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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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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위험합니다.

2024. 6. 28. 22:22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6. 28. 금요예배

본문: 유 1:20-23

제목: 성도들이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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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의 3요소

2024. 6. 21.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6. 21. 금요예배

본문: 딤전 4:6-11

제목: 영적 성장의 3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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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육신

2024. 6. 16. 12:24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6. 16. 주일오전예배
본문: 누가복음 7:34-35
제목: 그리스도인의 성육신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신학 용어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심을 뜻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신학적 의미만이 아니라 인간들과 함께 어울리며 먹고 마시며 친구가 되어주는 실제적 삶까지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수님의 성육신적 삶이 투영되고 반영되어야 할 것인데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함께 상고해 봅시다.

1. '와서'
성육신적 삶의 첫 단계는 나와 '다름'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판단하거나 정죄하기보다는 '다름을 초월'하여 함께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예수님이 만나는 사람들은 백부장, 과부의 죽은 아들, 바리새인과 죄지은 여자입니다. 이들은 당시 율법으로는 금기시되는 부류의 사람들이지만 예수님은 거리끼지 않고 그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2. '먹고 마시매'
당시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어울리는 사람으로 비친 것은 실제로 예수님이 그렇게 행동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들과 어울렸을까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성육신적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신자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먹고 마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구우너하기 위합입니다.

3.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성육신적 삶에서 가장 위험 요소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의나 자긍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육신적 삶의 의미는 행위의 주체인 자신이 아니라 행위의 대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즉,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행위에 대한 자기 의로 만족하기보다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영적인 변화에서 성육신적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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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버리고 소망을 소유하자

2024. 6. 14.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6. 14. 금요예배

본문: 롬 12:12

제목: 소원을 버리고 소망을 소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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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2024. 6. 9. 12:16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6. 9.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복음 21:5
제목: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초대교회에서 물고기('익투스')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머리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여서 신앙인의 표시로 여겨져서 복음서의 저자들은 이러한 '익투스'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날 때 물고기의 이미지를 아주 특별하게 하용하고 있습니다. 고기잡이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아침 조반을 준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인지 함께 상고해 봅시다.

1. 익투스와 옵사리온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서 물고기는 '익투스'로 표기하는(참고, 6, 8, 11절) 반면, 소금에 절이거나 요리된 상태의 물고기는 '옵사리온'으로 표시합니다(참고, 9, 10, 13절). 사도 요한은 이런 차이를 철저하게 구분하면서 제자들이 잡은 153마리의 '익투스'와 예수님이 친히 준비해 주신 떡과 '옵사리온'의 차이를 상기시키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이 찾으시는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음식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기가 있느냐?(5절)' 물으신 것은 밤새도록 고기잡이한 결과로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잡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프로스파기온'으로서 '먹을 음식'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말입니다. 이에 제자들의 대답은 '없습니다'입니다. 이어 예수님은 153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3. 익투스는 옵사리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잡은 생선('옵사리온')을 좀 가져오라'(10절)고 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옵사리온이 없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잡은 '익투스'가 아니라 예수님이 준비한 떡과 '옵사리온'으로 조반을 먹어야 했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를 처음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듯이(참고, 눅5:11), 진정한 양식은 예수님께 있기에 예수를 따라야 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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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를 대비하자

2024. 6. 7. 2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4. 06. 07. 금요예배

본문: 벧전 1:5-7

제목: 말세를 대비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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