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치며 사는 삶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단연 미식축구입니다. 미식축구의 볼거리는 태클입니다. 선수들은 사슴의 싸움처럼 정면으로 부딪쳐 공격수의 공격을 가로 막습니다. 수비도 태클, 공격도 태클, 승리의 비결은 부딪침에 있습니다. 인생도 부딪쳐 봐야 압니다. 몸으로 부딪치지 않고 머릿속만으로 계산하는 것은 실패의 시작입니다.
당 나라에 ‘노생’이란 청년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노인의 베개를 베고 낮잠을 잤는데, 꿈에 도시에 가서 공을 세우고 부잣집 딸과 결혼하고 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얼마 안 지나 병에 걸려 죽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노생은 다음 날 아침 “부귀공명도 별 것 아니구나!”하고 한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꿈만 꾸다가 포기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풍자한 유머입니다. 몸을 던져보기 전에는 성패를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련의 솔제니친은 감시와 억압과 고통 속에서 26만 단어에 달하는 대작 ‘수용소 군도’를 썼습니다. 6백만 명의 정치범이 갇혀있는 소련 수용소의 내막을 고발하는 이 소설을 위하여 227명의 증언을 수집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평온한 환경에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설 내용은 스탈린뿐 아니라 당시 신성불가침이라는 레닌까지 규탄하는 것이므로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고는 시작도 못할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암살당하면 비밀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꼭 출판해 달라.”는 말을 측근에게 늘 유언처럼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의 계획은 이루어졌고, 마치 작은 돌멩이가 부딪쳐 큰 유리창을 깬 것처럼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인생의 중간에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잘 부딪쳐 빛난 흔적을 남기다가도 마지막에 실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최후의 말은 “다 이루었다!”는 선언입니다. 이 속에서는 끝까지 부딪치고 후회하지 않는 승리의 환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죽는 순간에 “프랑스... 군대... 조세핀...”하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조세핀은 이혼한 부인의 이름인데, 그가 평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세 개의 낱말이 운명하는 입술에서 새어나온 것입니다. 이 말에는 ‘그대로 눈 감기 아쉬운’ 여운이 처량하게 감돌고 있습니다. 시인 괴테는 “창문을 열어다오. 빛을... 빛을...”하며 숨을 거두었고, 베토벤은 “친구여 박수를... 희극은 끝났다”하고 말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두 열심히 산 천재들이었으나 인생의 끝자락에서는 허무함에 젖어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행복하고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열적으로 부딪치며 사는 사람이 그래도 만족할만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때로는 경제적인 위기, 애정의 위기, 결혼의 위기, 건강의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등, 우리의 삶을 무겁게 만드는 삶의 요소들과 당당하게 부딪치며 살 때 오히려 삶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도 실제로 부딪쳐 보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어려운 일과 불가능한 일의 차이에서, 불가능하다는 일은 단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뿐이다”고 했습니다. 좋은 목재는 쉽게 자란 나무가 아닙니다. 추위와 더위, 비바람과 눈보라에 오래 동안 시달리고 부딪치면서 단단해 집니다. 문제 앞에 용기를 잃지 말고 끝까지 부딪쳐 봅시다.
2019년의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있습니다.
땅 밑에서 머리를 부딪치며 올라오는 새싹들 처럼 삶의 유리벽을 향해 부딪치며 삶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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