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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1'에 해당되는 글 2

  1. 2009.12.01 나는 누구인가?
  2. 2009.12.01 '아줌마가 '누님'이 될 때

나는 누구인가?

2009. 12. 1. 20:35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철새 떼를 보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동물들의 습성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언젠가 ‘본’ 시리즈로 유명한 <본 얼티메이텀>이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제임스 본이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암살요원으로 훈련을 받은 주인공이 임무수행 도중 사고로 인해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국적도, 이름도, 자신의 직업도 기억나지 않게 되지만 암살자의 본능만은 살아있는 자신을 보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습니다. 이 와중에 자신들의 정체와 작전비밀 노출을 염려해 주인공을 제거하려는 정보기관과 기억을 되살리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주인공 사이에 쫓고 쫓기는 액션이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으로 이어지는 ‘본’ 시리즈 3편 전체에 흐르는 주제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무언가 잊고 살아가는 듯 한 현대인의 공허감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건강한 자아관은 건강한 자기 인식에서 나옵니다.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은 어머니 몸 안에 있는 태아라고 합니다. 좁은 곳에 쪼그리고 있어도 편안한 이유는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된 건강한 존재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에 대한 확신이 태아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심코 던져진 돌멩이처럼 의미 없이 이 땅에 태어난 인생은 아무도 없듯이, 우리들은 각기 고귀한 생명을 지닌 소중한 존재들이며,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는 육체적으로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무한한 상상력과 영원을 사모하는 가슴을 지닌 존재입니다. 흘러가는 세월에 겉 사람은 나날이 늙어가지만 날마다 새롭게 거듭 태어나는 천진한 속사람을 가졌고, 힘든 과거를 걸어왔더라도 여전히 웃을 수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에게 건강한 어제가 있었다면 또한 건강한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례자요 여행자 같은 이 땅의 삶이 끝나는 순간, 또 다른 영원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조금 궁핍하게 살더라도, 남들처럼 건강치 못한 삶을 살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중엔 그것이 다 아름다운 추억이 될테니까요. 그래서 천상병 시인은 <귀천>에서 인생을 소풍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깊어가는 겨울의 문턱에서,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때  소풍 온 아이들이 보물찾기를 하듯이 잃어버린 나의 모습을 찾으러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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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누님'이 될 때

2009. 12. 1. 20:33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요산요수(樂山樂水)’란 말은 원래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의 준말로 지혜있는 자는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예로부터 산과 계곡을 찾아 그 깊은 의미의 깨달음으로 심신을 단련했습니다. 또한 불교계의 큰 어른이 던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가 유명한 것도 산은 산다워야 하고 물은 물다워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의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는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걷고 먹고 마시며 생활하는 일상 속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중후함’과 ‘포용성’이라면, 물이 주는 교훈은 ‘유연성’과 ‘낮아짐’에 있습니다.

 

민사법정의 한 재판장이 법정에서 당사자 간 조정을 위해 소송 당사자를 '누님'이라고 부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창원지법 민사부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소식지에 '사람은 대접받은 대로 행동한다.'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수개월 전 1948년생 '아줌마' 2명이 서로 주고받은 돈이 얼마인지 다투는 소송을 조정했던 경험을 소개했습니다. 재판장은 사건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게 팬 격한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원고와 피고를 "여사님"으로 부르며 최상의 예우를 하다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누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누님들, 피차 이제 인생의 하산길인데 돈을 받으면 얼마나 받고 주면 얼마나 주겠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싸우십니까, 옛날에는 좋은 사이였다면서요, 조금씩 양보해 소송을 끝내고 편히들 사시지요."라며 양측에 조정을 정중히 권했습니다. 재판장이 '누님'이라고 불렀더니 두 당사자의 굳은 마음이 조금씩 풀리더니만, 결국 적절한 금액에서 조정이 성립됐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재판장의 포용력과 낮아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으로서 권위나 힘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언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승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산과 같은 포용력과 물과 같은 겸손함으로 분쟁에 휩싸인 사람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줄 수 있었습니다. 산은 찾아오는 산 새 한 마리도 외면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입니다. 바람타고 날아오는 꽃씨 하나라도 타박하지 않고 그 자리를 내어 줍니다. 마찬가지로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낮은 곳이라면 아무리 큰 바위나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옆으로 돌아서 흐르는 것이 물이 가진 진리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려면 산과 같은 포용력과 물과 같은 낮아짐과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 많고 문제 많은 어떤 ‘아줌마’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누님’의 문제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와 나의 가족의 문제라고 여기고, ‘재판장’이 아닌 ‘동생’으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누님’으로 높일 때 그 곳에 ‘감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감동이 결국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찬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약점들 중의 하나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품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판은 잘하지만 칭찬에는 인색하고, 남을 누르고 올라가기는 잘하지만 남이 올라갈 수 있도록 스스로 굽혀 디딤돌이 되어주기에는 인색한 것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백 년을 살아도 짧은 것이 인생인데, 함께 더불어 살며 낮아지고 섬기고 나누는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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