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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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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믿음이 자라지 않을까?

2022. 5. 1. 12:31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5.01. 주일 오전 예배
본문 : 사사기 2:1-5
제목 : 왜, 믿음이 자라지 않을까?

 

 

사사기가 보여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안타깝고 답답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음에도 신앙적으로는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 속에 있음에도 왜 이들의 믿음은 자라지 않는 걸까요?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곧 오늘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영적 정체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함께 찾아봅시다.

1. 하나님과 언약을 잊었습니다(1절).
여호와의 서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왔다는 사실은 길갈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상기시킵니다. 수 4장과 5장을 보면, 가나안 땅의 첫 도착지였던 길갈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과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확인하고 상기시킨다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잊었습니다(2-3절).
가나안 족속을 모두 쫒아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문화에 미혹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쫒아내지 않았습니다(참고, 1:19, 21, 28-36). 그 결과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서서히 떠나게 되었습니다(참고, 3:1-6). 자신이 가장 좋아서 의존했던 것이 결국은 가시와 올무가 되고 맙니다.

3. 단순한 감정에 속았습니다(4-5절).
'보김'이라는 의미는 '통곡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지명이 여기에만 등장하고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눈물' 사건이 일회성이었음을 알려줍니다. 비록 눈물로 제사 드렸더라도 합당한 헌신과 변화가 없다면 단순히 감정표출에 불과합니다. 눈물 속에 자신의 삶이 녹아들고 단호한 결단과 헌신이 뒤따를 때 값진 보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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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사랑

2022. 4. 24.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4.24. 주일오전예배
본문 : 아가 2:1-4
제목 : 들꽃 사랑

 

 

아가의 제목은 '노래들 중의 노래'라는 말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의미입니다. 이 노래는 당시 가장 부강한 나라의 왕인 솔로몬과 시골에서 포도원지기로 사는 술람미 여인 사이에서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과 우리와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어떤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며, 또한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1. 우리는 들꽃입니다(1절).
술람미 여인이 고백하는 '사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백합화'는 특별히 아름다운 꽃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전역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지칭합니다. 너무나 흔하디흔한 꽃으로 자신을 묘사하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것이 없는 존재임을 부각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내세울 것이 없어 세상 한구석에 있어도 예수님은 다 아시고 찾아오셔서 사랑해 주십니다.

2. 있는 곳에서 꽃 피웁니다(2-3절).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라는 표현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씨가 바람에 날려 이름 모를 곳에 떨어졌지만,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싹이 터 꽃을 피우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자라서 꽃을 피우는 들꽃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착한 곳에서 꽃피우고 열매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4절).
술람미 여인은 잔칫집('포도주의 집')의 풍성함과 기쁨보다는 사랑으로 인하여 기쁨과 행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환경이나 물질적인 풍요에서 오지 않고 사랑으로 만들어짐을 알기 때문입니다. 들꽃이 이슬을 먹으며 자라듯이, 성도는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감정이 아닌 서로의 헌신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서 날마다 부활

2022. 4. 17.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4.17.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23-27
제목 : 여기서 날마다 부활

 

 

죽은 나사로의 부활에 대하여 마르다는 미래적인 사건으로 이해합니다(24절).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이 지금 당장 누릴 수 있는 현재형임을 말씀합니다(25-26절).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과 고통을 주는 죽음도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현장 속에서 극복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부활이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봅시다.

1. 부활의 현재성.
마르다의 말처럼 부활은 미래적 사건이 아닙니다. 비록 육신은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은 즉시로 부활합니다. 이러한 부활의 현재성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언제 어디서나 즉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뿐만 아니라 성경에 소개되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들입니다.

2. 부활의 대표성.
죽음은 인가이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이자 고통이고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죽음도 극복하고 이길 수있다면 다른 어떤 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죽음에서도 부활할 수 있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부활의 내면성.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부활을 믿으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에 마르다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고백을 합니다. 부활이나 문제해결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자칫하면 드러나는 현상에 따라 믿음이 흔들릴 수 있는데, 현상보다는 항상 본질이신 예수님께 집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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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출애굽기 3:15
제목 :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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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현실 사이(5)

2022. 4. 3. 12:33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4.03. 주일오전예배
본문 : 하박국 2:1-4
제목 : 말씀과 현실 사이(5)

 

 

죽기 전에 봐야 드러나는 야곱의 믿음은 많은 아쉬움을 줍니다. 그러나 야곱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박국(히: '하바끄' = 껴안다, 씨름하다)은 의로운 요시야 왕의 안타까운 죽음과 이후에 일어난 왕들의 타락을 목격하면,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징계하겠다는 하나님께 항의하며 성루에서 씨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항의가 찬송과 기쁨으로 변합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1. 하나님과 씨름해야 합니다(1절).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듯, 하박국도 성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자기의 생각대로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대면하려는 각오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문제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려는 간절함이 있을 때 하나님은 역사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4절).
하나님의 대답은 어쩌면 하박국이 간절히 찾던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은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쓰은 믿음의 사람이라면 펼쳐지는 상황과는 상관없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살면 구원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그의 불평이 찬송과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3. 하나님으로 기뻐해야 합니다(3:18).
3:16은 바벨론을 통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하박국의 솔직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17절은 낭만적인 무소유의 심정이 아니라, 바벨론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하박국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겠다고 노래합니다. 세상 문제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으로 기쁨을 삼겠다는 고백으로 마칩니다.

