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시작이 중요하다는 의미지요. 시작도 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작은 반이지만 마지막은 전부다.’는 말을 즐겨합니다. 아무리 시작을 잘 하였어도 끝이 좋지 않으면 좋은 시작은 그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범사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도 그렇습니다. 처음 만남의 순간도 좋아야 하지만 헤어질 때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마지막 순간을 더 오래 간직합니다. 사랑하는 연인 간에도 헤어질 때는 첫 사랑의 기억보다는 마지막 헤어질 때의 기억이 더 오래 가지요. 또한 안 좋은 기억이 더 오래 갑니다.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잘못되면 잘못된 기억을 좋은 기억보다 더 오래 간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좋은 만남도 만들어야 하지만 헤어질 때도 좋은 기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나이가 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월 보다는 12월이 더 중요하고, 봄보다는 겨울이 더 중요하고, 청춘의 때보다 황혼의 때가 더 중요합니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것은 4구체로 된 신라의 향가(鄕歌)인 ‘헌화가(獻花歌)’입니다. 신라 성덕왕 시대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도중에, 돌로 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높이가 천 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 장관을 감상하다가 절벽위에 한 송이 아름답게 핀 꽃을 보고, 순정공의 부인인 수로부인이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꽃을 꺾어다 바칠 사람이 그 누구인고?" 이에 그의 종자(從者)들은, "사람의 발자취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물러섰는데,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옹(老翁)이 수로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오며 노래를 지어서 부른 것이 이 헌화가입니다. 이 노래의 제1행을 제4행에 연결하여 읽으면 내용 이해가 쉽습니다.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는다면, 붉은 바위 끝에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비록 소를 모는 나이든 노인이지만 젊은이들도 감당치 못할 일을 행하는 노옹의 용기가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힘없는 노인이지만 그의 정신은 젊은이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젊은 기상이 가득합니다. 청년 못지않은 당당한 노년을 살고 있습니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갑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시간은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로 내일로 흘러갑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활용하고 이용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물이 도랑을 타고 흐르듯이 시간도 준비하고 계획하는 대로 흐릅니다. 흐르는 세월도 디자인해야 합니다. 시간도 설계하는 대로 흘러갑니다. 그렇다면 시작만 잘 준비하지 말고 마지막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새해가 되면 저마다 여러 가지 계획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마지막 또한 철저한 준비를 가지고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헤어질 때도 만날 때처럼... 마지막도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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