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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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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경제학

2019. 10. 6. 15:1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0. 06.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2:43-47

 

 

초기 기독교인들은 일반 가정에서 '에클레시아'로 모였습니다. AD 300년까지는 독립된 건물을 세우지 않았다는 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하면 상당한 기간동안 가정교회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어떻게 오랜 기간 동안을 '가정'에서 모든 신앙행위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경제(Economic)'라는 단어는 '오이코스(집)'와 '노모스(법, 규칙)'의 합성어로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에클레시아의 경제는 무엇일까요?

1. 공유경제(44절).
공유경제란 소수의 사람에 의해 주도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자발적인 참여로 공동의 유익을 추구하는 경제관입니다. 소유경제는 자본주의를, 분배경제는 사회주의를, 공유경제는 성경적 공동체를 만드는 기틀입니다. 창조의 원리도(창1:28) 소유나 이윤의 극대화라기 보다는 모든 자원을 함께 공유하는 원리입니다.

2. 자족경제(45절).
'자족'이란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선의 수고에 대한 결과를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참고, 빌4:11-13). 따라서 초기 에클레시아는 박해의 어려운 상황에서 각자 최선의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고 그 결과에 만족하는 공동체입니다(참고, 행5:41). 받은 은혜에 대한 믿음의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공동체였습니다.

3. 본보기경제(46절).
가정에서 에클레시아로 모이다 보니 가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모범을 보임으로 가정의 가치를 지켜나가듯, 에클레시아에서 지도자를 세울 때 그 자격을 가정에서의 삶을 중요한 자격요건으로 삼았습니다(참고, 행6:3, 딤전3장). 이는 에클레시아에서도 가르침뿐만아니라, 삶의 영향력도 그만큼 크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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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19강 : 세상이 쓰레기장

2019. 10. 4. 22:15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0. 04. 금요철야예배

본문 : 예레미야 19:1-6

제목 : 세상이 쓰레기장

하나님의 침묵

2019. 10. 2. 20:31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0. 02. 수요예배

본문 : 시편 13:1-6

제목 : 하나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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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말하다

2019. 9. 29. 14:57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9. 29. 주일 오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8: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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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능력

2019. 9. 29. 14:56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9. 29.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1:1-7

 

 

초기 기독교인들의 모임인 '에클레시아'는 그 규모나 인적구성이나 사회적 평가에서 다른 종교와 비교하면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부흥과 세계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초기 에클레시아와 오늘날의 교회와 신앙생활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절대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1. 복음
에클레시아에서 결정된 사항은 좋든 싫든 모든 공동체가 따라야 할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정에 따라 행동했을 때 그 결과가 좋은 것이면 '복된 소식(복음=유앙켈리온)'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독교 공동체인 에클레시아에서도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진정한 복음이며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임을 전하였습니다. 이 복음은 공동체에서나 개인적으로나 모든 사람과 장소에서 담대히 선포되었습니다.

2. 성령
4절의 '성결의 영'이란 성령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어떤 사람의 신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보증입니다. 따라서 초기 에클레시아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한다는 것은 성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일부 잘못된 성령사역자들에 의해 외곡된 성령의 역사를 바르게 회복해야 합니다.

3. 사람
초기 에클레시아는 로마시대의 신분계급이나 사회계층을 떠나 믿는 모든 사람을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에는 이방인들은 물론이고, 여자들(롬16장), 종과상전(딤전6:2), 범되자(몬1:16) 등이 차별없이 동일한 형제자매로 인정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에클레시아는 '믿는 사람'이 대상이자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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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18강 : 저주의 기도

2019. 9. 27. 22:12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9. 27. 금요철야예배

본문 : 예레미야 18:18-23

제목 : 저주의 기도

언어의 능력

2019. 9. 25. 20:3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9. 25. 수요예배

본문 : 야고보서 3 : 1-6

제목 : 언어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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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통곡

2019. 9. 22. 14:58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9. 22. 주일 오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8: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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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클레시아다

2019. 9. 22. 14:57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09. 2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9:10-19

 

'에클레시아'란 로마시대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정치적, 사회적 모임을 일컫는 말입니다(참고, 행19:39, 41). 이런 세속적인 용어를 초기 기독교인의 신앙공동체의 이름인 동시에 이 신앙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참고, 고전 1:2). 오늘 본문의 아나니아를 통해 개인적인에클레시아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교인'들의 모습과 비교해 봅시다.

1. 아나니아의 코뮤니타스
'코뮤니타스'란 '소통', '교제', '공동체'의 의미를 가집니다. 아나니아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근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가려는 원수와 같은 사울을 향해 '형제 사울아'하며 예수님의 뜻을 이룹니다. 아나니아는 예수님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과도 깊은 영적 친밀함으로 교제하고 있습니다.

2. 아나니아의 이뮤니타스
'이뮤니타스'란 세상의 유혹이나 방해에 대한 면역과 내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는 내용은 아나니아가 순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울에 대한 예수님의 계획(11-12절, 15-16절)을 듣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모든 미혹과 방해를 극복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3. 아나니아의 미니스트라리
예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만났듯이 직접 사울의 눈을 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나니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계획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편견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헌신의 삶이 곧 '섬김'입니다. 그래서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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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룩한 안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