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8. 28. 수요예배
본문 : 에베소서 3:14-19
제목 : 본질에 충실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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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8. 25. 주일 오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7:26
2019.08. 25.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요나 4:1-4
요나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불순종으로 시작해서 불평을 끝을 맺는 좀 특별한 선지자입니다. 불순종하다가 주일 학교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구원을 받고 이방 도시인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하게 되었다면 전과 후에 어떤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할 터인데 전혀 으겋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기 전과 후가 똑같은 요나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1. 고정관념ㄴ에 물든 요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니느위는 자신의 고국을 괴롭히는 이방나라이기 때문에 불순조하고 도망갑니다, 나중에 어쩔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자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주 싫어합니다(4:1). 이런 못습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가르핌보다는 자기 생각과 신념에 사로잡혀 온전한 믿음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실용성에 물든 요나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교훈하십니다. 요나가 니느웨보다 박넝쿨을 더 '아낀'(히:'후쓰 = 동정하다, 불쌍히 여기다) 이유는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용성에 물들어 버리면 '이용'하는 것은 잘하지만 '헌힌'ㅎ에는 소극적으로 됩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만 순종과 헌신을 행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성품과는 전혀 다른 겁입니다.
3.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런 요나는 바발론에서 고위관리를 지낸 다니엘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치적, 사회적, 관습적으로 싫어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다니엘이 매국노가 아닌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기 떄문이듯, 자신이나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히기ㅏ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순종하는 성돋ㄹ이 되어야 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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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8. 11. 주일 오후예배
요한복음 17:20-24
2019. 08. 11.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24:1-3
감람산에서 성전을 내려다보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성전이 무너지는 '때'와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24장과 25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복음서의 계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며 무슨 뜻일까요? '때'와 '징조'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전하려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마태복음 24장과 25장 전체를 통해 생각해 봅시다.
1.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대화의 내용(24:3절, 24:4-31절)
제자들은 '때(크로노스)'와 '징조(세메이온)'에 대해 질문합니다(3절).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때'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라고 하고(24:36, 42, 25:13), '징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날짜(크로노스)'보다는 '징조'를 통해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2. 예수님의 비유의 내용(24:32-25:46)
이러한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6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6가지 비유의 상황은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비유 속의 주인, 신랑, 임금 등이 예고없이 방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로노스'의 시간에 찾아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에 와서 결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시간은?
3. 예수님의 대답의 의미.
결론적으로 '종말의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건 매 순간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카이로스'의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카이로스'적인 삶의 대표적인 것이 예배와 기도입니다. 교회의 공적인 예배와 기도를 통해 우리의 삶 속의 '카이로스'가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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