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5. 금요예배
본문: 시편 42:1-5
제목: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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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0. 주일 오전 예배
본문 : 로마서 10:1-4
제목 : 욥이 로마서를 설교하다
족장시대에 살던 욥은 바울보다 200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욥기와 로마서는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욥에게 엘리후가 그랬듯이, 바울은 나름 믿음 좋다고하는 로마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는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깨달은 욥의 관점에서 읽는 로마서는 어떤 감동이 있을까요?
1. 잘못된 지식.
로마교회는 예수를 믿는 이방인과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따라 예수님을 믿다보니 정작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신앙이 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잘못된 지식을 따라 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음을 상기시키면서 바른 신앙을 위한 바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잘못된 열심.
욥의 경우처럼, 로마 교인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한 열심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눈에는 이들의 신앙은 하나님의 의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종교적인 열심으로 자기 만족감이나 성취감으로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마치 욥에게 엘리후가 권면하듯, 바울은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 애쓰는 잘못된 열심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잘못된 의.
이들이 보여주는 종교적 열심과 열정은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만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욥처럼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예수님을 통해 아무런 조건없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신비로운 '복음'을 자기 만족과 교인들에게 전하니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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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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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03.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욥기 42:12-17
제목 : 우리가 몰랐던 하나님(5)
하나님의 '의'으로 변화된 욥의 신앙과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욥기 1장과 2장을 통해 고난받기 전의 욥의 신앙에 대하여는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욥의 신앙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면이 오히려 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때 '종교인'으로 살던 욥이 '의인'으로 변화된 모습을 소개하는 본문을 통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1. 의인은 삶을 통해 믿음을 드러냅니다.
고난을 통해 신앙의 문제점을 깨닫고 회개한 욥은 더 많은 기도와 예배, 그리고 헌신적인 신앙을 통해 신앙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종교인에게는 종교적 행위가 중요하겠지만, 하나님의 의인에게는 삶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의인은 삶으로 믿음을 드러냅니다.
2. 의인은 인내로 믿음을 지켜나갑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갑절의 축복'은 욥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누리게 된 은혜의 결과들입니다. 즉, 한순간에 모든 것이 회복된 것이 아니라, 긴 시간동안 조금씩 회복된 것입니다. 이런 길고 지난한 여정 속에서 욥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깊은 은혜의 관계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것을 "욥의 인내"(약5:11)라고 했습니다.
3. 의인은 성숙한 성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창세기의 족장시대가 생활의 배경인 욥에게 아들이 아닌 딸에 관해 상세히 기록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줍니다. 고난 받기 전의 욥의 관심은 아들들이었지만, 믿음을 깨닫고 난 뒤에는 딸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익숙한 관습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성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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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01. 금요예배
본문: 요일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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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욥기 35:1-8
제목 : 우리가 몰랐던 하나님(4)
욥의 세친구들은 욥이 당면한 고난의 문제를 해석하고 설명하려고 애썼던것에 비해, 엘리후는 욥의 영적이고 신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 삶의 문제를 대하는 관점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이 자칫하면 현실문제에 휘말려서 영적인 부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른 신앙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오늘의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 봅시다.
1. 욥의 신앙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요?
33장에서 하나님의 대속물을 통한 '의'를 설명한 후, 욥의 의는 하나님의 의와는 다른 도덕적이고 관습적인 의임을 설명합니다. 인간이 행하는 어떤 선행이나 악행들도 하나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했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교만입니다. 우리가 받은 믿음은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긍휼과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2. 종교인이 아니니 의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1장과 2장에 묘사된 욥의 신앙의 행위가 자신의 '의'가 된다면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정당성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의 의를 누린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하나님과 감사와 찬양으로 더 깊은 친밀한 관계를 맺어갈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의로 사는 모습은?
삼상12:19-25을 보면 왕을 구한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회개하는데, 왕을 폐하고 다시 사사시대로 돌아가기 보다는 더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꼐 기도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현실과 상관없이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아니면 종교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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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삼상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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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19.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욥기 33:23-28
제목 : 우리가 몰랐던 하나님(3)
우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이 고난 속엥서 형통함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모든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엘리후는 욥이 가진 잘못된 믿음(의)과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의)을 비교하면서 욥으로 하여금 무엇이 잘못됐는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의 신앙도 함께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1. '의'란 무엇인가?
'의(히:쩨테크)'란 '바르다'. '옳다', '공평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크게 두가지로 사용되는데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 관습적 가치를 따르는 행위를 지칭하거나, 신앙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을 일컫습니다. 따라서 '의'의 주체가 사람이고 근거가 공동체의 가치관에 기원하면 '도덕적 의', 하나님에게 기원하면 '구원사적 의'라고 합니다.
2. 욥이 가진 의.
엘리후가 진단하는 욥의 문제는 '신앙문제'입니다.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욥 32:1)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욥이 주장하는 '의'는 하나님의 '의'와 다름을 설명해 나갑니다. 욥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예배드린 행위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도덕적, 관습적 의'에 불과하다며 일축합니다.
3.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비유를 들면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당사자의 행위가 아니라 순전히 '대속물'을 통하나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에 있습니다(24절). 하나님의 의에는 인간의 어떤 수고나 노력도 관계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친밀'해진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기뻐할 때 공의(의:'째테크')가 회복되게 됩니다(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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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롬 13:11-14
제목: 마지막 소망은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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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1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욥기 33:13-18
제목 : 우리가 몰랐던 하나님(2)
예기치 못한 삶의 환난이 닥쳐오면 혼란과 두려움이 휩싸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속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사건 자체에 있기보다는 당사자인 우리 안에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평온할 때 정성껏 예배드리는 삶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한결핟은 모습을 갖추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믿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욥에게 있는 문제는?
엘리후가 지적하는 욥의 문제는 자신은 깨끗하고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준것에 불평하고 있습니다(33:8-11절, 34:5-6). 그 결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고 합니다(34:9, 35:3). 욥은 철저하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자신의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에게 엘리후가 전하는 참된 신앙은 어떤 것일까요?
2.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말씀합니다(13-14절).
욥은 자기자신에게만 집중하다보니 하나님의 의도에는 무심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의 크기나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형편을 '알리는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는 서툰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3. 하나님은 고난도 도구로 사용합니다(15-18절).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왜(why)'라고 하면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인간이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what)'라고 한다면 항상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일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 영광받기 위해 자신을 시험했음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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