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1. 금요예배
본문: 다니엘 12:8-10
제목: 마지막 때의 신앙생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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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시편 136:1-3
제목 : 구약성경에 '감사'란 단어가 없는 이유
추수감사절이 '추수'에 대한 감사라면 추수한 것이 없는 사람은 감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추수'한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한정하기보다는 근원적인 '감사'를 드리는 예배가 되길 바랍니다. 추수감사절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 의해 유래된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히브리어에는 '감사'란 단어가 없다.
히브리어에는 '감사'란 단어가 없습니다. 손('야드')에서 파생되어 '던지다' '쏘다'란 의미를 가진 '야다'(명사형은 '토다')란 단어를 빌려 '손을 들다' '찬야하다' '고백하다' '감사하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감사'와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감사'의 의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존재에 감사.
시편 136편은 절마다 '감사(야다)'란 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야다'는 '여호와' '하나님' '주'가 주어인 1, 2, 3절과 26절에서만 사용됩니다. 그 이유는 구약의 성도들은 감사할 제목이나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감사할 유일한 이유입니다.
3. 하나님을 알고 깨닫게 됨에 감사.
4절부터 25절까지 감사의 이유는 하나님에 관한 깨달음을 고백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날의 감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좋은 것을 주셨는가'로 결정되지만, 구약성경에서는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참고, 살전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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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다니엘 12:5-7
제목: 마지막 때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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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상 23:15-18
제목 : 광야 에클레시아
다윗을 죽이려는 아버지 사울의 마음을 알고 요나단은 다윗과 눈물의 작별을 고합니다(참고, 20:41-42). 그러나 다윗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지는 것을 보고 광야 깊은 곳까지 찾아가서 위로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교회(에클레시아)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협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1.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위로.
사람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므로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직면한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기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의 회복을 위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에클레시아입니다.
2.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권면.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앙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다윗은 거인 골리앗과도 싸워 이길 정도의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사울의 추격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의 동역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주는 믿음의 동역자가 모인 곳입니다.
3.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망.
왕이 되려는 것은 다윗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왕이 되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현실 상황과 관계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망은 다윗을 다시 일어나게 했습니다. 에클레시아는 낙심과 절망 중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말씀의 소망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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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28 금요예배
본문: 다니엘 12:4
제목: 마지막 때의 말씀
2022.10.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상 14:6-7
제목 : 행동하는 한 사람
모두 숨죽이고 있을 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을 때,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말씀을 듣고 읽어도 감동이 없을 때, 그러나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 갈 때 성도들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할 때 진퇴양난의 상황에다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책망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참고, 13:13-14). 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인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이 보여준 믿음의 모습을 함께 살펴봅시다.
1. 행동하는 한 사람(6-7절).
이스라엘 백성은 다 흩어지고 남은 600명으로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상대해야 할 사울은 자기 안전에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참고, 2절). 이때 요나단은 비록 혼자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적진으로 달려갑니다. 그 결과 20명 정도의 적군을 죽이는데(참고, 14절), 이 여파로 전쟁의 승기를 잡게 됩니다. 걱정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2. 숨겨진 사람들(20-21절).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앞두고 블레셋 영토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강제로 징집되어 전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동족과 상대로 싸워야 할 이들이 요나단의 모습을 보고 도전받아 오히려 블레셋 군인들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다 적군으로 보이지만 믿음의 헌신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숨겨 놓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함께 일하게 하십니다.
3. 숨은 사람들(22-23절).
이런 상황을 도망가 숨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다가 다시 돌아와 함께 싸움으로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현 상황만 보면 혼자지만, 순종하여 헌신하면 숨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도전을 주어 삶과 신앙의 회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국, 요나단 한 사람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화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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