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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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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9.29 믿음의 사람 2
  2. 2024.09.27 분배의 실패
  3. 2024.09.22 나쁜 놈, 착한 놈, 믿는 놈 1
  4. 2024.09.20 분배의 성취
  5. 2024.09.15 평안과 희망이 있습니까?
  6. 2024.09.13 분배의 원칙
  7. 2024.09.08 본질이 사라지는 시대
  8. 2024.09.06 분배의 영성
  9. 2024.09.01 오해와 진실

믿음의 사람

2024. 9. 29. 12:2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9. 29. 주일오전예배
본문: 에스라 7:6-10
제목: 믿음의 사람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에 귀하게 쓰임 받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귀환시켜 성전을 재건토록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재건되었다고 모든 일이 형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 재건 후 약 60년 뒤, 에스라는 소수의 귀환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은 왜 에스라를 등장시켰을까요? 예스라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1.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
'율법(히: 토라)'은 모세 오경을 의미합니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의 목적은 율법적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율법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온 마음을 다하여 연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믿고 연구하는 사람이 곧 믿음의 사람입니다.

2.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
'준행'이라는 말은 그대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학문적으로나 지식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항상 '하나님의 손길'(7:28, 8:18, 22, 31)에 사로잡힌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율법적 행위의 삶과 율법을 주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의 언약>(참고, 삼하7:12-16)을 믿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60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자 점점 세속과 타협하게 됩니다(참고, 9장, 10장). 이에 에스라는 성전이나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희망임을(10:2-4) 가르치며 믿음의 삶의 회복과 개혁을 추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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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실패

2024. 9. 27. 2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9. 20. 금요기도회

본문: 삿 1:19-21

제목: 분배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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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 착한 놈, 믿는 놈

2024. 9. 22. 1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9. 22. 주일오전예배
본문: 이사야 45:1-7
제목: 나쁜 놈, 착한 놈, 믿는 놈

 

 

나쁜 짓 안 한고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 것 아닌가? 굳이 교회 다니면서 신앙 생활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른 생활'의 가치를 아는 유교 문화에 익숙한 우리의 사고에서 예수님만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에 해답을 주는 인물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포로로 잡혀 온 유다 백성들을 귀환시켜 성전에 재건하도록 한 페르시아 제국의 왕 고레스입니다.

1. 니쁜 놈.
성경에서 "나쁜 사람"이란 하나님을 모르거나 부정하며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이지만(참고, 4, 5절), 성경에는 고레스에 대한 언급이 이방 사람으로는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역대하,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더 등). 비록 본인은 인식 못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세밀하게 개입합니다.

2. 착한 놈.
고레스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서는 몰랐지만, 그의 삶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목자'(사 44:28), '기름부음 받은'(1절) 사람이라고 칭합니다. 단순히 윤리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믿는 놈.
모든 사람이 고레스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나 방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알려주는 전도가 중요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종의 삶을 산다면 너무 좋지만, 복음을 통해 분명히 알고 산다면 얼마나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인생이 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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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성취

2024. 9. 20. 22:18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9. 20. 금요기도회

본문: 삿 1:1-3

제목: 분배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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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과 희망이 있습니까?

2024. 9. 15.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9. 15. 주일오전예배
본문: 예레미야 29:11-14
제목: 평안과 희망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십니다. 그 내용이 29장 4절부터 23절에 담겨있습니다. 그 주된 내용은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며 그 땅에 정착하고 살면 70년 후에 귀환시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미래와 희망>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포로로 타국에 끌려간 사람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미래와 희망은 무엇일까요?

1.  70년 뒤의 귀환이 평안과 희망일까?
포로들에게 귀환은 가장 간절한 희망일 수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에스라서와 에스더서를 보면 귀환하지 않고 제국 곳곳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에서의 삶이 폐허로 변해버린 예루살렘의 삶보다 더 안정과 평안을 주었던 것 입니다. 70년 뒤에나 있게 될 예루살렘 귀환이 그들에게 평안과 희망은 아닙니다.

