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소망지기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바른 믿음의 분별기준

2021. 6. 20. 12:37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6. 20. 주일오전예배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2:9-12

 

제목 : 바른 믿음의 분별기준

성경은 불신자에 대한 심판도 언급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잘못된 거짓 신앙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바른 신앙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분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바른 믿음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 본문을 통해 알아봅시다.

1. 능력이나 표적과 기적으로 분멸이 안됩니다(9절).
거짓 신앙도 사탄의 역사로 하나님이 행하는 능력이나 기적과 표적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세상의 많은 종교 속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으로 바른 신앙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현상을 통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일하십니다.

2. 사람들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분별이 안됩니다(11절).
11절은 언뜻 보면 마치 하나님이 거짓 신앙의 원인인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는데, 그 뜻은 이미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기 좋아하기에(12절) 하나님이 사탄의 미혹에 내버려 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사람들을 미혹되게 내버려두겠다는 것은 비록 다수의 생각이나 호응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상관없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3. 진리의 사랑을 받는지로 분별해야 합니다(10절).
9절의 '악한 자'는 8절의 '불법한 자'(헬: '아노모스' = 법이 없는 자, 무법자)를 칭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바리새인들처럼 말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분별기준은 바로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고 전부인 모습이 나타나는가로 판단해야 합니다. 믿음은 '진리의 사랑'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지개 앞에 서신 하나님  (0) 2021.06.27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  (0) 2021.06.13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0) 2021.06.06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

2021. 6. 13. 12:39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6. 13. 주일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4:1

제목 :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 

여러가지 교회 내적인 문제로 다툼과 분열이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른 신앙에 대하여 가장 간단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자칫하면 비본질적인 문제에 집착하게 되어 정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신앙의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봅시다.

1. 사랑을 추구하며,
사랑을 추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감동적인 은혜를 덧입는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전12:4-7에서 언급하는 것은 사랑의 실체가 아니라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사랑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면 자연히 그 사랑이 우리의 삶 속에 여러가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에 깊이 거하려는 노력이 먼저입니다.

2. 신령한 것을 사모하며,
세성적이로 육적인 것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신령한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은사난 성령의 역사와 같이 특별하고 신비로운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우리 일상의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의미가 있거나 없거나 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발견하고 깨닫는 삶을 의미합니다.

3.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언'이라는 것은 단순히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이 있을 뿐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상고하며 묵상함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며(12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25절).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른 믿음의 분별기준  (0) 2021.06.20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0) 2021.06.06
아들들아 들으라!  (0) 2021.05.30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2021. 6. 6. 12:32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6. 0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7:20-24

제목 :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로서 1-5절까지는 예수님 자신을 위해, 6-19절까지는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20-26절까지는 장차 믿는 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속에는 믿는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지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하고 바른 믿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본문을 통해 세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믿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건도로 믿게 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미 22절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다고 하시면서 왜 기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23절 끝부분에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하십니다. 즉, 믿음이란 자기의 구원만이 목적이 아니라, 믿는 자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ㄴ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사람들끼리 하난가 됩일까? 하나님과 하나가 됨일까? (21-23절).
11절에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도 '하나됨'을 강조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에서도 '하나됨'을 반복해서 강조하십니다. 그 하나됨의 기준을 하나님과 자신을 언급하는데('우리와 같이'), 이는 예수님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됨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되는 순종의 삶을 의미합니다.,

3. 예수님과 함께 있을 곳은 어디일까? (24절).
'믿는 자' 또는 '내게 주신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곳은 어디일까요? 천국일까요? 만약 천국이라면 당연히 갈 천국을 위해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요? 예수님이 계시는 곳은 '하나님의 사랑 안'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듯 믿는 자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23절) 믿는 자들 안에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26절).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가야 할 믿음의 길  (0) 2021.06.13
아들들아 들으라!  (0) 2021.05.30
아들이 아버지에게  (0) 2021.05.23

아들들아 들으라!

