못하면 그 흐름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합니다. 시대를 분별해야 시대의 미혹을 이기고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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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과 벧아웬

2018.03.18 15:33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3. 18. 주일 오전예배

 

호세아 4:15-17

 

 

 

벧엘('하나님의 집')과 벧아웬('죄악의 집', '우상의 집')은 같은 장소를 서로 다르게 부르는 이름입니다. 벧엘은 아브라함(창12:8)과 야곱(창28:10-22)과 관련하여 유대인들에 신앙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은혜로운 곳입니다. 그런데 후에는 죄악이 만연한 곳으로 변질되어 이곳을 차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 때 은혜로 충만했던 사람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모습과도 흡사합니다. 이런 변질의 이유를 찾아봅시다.

 

1. 벧엘의 의미.

창28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형 애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참고, 창28:13-15)은 도망가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란으로 도망하여 20년간 고생하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2. 벧아웬의 의미.

왕상12:35이하를 보면 북이스라엘을 건국한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하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제사지냈습니다. 벧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모양과 형식은 갖추었지만 의미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았을 때 우상숭배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3. 벧엘이 벧아웬이 된 이유

은혜로웠던 신앙이 죄를 짓는 삶으로 변질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여로보암처럼 내용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은 신앙. 2. 하나님의 뜻은 사라지고 인간의 축복만 구하는 신앙. 3.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필요가 먼저인 신앙. 4. 하나님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신앙. 5.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기는 신앙, 등입니다. 여러분은 벧엘에 거합니까? 벧아웬에 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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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2018.03.11 15:28 | Posted by 소망지기

 

 

2018. 03. 11. 주일 오전예배

 

골로새서 1:18

 

 

 

교회란 단순히 교단이나 교리적으로 합의하는 사람들이 특정 건물속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신약에서는 '교회'로 지칭하는 것은 하나님을 왕이요 구세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관이 바르게 세워져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교회의 중요성을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담긴 교회의 참 모습을 살펴 봅시다.

 

1.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는 사실은 성도들에게 크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선은 성도들의 특별한 존재감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오직 교회를 향해서만 '나의 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만이 특별한 '연합'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루는 신령한 지체가 됩니다.

 

2. '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

'머리'라고 하는 표현은 '지배'와 '통치'의 의미를 가집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써 교회의 모든 존재와 기능을 주관하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모든 존재의 의미이며, 교회의 모든 활동을 주광하고 있기에 교회는 철저하게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참고, 엡4:15-16, 골2:17-19).

 

3. '교회는 그리스도의 삶'.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란 사실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사신 것처럼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 또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쑤님의 일꾼된 바울은 24절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고난과 환란의 삶일지라도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겠다는 거룩한 고백입니다. 교회는 이런 고백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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