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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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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맞짱뜨시다!

2019. 9. 1.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19.09. 01.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7:48-50

 

 

바벨론에서의 다니엘과 니느웨에서의 요나를 통해 올바른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셨을까요? 단순히 천국 복음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당시 기득권자들이 가진 신앙관과 가치관과 부딪치면서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신앙입니다.

1. 종교적, 사회적 관습과 싸우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여성의 사회적 평가는 아주 낮았습니다. 남자들과 함께 식사도 할 수없었고, 사람의 수에도 들지 못하고, 법정에서 증인의 자격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죄인'인 여자는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종교적, 사회적 통념을 깨뜨리고 '죄인 여인'의 헌신을 기꺼이 받고 죄사함을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과 기준들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것이라면 기꺼이 벗어버려야 합니다.

2. 세상을 성전으로 만드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진 죄사함은 성전에서 제사장에 의해 임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행하는 죄사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으로 자신들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종교적 관습과 상관없이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성전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 속에서도 예수님으로 인한 '믿음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3. 종교적 의무를 사랑을 바꾸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조항을 이용하여 '죄인'을 만들어 정죄놀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여 의무와 순종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에 의한 '자발적 순종'을 보시고 죄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율법 자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행하는 것이지만 변질된 율법주의는 이런 사랑보다는 행위를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신앙은 '죄사함의 방법' 보다는 '죄사함의 열매'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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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8. 30. 금요철야예배

본문 : 예레미야 15:19-21

제목 : 하나님의 위로는 하나님

본질에 충실하려면

2019. 8. 28. 20:36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8. 28. 수요예배

본문 : 에베소서 3:14-19

제목 : 본질에 충실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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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안에 있게 하소서

2019. 8. 25. 15:24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8. 25. 주일 오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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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가 똑같은 요나

2019. 8. 25. 15:23 | Posted by 소망지기

 

2019.08. 25.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요나 4:1-4

 

 

요나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불순종으로 시작해서 불평을 끝을 맺는 좀 특별한 선지자입니다. 불순종하다가 주일 학교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구원을 받고 이방 도시인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하게 되었다면 전과 후에 어떤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할 터인데 전혀 으겋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기 전과 후가 똑같은 요나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1. 고정관념ㄴ에 물든 요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니느위는 자신의 고국을 괴롭히는 이방나라이기 때문에 불순조하고 도망갑니다, 나중에 어쩔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자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주 싫어합니다(4:1). 이런 못습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가르핌보다는 자기 생각과 신념에 사로잡혀 온전한 믿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실용성에 물든 요나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교훈하십니다. 요나가 니느웨보다 박넝쿨을 더 '아낀'(히:'후쓰 = 동정하다, 불쌍히 여기다) 이유는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용성에 물들어 버리면 '이용'하는 것은 잘하지만 '헌힌'ㅎ에는 소극적으로 됩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만 순종과 헌신을 행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성품과는 전혀 다른 겁입니다.

3.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런 요나는 바발론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다니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치적, 사회적, 관습적으로 싫어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다니엘이 매국노가 아닌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기 떄문이듯, 자신이나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히기ㅏ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순종하는 성돋ㄹ이 되어야 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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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3. 22:05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8. 23. 금요철야예배

본문 : 예레미야 14:19-22

제목 : 이 시대를 향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