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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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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와 아버지

2021. 5. 9. 12:42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09. 주일오전예배

본문 : 갈라디아서 4:4-7

제목 : 여호와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란 말은 들어봤어도 '여호와 아버지'란 표현은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여호와'란 단어가 약 6,000회 정도 나오지만, 신약성경에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다만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부릅니다. '하나님 여호와'에서 '하나님 아버지'로의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본질적인 변화를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이 변화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아봅시다.

1.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4-5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구약시대는 율법과 계명을 무조건적으로 지키고 순종해야 하는 종처럼 신앙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종 노릇하는데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 아들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친밀하고 친근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믿음의 보상에서 유업으로 바뀌었습니다(7절).
종은 자신이 일한 수고에 대한 대가나 보상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유업'이란 아버지의 소유를 아들이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보상에는 무관심합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일이 곧 자기 일이고, 어버지의 소유가 결국 자신의 소유가 됨을 알기에 아무것 없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3.  자기 의보다는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를 좋아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업적이나 수고를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비록 실수나 허물이 있어도 '아버지' 앞에 스스럼 없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어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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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6)

2021. 5. 2. 12:39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29-36

제목 :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6)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은 더욱 원색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들임에도 정작 성경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일하고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하나님이 주인공인 책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나 의인이 주인공인 것처럼 섬기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각자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1. 성경에 무지했습니다(29-30절).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선지자들의 무덤을 아름답기 꾸미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면서 그들의 행위를 기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건이나 인물을 통하여 그들의 업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선지자나 의인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자기 자신에 무지했습니다(31-33절).
성경은 자신을 보는 거울과 같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며 점검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을 행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과 다를 바 없음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3. 시대에 무지했습니다(34-36절).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신앙 지도자들로서 일반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마6장의 산상수훈을 보면 이미 일반 대중들도 그들의 외적인 신앙에 전염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신앙이 자기 것만이, 아니라 시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자기관리를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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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8. 10:48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4. 18.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23-24

제목 :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4)

오늘의 본문은 십일조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기 위해 대표성을 가진 십일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인 십일조와 율법적으로 부정한 하루살이와 낙타를 대비하면서 '반드시 해야 할 것'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하면서 신앙의 잘못을 고발합니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말씀이 우리의 신앙에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1.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은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신앙적인 규례들은 그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에 담긴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행위만 남고 의미는 무시한다면 또 다른 율법주의를 만들게 됩니다. 십일조라는 행위는 정의, 긍휼, 믿음을 담는 그릇이기에 둘 다 중요하고 의미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적 행위를 하면서 늘 기억해야 할 것은 그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2. 행위의 기준이 자신이 되는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행위만 있고 내용은 무시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24절에서 하루살이와 낙타의 비유를 듭니다. 하루살이나 낙타는 성경에서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는데도 낙타를 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고 좋고 비싸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계명도 자신들의 판단기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을 고발합니다.

3. 종교적 열심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소한 것에도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한다는 것을 자신의 믿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일조의 담긴 의미를 행하는 것을 '더 중한 바'라고 하셨는데 '더 가치 있다'는 의미보다는 '더 의미 깊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의 예식적인 열심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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