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9. 30 금요예배
본문: 느 8:8
제목: 말씀의 깊이를 더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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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9:26-30
제목 : 침묵의 십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된 바울은 즉시로 복음을 전하지만 죽음의 위기를 겪습니다(참고, 23절).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지만 또다시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바울을 형제들이 고향인 다소로 보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왜 다소로 보냈을까요? 십년동안 아무런 기록이 없는 다소 생활을 마친 바울은 놀라운 하나님 구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참고, 행 13장).
1. 복음에 대한 깊은 묵상의 시간.
비록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에 합당한 지식 없이 자신이 가진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년의 침묵곳에서 깊은 말씀의 묵상과 이해를 얻은 후에 행한 전도에서는 많은 구원의 열매와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참고, 행13:16-41). 우리에게도 봉사나 사역보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과 교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는 깨어짐의 시간.
바울은 독립심과 독자적인 추진력을 갖춘 아주 주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변화되자마자 혼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십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겸손하게 되고 협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옆에있는 사람을 세울 줄 아는자가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바울을 높이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깨달음의 시간.
변화된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의 신임을 받는 것이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몇십년의 시간을 보낸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무명의 도시인 안디옥에가서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의미를 깨달은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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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23. 금요예배
본문: 히 11:39-40
제목: 성도의 거룩한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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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8.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하 23:1-7
제목 : 나의 마지막 고백
누구에게나 마지막 순간은 찾아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이 사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할 일도 아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온 다윗이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고백하는 모습에서 우리도 어떤 마지막을 맞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함께 귀 기울여 봅시다.
1. 내가 고백하는 나(1절).
다윗은 자신을 '높이 세워진 자', '기름 부음 받은 자', '노래 잘하는 자'로 고백합니다. 자기 삶을 자수성가한 성공인으로 고백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삶임을 고백합니다. 가장 낮은 목동에서 시작해서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성취감이나 자부심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예배하며 살아온 삶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 하나님이 고백하는 나(3-4절).
하나님이 다윗을 향해 '공의로 다스리는 자',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이게도 인간적인 약점과 허물이 많았음에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행한 어떤 업적이나 치적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마음과 믿으믕로 살아왔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결과보다 살아내는 과정입니다.
3. 삶이 고백하는 나(2절, 5절).
다윗은 자기 삶의 마지막을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확신으로 마무리합니다.(참고, 6-7절). 그 이유는 자기 삶을 '영원한 언약' 아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성령도 '말씀이 혀에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듯,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삶이 인생의 마지막을 큰 확신과 당당함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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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1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6:13
제목 : 믿음 성장의 3가지 요소
어떻게 생활하면 믿음이 잘 자랄까요? 교회 예배에 빠지지 않고,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많이 하면 믿음이 자랄까요? 이런 것들은 좋은 믿음의 결과이지 수단은 아닙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본받아 흉내 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배워서 우리의 신앙에 그대로 적용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통해 믿음이 자라는데 필요한 요소를 살펴봅시다.
1. '부르사' = 지금, 여기서 시작합니다.
예쑤님은 특별한 사람 중에서 사도를 세운 것이 아니라, 평소 따르던 많은 제자 중에서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여기서(Here), 지금(Now), 이것으로(This) 시작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특별한 환경이나 상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현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이 믿음 성장에 좋은 시간입니다.
2. '택하여' = 세밀하나 부분까지 믿음의 선택을 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를 택하실 때 세상적인 스펙으로 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하셨습니다. 믿음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좋은 신앙이란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믿음의 선택을 하지만,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경우는 믿음의 선택이 세밀하지 못하고 자의적이거나 원칙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믿음은 바른 '선택'을 먹고 자랍니다.
3. '칭하셨으니' =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합니다.
비록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선발된 12명의 제자의 면면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도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믿음의 선택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자기 주변의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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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롬 8:1-2
제목: 새 언약 아래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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