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0. 금요예배
본문: 마 11:16-19
제목: 시대를 향한 애통함

'금요철야 말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을 향한 애통함 (0) | 2021.12.17 |
---|---|
진리에 대한 애통함 (0) | 2021.12.03 |
경외함의 비밀 (0) | 2021.11.26 |
2021. 12. 10. 금요예배
본문: 마 11:16-19
제목: 시대를 향한 애통함
말씀을 향한 애통함 (0) | 2021.12.17 |
---|---|
진리에 대한 애통함 (0) | 2021.12.03 |
경외함의 비밀 (0) | 2021.11.26 |
태국 룽산선교 교회 소식 (0) | 2022.02.05 |
---|---|
태국 룽산 선교 교회 소식 (0) | 2021.10.23 |
케냐에 전달된 특별한 선물 (0) | 2021.09.01 |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백성들과 장로들은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같이 되기를 축복합니다(12절).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과의 사이이에서 태어난 베레스(참고, 창38장)가 어떻게 축복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요? 믿음의 가문을 세운 다말에 견주어지는 룻의 이야기는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룻기가 말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1. 말씀대로의 사랑.
공통으로 이방인인 다말과 룻은 자기의 대를 잇기 위해 '고엘'을 추구한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자신의 원함이나 상황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 뜻에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이고 육감적인 사랑은 찾아다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기 위해 어떤 비난이나 조롱도 감수할 각오를 하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2. 쟁취하는 사랑.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은 '어쩌다'의 사랑이 아니라 '기필코'의 사랑입니다. 범죄한 인간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회개를 촉구하여 구원코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듯,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보여드릴 사랑 또한 '반드시'의 사랑입니다. 다말과 룻이 보여주는 열정과 치밀함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귀한 믿음의 모범입니다.
3. 이 모습 그대로의 사랑.
세상의 사랑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의 모습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이나 약함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비로소 완전하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적진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0) | 2021.12.12 |
---|---|
룻기가 품은 믿음, 소망, 사랑 (0) | 2021.11.28 |
믿지 말고 사랑하세요 (0) | 2021.11.21 |
2021. 12. 03. 금요예배
본문: 겔 9:3-6
제목: 진리에 대한 애통함
시대를 향한 애통함 (0) | 2021.12.10 |
---|---|
경외함의 비밀 (0) | 2021.11.26 |
위로 받은 자의 모습 (0) | 2021.11.19 |
2021.11.28. 주일오전예배
본문 : 룻기 4:9-12
제목 : 룻기가 품은 믿음, 소망, 사랑
룻기는 흔하지 않게 이방 여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성경책입니다. 정통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이 룻기를 성경으로 인정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룻기는 단순히 유대 남자와 모압 여자가 결혼하여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룻기를 통해 말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기 바랍니다.
1. 룻기의 시대적 배경.
룻기는 사사시대의 베들레헴을 배경으로 하는데, 사사 시대의 특징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삿21:25)로 압축되고, 베들레헴은 사사기 17장 이후에 소개되는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타락의 도시입니다(참고, 삿17:7, 19:1). 그러나 이토록 타락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 속에서 무명의 한 가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시대의 희망은 여기 있다.
사사기를 통해 사가시다는 지도자나 백성들이 모두 타락한 시대임을 고발합니다. 영적 암흑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 무명의 한 가정을 통해 시작됩니다. 가난한 과부요 이방인이지만 타락한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시대적 희망은 유능한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3. 믿음은 운명을 바꾼다.
보아스와 룻의 결혼은 일반적인 결혼이 아니라 끊어진 가문을 이어주는 '기업 무를 자'('고엘')로서 결혼입니다(참고, 신25:5-6). 이 결혼으로 운명이 바뀐 사람은 누구일까요? 원래는 보아스가 나오미의 가문을 계승해 주어야 하지만, 성경은 보아스의 가문을 계승한다고 말합니다(12절). 믿음의 헌신은 결국 자신을 유익되게 만들어줍니다. 믿음의 헌신에는 결코 공짜가 없고 헛것이 없습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룻이 전하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 (0) | 2021.12.05 |
---|---|
믿지 말고 사랑하세요 (0) | 2021.11.21 |
광야의 감사 (0) | 2021.11.14 |
2021. 11. 26. 금요예배
본문: 시 34:6-15
제목: 경외함의 비밀
진리에 대한 애통함 (0) | 2021.12.03 |
---|---|
위로 받은 자의 모습 (0) | 2021.11.19 |
회복된 위로의 능력 (0) | 2021.11.12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로마서의 전반부(1-11장)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후반부(12장-15장)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세상에서 보고 듣고 배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행해져아 하는데 그것은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효율과 효과를 가장 큰 가치관으로 여기는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때로는 비효율적이고 손해를 보더라도 성경이 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마음은 행동의 '뿌리'입니다.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임기웅변식의 행동이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마음의 중심으로 보시는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3.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은 '불레'와 '델레마'를 사용하는데 '불레'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순종해야 할 때, '델레마'는 선택의 여지가 있어 잘 분별해야 할 대 사용합니다. 본문에서는 '델리마'로 사람 중심에서 분별하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에서 선하고, 기뻐하고, 온전케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룻기가 품은 믿음, 소망, 사랑 (0) | 2021.11.28 |
---|---|
광야의 감사 (0) | 2021.11.14 |
왜 이런 사람을 세우실까? (0) | 2021.11.07 |
2021. 11. 19. 금요예배
본문: 계 1:1-7
제목: 위로 받은 자의 모습
경외함의 비밀 (0) | 2021.11.26 |
---|---|
회복된 위로의 능력 (0) | 2021.11.12 |
넘어진 자에게 임한 위로 (0) | 2021.11.05 |
광야의 삶은 힘들고 고달픈 생활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으면서도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광야처럼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 봅시다.
1.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광야는 하나님의 복과는 상관이 없는 곳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고 하는데 어떤 복일까요? 믿는 자에게 광야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아무리 힘든 과정도 추억이고 감사가 됩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경유지로 만듭니다.
2.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성경에서 '안다'라는 의미는 지적인 인식의 차원만이 아니라 의지의 차원도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환경적인 힘듦속에 있어도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하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3. '이 사십년 동안을 너희와 함께 하셨으므로'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땅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든지 광야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천국으로 변합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천국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4.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이 넉넉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는 부족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만나나 물이나 환경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넘치는데 있지 않고, 있는 것 중에서 부족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믿지 말고 사랑하세요 (0) | 2021.11.21 |
---|---|
왜 이런 사람을 세우실까? (0) | 2021.11.07 |
21세기 나실인으로 사는 법 (0) | 2021.10.31 |
2021. 11. 12. 금요예배
본문: 고후 1:3-7
제목: 회복된 위로의 능력
위로 받은 자의 모습 (0) | 2021.11.19 |
---|---|
넘어진 자에게 임한 위로 (0) | 2021.11.05 |
위로가 필요한 시대의 위로 (0) | 2021.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