2. 무너진 성전을 제건하는 것일까?
바벨론 제국의 안정과 번영을 포기하고 귀환한 사람들이 각가지 어려움을 무릎쓰고 성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들의 삶은 안정되기보다는 전쟁과 핍박, 결국은 성전이 우상과 돼지의 피로 더럽혀지는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세계 강대국의 지배하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삶이 평안과 희망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3. 하나님 자신이 평안과 희망입니다.
성전, 제사, 율법, 등은 하나님에 대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이러한 종교적 행위를 통해 결국은 하나님을 찾고 섬기고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12~14절에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평안과 희망이라면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삶 속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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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원칙

2024. 9. 13.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9. 13. 금요기도회

본문: 수 15:1-4

제목: 분배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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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사라지는 시대

2024. 9. 8.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9. 8. 주일오전예배
본문: 출애굽기 20:22-26
제목: 본질이 사라지는 시대

 

 

출애굽기 20장부터 애굽을 떠나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하나님의 율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로 언급하는 것이 십계명인데(참고, 출20:3-17)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에서 언급되는 것이 제단에 대한 규례입니다. 제단은 희생제물을 올려놓고 제사드리는 도구인데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그리고 이 규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1. 제단의 규례.
애굽에 살면서 피라미드나 각종 대형 건축물을 짓는 것에 익숙한 건축 전문가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위한 제단 만들기는 아주 쉬운 일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범하게 흙이나 다듬지 않은 돌로 높지 않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에 모세(신 27:5-7), 여호수아(수 8:30-31)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연 그대로의 돌로 제단을 쌓고 제사했습니다.

2. 제단의 변질.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규모의 성전을 세우고자 애쓰면서 적당히 타협하기 시작합니다(왕상6-7, 22). 그리고 '다듬지 않음' 모습이 아니라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세웁니다(왕상6:22). 이런 성전은 사람들에게는 감탄과 경이감을 자아내지만(왕상10:5) 정작 하나님에게는 이 건물보다는 합당한 삶이 더 중요했습니다(왕상9:6-9).

3. 제단의 회복.
성전이 무너진 이후(BC 586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세운 성전은 바로 십자가입니다(요 2:19-21). 나무 십자가의 제단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듬지 않은 돌'로 만든 성전이 됩니다(고전3:16).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가 아니라 바로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우리 자신입니다(시 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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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의 영성

2024. 9. 6. 22:1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9. 06. 금요기도회

본문: 수 14:1-5

제목: 분배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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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

2024. 9. 1. 12:1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9. 1. 주일오전예배
본문: 창세기 28:16-19
제목: 오해와 진실

 

 

에서와 야곱의 삶을 보면 마치 하나님이 미리 정한 운명을 따라 사는 인생처럼 여겨집니다(참고, 창25:23).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정한 운명에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과 결정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삶의 모든 결과에 대한 최종 평가입니다. 즉, 야곱과 달리 에서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삶이기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결정은 전 생애의 결론적 선언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삶의 방식은 그 성격처럼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추구하고자 하는 신앙적 가치는 같아야 함에도, 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반면, 야곱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삽니다. 이런 각자의 생애의 여정을 다 보시는 하나님의 신적 선언이지, 운명적 결정 때문에 일상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2. 매 순간의 선택이 삶의 결과를 만듭니다.
에서는 많은 장점을 가졌음에도 매 순간 자신의 유익을 위한 선택을 하지만, 야곱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합니다. 광야에서 노숙하면서 꾼 꿈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하며 헌신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이런 일상 속의 믿음의 성향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선언이 곧 야곱의 삶과 신앙을 정의합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줍니다.
에서와 야곱의 운명적 차이는 그 성격이나 환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해와 반응의 차이로 만들어졌습니다. 에서에게도 하나님의 '사닥다리'를 보여주었지만, 하나님을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은혜의 기회를 주시는데 문제는 그것에 어떻게 반은할 것인가 하는 우리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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