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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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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6. 04 주일 오전예배

 

 

사무엘상 10:1-8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택함을 받은 사울에게 몇 가지 징조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으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자질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연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훈련으로 되어집니다.

 

1. 가치관(2절).

잃어버린 암마귀를 찾아 헤매던 사울에게 아버지가 걱정한다는 말을 듣게 합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닫게 합니다.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2. 섬김(3-4절).

예배하러 가던 사람들이 사울에게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나누는 것을 경험하게 합니다. 예배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는 것도 중요함을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이때 하나님께 드릴 것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먹을 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3. 새 사람(5-7절).

선지자의 무리들과 함께 성령으로 충만함을 통해 '새 사람'이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옛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의 사람들과 함께 사모할 때 그 은혜를 같이 누릴 수 있습니다.

 

4. 예배와 말씀(8절).

마지막으로 예배와 말씀을 배우기 위해 '칠 일 동안 기다려야'합니다. '7'이란 숫자는 완전수의 의미이기에 '예배와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시작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중요한 요소이며, 또한 이것은 최종 훈련목표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울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참고, 삼상13장, 15장).

 

 

 

 

 

2017. 05. 28 주일 오전예배

 

 

요한복음 15:13-15

 

 

 

예수님은 자신과 이별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원리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점진적(progressive) 의미를 가진 것으로 각기 독립된 의미가 아니라, 상호간에 원인과 결과를 야기하는 종속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어느 한 순간에 되어지는 것(Being)이 아니라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Doing)입니다. 신앙생활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가지(요 15:5).

예수님은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우리를 '가지'로 말씀합니다. 가지의 생명력은 줄기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줄기에 붙어 있으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주신 첫 언급은 나뭇가지처럼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있는 삶입니다. 교회, 행사, 프로그램, 교인들과 친밀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2. 제자(요 15:8).

줄기에 단단히 붙어있어 자양분을 공급받는 '가지'의 삶을 통해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제자'가 됩니다. 이 단계는 자양분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가지'의 단계에서 발전하여 삶으로 '열매'를 맺는 단계입니다. 따라서 '제자'란 하나님께서 영광이 되는 삶의 열매를 맺도록 훈련받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수동적인 신앙'이 아니라 '생산적인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친구(요 15:14).

'제자'가 상하관계를 의미한다면 '친구'란 수평관계를 의미합니다. 참신앙의 모습은 아브라함(약2:23)과 모세(출33:11)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관계는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 함께 있음으로 힘과 기쁨이 되며, 서로의 깊은 마음까지도 함께 나누는 사이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친구입니까?

 

 

 

 

2017. 05. 21 주일 오전예배

 

 

스가랴 2:1-5

 

 

 

오늘은 교회설립 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9년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과 성도들께 감사드리고 예수애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세워져야 할지 말씀을 통해 도전받기 바랍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성전 재건을 포기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재건축을 독려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서의 내용은 당연히 성전재건에 대한 권면과 축복의 내용이 담겨져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느 것이 주 목적임을 분명히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 봅시다.

 

1.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1-3절)

'측량줄'을 잡은 천사가 예루살렘을 측량하러 갔을 때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나서 예루살렘이 '성곽없는 성읍(히:페라자 = plaza)'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의 손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되고, 보호받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불성곽'이 되어 다스리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 의해,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우는 건물은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 성전은 사람만 위할 뿐입니다.

 

2. 내가 성전이 되리라(4-5절)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이것이 진정한 성전의 모습이자 교회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물질로 세워진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성벽이 되셔서 세상으로부터 구별시켜주시고, 영적 대적으로부터 지켜주시며, 항상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전을 자신의 육체로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요2:19).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의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과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2017. 05. 14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4:42-44

 

 

하나님이 '티끌'로 만들어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은 기적이며 이해불가능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나라의 회복이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 하나님이 친히 감행하신 일입니다. 그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하나님의 나라 복음 전파'라고 하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명인 '하나님나라'를 이루는데 전념하셨습니다. 이것을 '몸소 하나님나라'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러한 삶을 사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1. 하나님나라는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은 '사람에 관한 하나님의 책'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잃어버리고 저주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참 모범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곧 '티끌'인 육체에 성령으로 오셔서 친히 하나님나라를 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는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나'로부터 시작함을 말씀합니다.

 

2. 하나님나라를 사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신앙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이나 성전에 매이지 않고, 모든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소수의 사람들이 듣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결국 그들에 의해 세상이 뒤바뀌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내 안에서 회복되면 개인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생깁니다. 이것은 세상 변혁의 원동력이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증명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하나님나라 복음이 전파된 것은 개인구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바꾸는 능력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몸소 하나님나라'를 사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갑시다.

 

 

 

 

2017. 05. 07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1:6-8

 

 

 

최초의 하나님나라였던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다시 하나님나라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하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라(6-7절).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관심을 '너희'에게 돌리고 있습니다('너희가 알바 아니요'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주변상황을 의식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 상황에서 살아가야 합니다.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으로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삶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2. 성령으로 살아라(8절 상).

예수님은 죽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성령의 임하심을 말씀하셨고(요14:16,26, 16:7). 부활하신 후에도 말씀하셨습니다(눅24:49). 그리고 행1:4-5에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처럼 성령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티끌(히:'아파르')'로 만들어진 사람은 그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티끌속에 하나님의 생기를 가졌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으로 채워질때만 가능합니다.

 

3. 증인으로 살아라(8절 하).

'증인'이란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그것에 대하여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지 않고 '증인'이 되라는 것은 이미 하나님나라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나 성도들은 예수님으로 완성된 하나님나라를 경허하고 그것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주는 목적은 하나님나라의 증이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2017. 04. 30 주일 오전예배

 

 

창세기 2:4-9

 

 

하나님은 하나님나라를 세우기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 곳으로 인간을 인도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최초의 하나님나라였던 에덴동산을 통하여 우리가 세워야할 하나님나라의 구성요소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1. 사람(7절).

