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9. 금요기도회
본문: 삼상 21:1-6
제목: 하나님의 영성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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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4. 주일오전예배
본문: 이사야 53:10-12
제목: 아픈 상처의 치유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한국의 한강 작가가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그의 소설 3권을 구해 읽으면서 우리 민족이 역사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 왔는지를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삶의 상처들을 치유하기보다는 그 상처를 안고, 품고, 가슴에 새기고, 흐르는 세월에 맡기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떤 상처도 부끄러운 것도 숨길 것도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생명과 희망을 줄 수 있음을 말합니다.
1. 상처 인정하기.
상처를 치유하기 전에 상처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상처를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피해자'임을 드러내서 하나님의 '갚으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갚으심'으로 많은 사람이 은혜를 누리듯이, 상처는 외면하거나 부정할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기회를 제공합니다.
2. 의미찾기.
로마의 사형도구였던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이 된 것처럼 상처에 깃든 '의미'를 발견하면 상처도 '상징'이 됩니다. 상징은 자신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상처들을 치유할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이 '의미'는 우리의 '육'과 '혼'이 상처로 인해 아파할 때, 우리 '영'이 하나님 영과 만나 하나님이 주시는 통찰력과 깨달음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3. 품어주기.
품는다는 것은 자신의 아픔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처 입은 자들에게 관심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환대(Hospitality)'라고 합니다. 선한 사라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보듯이 상처 입은 사람이 또 다른 상처 입은 사람을 품고 섬길 때 진정한 회복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죽어야 할 우리를 살리셨음을 기억합시다.-
2024. 11. 22. 금요기도회
본문: 대상 10:13-14
제목: 부름받은 자도 버림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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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7. 주일오전예배
본문: 마태복음 22:11-14
제목: 씁쓸한 결혼식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시는 예수님은 성전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신랄한 책망과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에 대한 비유로서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왕의 아들 결혼식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명망시키고, 길에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청하여 식장을 가득 메우게 한 왕을 통해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비유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예복 입지 않은 자.
결혼식에 초대받았지만, 이런전런 핑계로 참석지 않은 사람들 대신, 길로 나가 만나는 대로 사람들을 초청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합당한 예복을 입고 왔지만 단 한사람은 예외였습니다. 이에 노한 왕은 그를 저주합니다. 천국은 아무나 갈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복은 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순복의 표시입니다.
2. 청함받은 자.
결혼식장을 둘러보면서 "청함받은(헬: '클레토스'=Calling)자는 많다"라고 하는 왕의 마음은 초대한 사람은 많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참석지 않고, 또 일부는 왕의 종들을 죽이면서까지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모습에 착찹함을 토로합니다. 많은 사람을 청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하나님 마음이자 사랑의 표현입니다.
3. 택함받은 자.
택함받은(헬: '에클레토스'=Choosing)자란 초청에 기꺼이 합당한 예복을 입고 참석하는 사람입니다. 왕은 예복을 입고 참석한 무리 중에서 진정으로 결혼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사람을 찾지만, 그 수가 적다고 탄식합니다. 천국은 초대받기만 하면 가는 곳이 아니라, 초대에 합당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동반해야 합니다(참고, 벧후1:10-11, 계17:14).
2024. 11. 15. 금요기도회
본문: 삼상 13:8-12
제목: 추락하는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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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0. 주일오전예배
본문: 시편 121:1-8
제목: 순례자의 감사
이스라엘 남자들은 일년에 세번,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오순절), 수장절(초막절)에는 반드시 성전에 가서 제사해야 했습니다(참고, 출23:14-17). 전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갖은 어려움과 시렴을 예상하면서도 예루살렘까지 길고도 먼 순례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정을 향한 순례길을 걸으면서 부른 노래가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에 감사하며 그 길을 걸었을까요?
1. 환경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감사(1-2절).
1절과 2절에 나오는 "도움"(히: '에쩨르')은 '도움의 내용'보다는 '도움을 주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신약에서 성령을 '보혜사'(히: '에쩨르')로 표현하듯이, 어려움을 해결할 특정한 도움을 의미하기보다는 하나님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와 고백입니다. 그래서 "나의 도움은 어디에서 올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가 바로 나의 도움입니다"라고 노래합니다.
2. 가진 물질이 아닌 가진 믿음에 대한 감사(3-7절).
하나님 자체가 '도움'임을 고백한 후, 하나님이 항상 지켜주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하고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어떻게 감사했을까요? 환경적 평안이나 부요를 감사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순례할 믿음을 지켜주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3. 조건적 감사가 아닌 영원한 감사(8절),
"너의 출입"이란 순례의 시작과 끝을 말합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순례길이지만 가는 길과 오는 길뿐만 아니라, 영원한 본향인 천국까지 가는 길도 하나님이 함께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감사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상황에 따른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과 신뢰를 기초하는 감사가 절실한 시기입니다.
2024. 11. 08. 금요기도회
본문: 삼상 10:1-7
제목: 만남의 축복 1,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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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3. 주일오전예배
본문: 마태복음 22:8-14
제목: 살벌한 결혼식
지난주에 나눈 누가복음 14:15-24의 잔치 비유와 마찬가지로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는 말을 전도의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요? 만약 전도의 관점이라면 왜 잔치에 참여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쫒겨나야 합니까? 본문의 비유는 전도에 관한 내용도 아니고, 누가복음 14장의 잔치 비유와도 전혀 다른 의미와 주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의 아들 혼인 잔치에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려 하실까요?
1. 어떤 상황에서 행하신 비유인가?
21장부터 24장까지는 십자가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에서 예수님을 고소하려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등,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신랄한 논쟁과 책망을 하는 상황인데, 이런 첨예한 영적 전쟁의 상황에서 행한 비유가 단순히 '전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였을까요? 오히려 종교 지도자들의 신앙에 대한 강한 책망이 아닐까요?
2. 어떤 성격의 혼인 잔치인가?
고대 세계 질서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정복하고 그 충성 조건으로 정략결혼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현상을 비유하는데, 전쟁에 승리한 왕이 이런 결혼을 요구하면 정복당한 나라 입장에서는 무조건 혼인예식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왕의 종들을 모욕하고 죽였다면 왕은 반역으로 간주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살라 버렸습니다.
3. 쫒겨난 사람의 문제는 무엇인가?
얼떨결에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오히려 환영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예복을 입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해해 주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왕이 분노한 이유는 새로운 지배자의 권위에 대한 반발과 무례함으로 여겼습니다. 초대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을 진멸하는 것도 목격했음에도 왕에 대한 두려움과 예의 없음에 분노한 것입니다.
2024. 11. 01. 금요기도회
본문: 삼상 8:1-7
제목: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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