2021. 5. 30. 12:40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30. 주일오전예배

본문 : 예레미먀 7:1-7

제목 : 아들들아 들으라!

가정의 들을 맞아 하나님과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아름다운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유대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지만, 전혀 다른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 안에 살아가지만, 자칫하면 또 다른 실수르 범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보여주는 3가지 거짓된 신앙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1.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4절)
본문은 요시야 왕이 신앙개혁의 하나로 성전을 새롭게 하는 기간(대하34:3)에 성전 입구에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성전에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은 거짓이라고 하는 것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길과 행위'(3,5절)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10절).
성전에서 정기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구원을 받은 신앙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리고 구원의 증거가 성전에서 예물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에 합당한 삶과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참고, 9절, 11절).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예배만 열심히 드리면 어떻게 살든지 상관없다는 생각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3. '나는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하고 있어'(21절).
제물을 가지고 제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 제물을 먹으라고 합니다.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면서 기대했던 것은 율법 자체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치 열심 있고 좋은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0) 2021.06.06
아들이 아버지에게  (0) 2021.05.23
아버지가 아들에게  (0) 2021.05.16

아들이 아버지에게

2021. 5. 23.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전서 14:20

제목 : 아들이 아버지에게

 

지난주에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관해 살펴보았다면, 화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 앞에 아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살펴봅시다. 유대문화 속에서 '아빠 아버지'는 친밀함만이 아니라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위엄 앞에 순종하며 복종해야 할 존재입니다. 성숙한 아들로 성장하는 신앙의 단계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찾아보세요.

1. 유아기 단계(벧전 2:2).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세상의 유행이나 자신의 욕심에 희석되지 않는 있는그대로의 성경 말씀('순전하고')과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된 말씀('신령한')을 단순히 기대하고 바라는 것을 넘어 '갈망'해야 합니다.

2. 소년기 단계(옙 5:1, 살전2:11)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혔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학고 복종하는 연습과 훈련의 단계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수고하는 단계입니다. '다르'은 은혜로 되지만, '아들의 생활'은 훈련으로 됩니다.

3. 청년기 단계(요일 2:14).
삶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내는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단계입니다. 청년 에스겔이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와 수용소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깨달은 것이 '여호와삼마'(겔48:35)입니다. 각자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느이 뜻을 펼쳐야 합니다.

4. 장년기 단계(벧후 1:4, 고전 4:15).
요령이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된 '아버지의 심장'으로 또다른 사람들을 세우고 양육하는 단계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어떤 대가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끝까지 품고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들아 들으라!  (0) 2021.05.30
아버지가 아들에게  (0) 2021.05.16
여호와와 아버지  (0) 2021.05.09

아버지가 아들에게

2021. 5. 16. 12:42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에베소서 1:3-7

제목 :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독생자('휘오스') 예수를 통하여 믿는 성도들을 '아들(양자=휘오데시아)'로 삼으신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자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이 아닌 '양자'로서 아들의 권리를 모두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은 모든 크리스천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주는 영적 교훈을 다시한번 되새겨 봅시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3절).
성도들이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양자들이 머무는 자리는 오직 예수님 아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떠난 어떤 행위나 신념도 의미 없습니다.

2.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3절).
하나님의 '양자'라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이자 은혜입니다. 피조물이자 죄인인 인간을 거룩하신 하나님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이자 복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6절).
하나님과 상관없이 죄인으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바뀜('Being')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무슨 특별한 일을 하거나 많은 수고를 통한 영광스러운 업적('Doing')보다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됨이 곧 찬송입니다.

