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9. 금요예배
본문: 계 1:1-7
제목: 위로 받은 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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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삶은 힘들고 고달픈 생활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으면서도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광야처럼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 봅시다.
1.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광야는 하나님의 복과는 상관이 없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고 하는데 어떤 복일까요? 믿는 자에게 광야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무리 힘든 과정도 추억이고 감사가 됩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경유지로 만듭니다.
2.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성경에서 '안다'라는 의미는 지적인 인식의 차원만이 아니라 의지의 차원도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환경적인 힘듦속에 있어도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하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3. '이 사십년 동안을 너희와 함께 하셨으므로'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땅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지 광야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천국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천국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4.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넉넉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는 부족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만나나 물이나 환경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넘치는데 있지 않고, 있는 것 중에서 부족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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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면 선한 지도자나 악한 지도자나 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악한 자를 지도자로 삼아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요? 성경에는 선한 왕보다는 악한 왕이 많은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국가나 교회나 가정에서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들에 대한 용인술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1. 본문에 대한 설명.
사사는 왕이 없는 상황에서 백성들을 재판하고 다스리는 지도자입니다. 이런 사사를 하나님이 세울때에는 어느정도 검증이 된 사람을 세울텐데 이들이 행한 업적을 보면 백성들의 지도자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실무나 오류로 여길 수 있으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숨겨진 용인술이 담겨져 있습니다.
2. 약한자를 세우시는 하나님.
세상에는 가장 뛰어나고 능력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지도자로 세우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지도자가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한 자나 부족한 자를 세웁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어떤 능력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은 약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세웁니다.
3. 능력은 주시고, 실력은 요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택한 모든 사람에게 합당한 권위와 능력을 부어줍니다. 여기에 합당한 수고와 노력으로 만든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람의 몫입니다. 잘못된 지도자가 비난 받아야 할 점은 하나님이 주신 지위에 합당하나 수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비난은 하나님을 향할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 그들 자신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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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 6:1-8
제목 : 21세기 나실인으로 사는 법
나실인(히: '나지르')이란 '나자르(=구별하다, 성별하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님께 서원이 있거나 특별한 헌시을 위해 자기의 삶을 구별하여 드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되었는데 또다시 헌신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불필요하게 여길 수 있으나 하나님이 특별하게 나실인의 규례를 말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1세기의 성도들에게 나실인의 의미와 삶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누구나 자원할 수 있습니다(2절).
나실인의 자격이 '남자나 여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나실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실인은 결코 특별한 사람이나 믿음 좋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비록 나실인의 규례를 지키지 못한다하더라도(참고, 9-12절)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믿음과 생활을 거룩하게 구별하려는 헌신의 마음입니다.
2. 자신이 정한 기간 동안 이루어집니다(4, 5, 6, 8절).
대표적인 나실인인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 같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실인으로 헌신한다는 것이 큰 부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을 나실인으로 서원한 사람들이고,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정한 기간 동안 나실인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형편과 상황에 따라 스스로 정한 기간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헌신의 시간입니다.
3. 정해진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3, 5, 6절)
나실인으로 헌신하는 것에는 분명한 규례가 있습니다. 포도류를 먹지 않는 다는 것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까지 절제하며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것이고, 머리를 깍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고백이며, 시체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은 죄의 결과인 죽음을 멀리하는 것으로 죄로부터 멀어진다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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