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채널이나 <동물의 세계>를 보면 수 백 마리의 영양 떼들이 한가로이 초원에서 풀을 뜯다가 한 마리의 맹수의 공격에 그 많은 영양들이 한 걸음에 도망가는 모습을 봅니다. 비행기에서 찍은 장면을 보면 마치 철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것과 흡사하게 한 마리의 저항도 없이 도망갑니다. 이런 장면을 볼 때 마다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비록 힘은 약하지만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으므로 함께 힘만 모르면 한두 마리 맹수쯤은 충분히 몰아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따른 현상일 수 있지만 힘만 모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음에도 도망가기에 바쁜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철환씨의 「연탄길」에서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 온 가족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몇 달 병원생활을 해온 할머니가 담당의사로부터 올 겨울을 지내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 와서 부모님이 매일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아무도 할머니에게 담당의사의 말을 전해 주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날로 쇄약해지는 자신의 병세로 떠날 날이 가까워 옴을 알고 있습니다. 가끔씩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지만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왔던 그해 겨울을 보내고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말한 것보다 4개월을 더 사셨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야 가족들은 그동안 할머니 앞에서 입었던 겨울옷을 장롱에 넣으면서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거, 할머니가 정말 몰랐을까?” “모르셨을 거야. 몇 달 동안 마루에도 한 번 못 나오시고 누워만 계셨던 분이 뭘 아셨겠어?” 그해 겨울을 못 넘길 것이라는 할머니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드리고 싶어 온 가족은 6월 초여름에도 한 겨울옷을 입고 할머니 방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어떤 날은 장갑을 끼고 목도리까지 하고 방에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할머니 손을 잡기 전에 차가운 얼음을 만지고 아직도 겨울이라 손이 시리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드렸습니다.’
겨울을 넘기기 힘들다는 할머니를 위해 초여름에도 한겨울인 양 온 가족이 겨울옷을 입었다는 말에 가슴이 찡해옵니다. 마치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와 흡사하게, 겨울이 지나기 전에 죽는다는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온 가족이 힘을 모아 할머니에게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결국 가족의 사랑이 할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켰습니다. 죽음 앞에 약해지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가족의 사랑 울타리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이 그 할머니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랑은 받으며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도 복되지만 이런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족이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가족 앞에서 죽음의 사자도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렸나 봅니다.
한 마리의 맹수 앞에 도망가는 수백 마리의 영양 떼의 모습과 초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고 죽음과 맞서는 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합니까? 사랑의 힘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 있어도 함께 사랑의 끈으로 묶여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가오는 위협 앞에 그저 운명이요 팔자라고 치부하며 도망하기에 급급한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어떤 어둔 그림자도 몰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부르기보다 사랑의 행위가 풍성해 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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