말씀과 현실 사이(4)

2022. 3. 27.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3.27. 주일오전예배
본문 : 히브리서 11:21
제목 : 말씀과 현실 사이(4)

 

 

야곱은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성경에서 분명한 계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만 히브리서 기자는 야곱의 믿음을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모습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투쟁적으로 살았던 야곱은 어떤 계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노후에 보여주시는 믿음의 모습을 보면서 말씀과 현실을 하나로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1.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국 제사장들의 딸과 결혼한 요셉을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야곱은 이방인의 피가 섞인 손자를 아들로 입양합니다. 그리고 동생인 에브라임을 형인 므낫세 보다 앞세워 축복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관습, 전통, 사람의 생각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2.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습니다.
자기 문제에만 집중하던 야곱은 얍복강에서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는 하나님의 사인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했다는 표현은 야곱의 노쇠함이 아니라 허벅지 다리가 약해진 의미를 일평생 기억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자신을 내려놓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3. "경배하였으며" =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어머니 태중에서 싸우던 자신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말씀처럼 동생인 에브라임을 축복한 야곱은 그 기도의 응답이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때를 신괴하며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은 인간의 시간과 방법과 다름을 알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결국 400년 후에 이 기도의 응답이 시작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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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현실 사이(3)

2022. 3. 20. 12:33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3.2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창세기 28:13-15
제목 : 말씀과 현실 사이(3)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원함으로 변질시키는 야곱은 어쩌면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는 관심없고 오직 자기 삶의 상황만이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우리가 행하는 신앙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에 대하여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판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는 것은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말은 언뜻 보면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편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에서나 야곱에게 가장 유익된 말씀입니다. 에서도 동생인 야곱을 섬길 때 가장 의미있는 인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당장의 유/불리를 따질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말씀의 성취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야곱의 반응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삶 속에 계속해서 나타나 간섭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경험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3. 말씀으로 살지 못하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여전히 자신의 목적을 위한 삶을 산 결과 그가 그토록 원했던 장자의 명분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오히려 계속된 고난과 어려움으로 결국은 애굽으로 이주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장자의 명분이 야곱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을 인도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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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현실 사이(2)

2022. 3. 13.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3.13 주일오전예배
본문 : 창세기 25:31-34
제목 : 말씀과 현실 사이(2)

 

 

야곱이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비난의 여지가 많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야곱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에 공감할 것입니다. 왜. 야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음에도 여전히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은혜롭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을까요? 혹여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야곱의 열심이라고 미화시키지는 않나요? 야곱의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1.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 있어야 장자의 복을 주는 하나님으로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논리나 관습에 따라 일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안전과 보호의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면한 현실 문제보다는 기니 안목으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문제해결에만 급급해하고 있습니다.

3.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장자권, 결혼, 재산 축적,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면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 말씀도 자동으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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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현실 사이(1)

2022. 3. 6. 11:45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3.06. 주일 오전 예배
본문 : 창세기 25:21-23
제목 : 말씀과 현실 사이(1)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의 기초이자 삶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현실 속에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다 느끼고 있습니다. 말씀과 현실 사이에 깊고 넓은 간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적당히 타협할 것인지, 말씀에서 멀리 도망갈 것인지, 아니면 현실은 뒤로하고 말씀에 전적으로 헌신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야곱을 통해 말씀과 현실 사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1. 출생할 때 임한 말씀(창 25:23절).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출생하기 전에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소개되는 야곱의 행동은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참고, 창25:31, 창27장). 이로 인해 부부간 형제간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루어야 할까요?

2. 벧엘에서 임한 말씀(창 28:12-15).
형을 피해 도망가던 야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축복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그런데 삼촌 라반의 집에서 생활하는 야곱의 모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우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속임수도 허용되는 것일까요?

3. 에서를 만나기 전에 임한 말씀(창 31:3, 32:1-2절).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과 안전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경험했음에도 야곱은 여전히 형을 두려워합니다. 만반의 준비에도 불안하여 얍복강 나루에서 혼자 남아 씨름할 정도였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받았지만 정작 사람이 해야 할 모든 최고의 방법을 다 동원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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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열리지 않을 때

2022. 2. 27. 12:22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2.27.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계시록 5:1-8
제목 : 말씀이 열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세상의 학문적인 방법으로는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영적인 말씀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우리의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성경을 덮어버리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세계를 접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을 수 없도록 밀봉된 두루마리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은 사도 요한처럼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말씀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4절).
갓난아기처럼 말씀을 사모라고 하는 것은(벧전2:2)은 말씀이 필요할 때는 울 정도로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운다는 것은 사모함이요 아타까움이요 간절한 도움을 구하는 애절한 호소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말씀의 홍수 속에 살다보니 이러한 간절함과 사모함이 없어지고 오히려 말씀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2. 예수님이 열쇠입니다(5-7절).
닫힌 말씀을 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기에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예수님을 '유대 지파의 사자'와 '죽임당한 어린양'으로 묘사하는 것은 말씀이 내포하는 하나님의 권위 위엄 심판과 함께, 순종 헌신 고난의 양면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으로 만족하면 위험한 이유입니다.

3. 기도해야 합니다(8절).
사도 요한이 봉인된 말씀 앞에서 울고 있을 때 한 장로가 와서 예수님이 열 것을 알려줍니다(5절). 그는 금 대적에 담긴 '성도의 기도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두루마리를 열 때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보좌에 올라가고있었습니다(계8:4). 기도는 하나남과의 친밀성의 거리를 나타내기에 말씀을 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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