4. 죄 사함을 통해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7절).
사람의 노력으로는 자기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됨으로써 거룩하고 흠 없는 아들로 인정해 줍니다.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은혜로 덮어주시는 사랑을 덧입습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이 아버지에게  (0) 2021.05.23
여호와와 아버지  (0) 2021.05.09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6)  (0) 2021.05.02

여호와와 아버지

2021. 5. 9. 12:42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09. 주일오전예배

본문 : 갈라디아서 4:4-7

제목 : 여호와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란 말은 들어봤어도 '여호와 아버지'란 표현은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여호와'란 단어가 약 6,000회 정도 나오지만, 신약성경에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다만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부릅니다. '하나님 여호와'에서 '하나님 아버지'로의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본질적인 변화를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이 변화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아봅시다.

1.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습니다(4-5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구약시대는 율법과 계명을 무조건적으로 지키고 순종해야 하는 종처럼 신앙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종 노릇하는데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 아들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친밀하고 친근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믿음의 보상에서 유업으로 바뀌었습니다(7절).
종은 자신이 일한 수고에 대한 대가나 보상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유업'이란 아버지의 소유를 아들이 그대로 이어받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보상에는 무관심합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일이 곧 자기 일이고, 어버지의 소유가 결국 자신의 소유가 됨을 알기에 아무것 없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3.  자기 의보다는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를 좋아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업적이나 수고를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비록 실수나 허물이 있어도 '아버지' 앞에 스스럼 없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어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의 대상입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가 아들에게  (0) 2021.05.16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6)  (0) 2021.05.02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5)  (0) 2021.04.25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6)

2021. 5. 2. 12:39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5. 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29-36

제목 :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6)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은 더욱 원색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들임에도 정작 성경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일하고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하나님이 주인공인 책입니다. 그런데 선지자나 의인이 주인공인 것처럼 섬기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각자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1. 성경에 무지했습니다(29-30절).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선지자들의 무덤을 아름답기 꾸미고 의인들의 비석을 세우면서 그들의 행위를 기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건이나 인물을 통하여 그들의 업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선지자나 의인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고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자기 자신에 무지했습니다(31-33절).
성경은 자신을 보는 거울과 같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며 점검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준입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을 행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과 다를 바 없음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3. 시대에 무지했습니다(34-36절).
그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신앙 지도자들로서 일반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마6장의 산상수훈을 보면 이미 일반 대중들도 그들의 외적인 신앙에 전염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신앙이 자기 것만이, 아니라 시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자기관리를 해야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와 아버지  (0) 2021.05.09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5)  (0) 2021.04.25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4)  (0) 2021.04.18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5)

2021. 4. 25. 12:44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4. 25.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25-28

제목 :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5)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4)

2021. 4. 18. 10:48 | Posted by 소망지기

 

 

2021. 04. 18.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23-24

제목 :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4)

오늘의 본문은 십일조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기 위해 대표성을 가진 십일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인 십일조와 율법적으로 부정한 하루살이와 낙타를 대비하면서 '반드시 해야 할 것'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하면서 신앙의 잘못을 고발합니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말씀이 우리의 신앙에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요?

1.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은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신앙적인 규례들은 그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에 담긴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행위만 남고 의미는 무시한다면 또 다른 율법주의를 만들게 됩니다. 십일조라는 행위는 정의, 긍휼, 믿음을 담는 그릇이기에 둘 다 중요하고 의미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적 행위를 하면서 늘 기억해야 할 것은 그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2. 행위의 기준이 자신이 되는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행위만 있고 내용은 무시하는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24절에서 하루살이와 낙타의 비유를 듭니다. 하루살이나 낙타는 성경에서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는데도 낙타를 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고 좋고 비싸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계명도 자신들의 판단기준에 따라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을 고발합니다.

3. 종교적 열심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신앙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소한 것에도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한다는 것을 자신의 믿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일조의 담긴 의미를 행하는 것을 '더 중한 바'라고 하셨는데 '더 가치 있다'는 의미보다는 '더 의미 깊다'는 뜻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의 예식적인 열심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일예배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5)  (0) 2021.04.25
지옥에 갈 사람은 누구일까? (3)  (0) 2021.04.11
부활 그 이후  (0) 2021.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