하나님나라 첫 번째 구성요소인 사람을 '땅의 흙'으로 빚어 (히:'야짜르') 만들었습니다. 땅 ('아다마'=흙, 땅)에 있는 흙('아파르'=먼지, 티끌)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참고, 2:19 흘='아다마')가장 보잘 것 없는 땅의 '먼지나 티끌'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생기'가 임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됐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은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를 자랑합니다.

 

2. 에덴동산(8절).

하나님나라 두 번째 구성요소로 동방에 있는 에덴(기쁨, 즐거움)에 세상과 구별되도록 동산(히:간=울타리)을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에덴을 하나님나라의 '동산'으로 정하신 것은 그 이름의 의미처럼 모든 삶에서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하신 것입니다.(살전 5:16-18).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상황에서 기뻐하는 삶(에덴)이지 내가 나의 기쁨을 추구하는(아단)삶이 아닙니다.

 

3. 두 나무(9절).

하나님나라의 세 번째 구성요소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선(히:토브=창1:4,10,12,18,21,25,31)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고, '악'이란 이것의 반대 개념입니다. '사람'의 불순종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함으로 다시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계2:7). 그래서 하나님나라는 나의 의지로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곳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11) - '드림과 나눔'

2017. 4. 23. 12:44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4. 23 주일 오전예배

 

 

신명기 14:22-29

 

 

 

세상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주인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돈'이 하나님의 자라를 위협한은 형국이 되어 갑니다. 하나님나라의 물질관을 잘 대변해주는 것이 십일조와 헌금생활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돈' '헌금생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율법이전의 십일조

성경에서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십일조의 모습은 두 번 등장합니다(창 14장의 아브라함, 28장의 야곱). 이런 모습은 고대사회에서 전반적으로 행해지는 습관이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은 왕이나 신에게 보호와 승리의 감사로 드려지는 관례였습니다(참고, 창47:26).

 

2. 율법시대의 십일조

하나님의 율법속에 담긴 십일조의 의미는 고대사회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땅의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에게 주고 또한 고아와 가난한 자들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도록한 것입니다(민18:21-31, 신12:5-8, 11-12, 17-19, 26:12-15). 당시 주변 사회에서 행하듯 신적인 존재에게 의무적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가난한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실천입니다.

 

3. 신약시대의 십일조

예수님으로 시작된 하나님나라의 '십일조'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완성되었습니다(마5:17-18). 모든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마22:37-40)임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의 물질은 이러한 두 가지의 큰 원리에 따라 사용되어야 합니다. 십일조의 유무효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으로 '드리고' 이것을 이웃과 어떻게 행복하게 '나눌'것인가의 문제입니다.

 

 

 

 

2017. 04. 16 주일 오전예배

 

 

골로새서 2:13-15

 

 

 

예수님 당시의 십자가는 흉악범을 사형시키는 형틀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곧 극한 죄를 지어 사형선고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십자가가 능력이고 신앙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기독교에서 십자가를 높이 세우는 것은 십자가 자체의 의미보다는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어둠의 권세들과 싸워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1. 승리의 원천(15절)

십자가로 '이기다(헬: '트라암뷰오')는 의미는 단순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 로마시대에 큰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포로와 전리품을 앞장세우고(참고,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당당히 행진하는 장군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모든 권세들을 이긴 승리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싸울 무기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참고, 고전2:2, 갈6:14)

 

2. 십자가의 능력(13-14절)

십자가의 능력을 다음의 5가지로 말씀합니다.

 '그와 함께 살리시고' : 죄의 삯인 사망을 이기고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리심.

 '모든 죄를 사하시고' : 십자가의 대속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심.

 '증서를 지우시고' : 마귀와의 모든 거래와 계약을 다 지우고 취소시켜 주심.

 '제하여 버리사' : 우리와 상관이 없도록 멀리 던져버리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죽도록 사형선고내리심.

 

3. 영적전쟁의 전략

영적전쟁을 싸워나가는 성도들은 세상의 권세, 물질, 명예, 지식 등으로 싸워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과 권세뿐입니다(고후10:4).

 

 

 

 

2017. 04. 09 주일 오전예배

 

 

여호수아 21:43-45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에게 큰 기대를 하면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나라를 세우기 보다는 십자가에서 죽음 을 맞이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낙심하여 뿔뿔이 흩어졌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는 완성되었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온 땅을 다 주셨으므로'(43절 상).

가나안땅을 주기로한 약속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데(45절), 그 땅이 완전히 정복되었을까요? 아닙니다(수13:1, 삿1:19, 21, 27-35). 가나안족속을 다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시기로한 땅에 대한 약속을 확증받았을 때 다 정복하지는 못했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제 자신들의 소유가 됐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만이 나의 소유가 아닙니다.

 

2. '거기에 거주하였으니'(43절 하).

가나안 땅에는 여전히 이방족속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사이에 거주하였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의 위협과 위험요소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거주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완전한 상황이나 상태가 아니라, 완전케하시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삶입니다.

 

3.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44절).

하나님나라의 안식은 아무런 위험요소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맞선 자가 없는' 상태의 안식입니다. 원수들은 주변에 있지만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을 때 안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 주셨기에' 우리의 힘으로 그들을 통제함으로써 안식을 누리는 곳입니다.

 

 

 

 

2017. 04. 02 주일 오전예배

 

 

사무엘하 7:4-16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를 구약시대의 '성전'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윗을 통하여 성전과 교회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고, 하나님나라의 삶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봅시다. 교회 건물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장엄한 분위기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모습일까요?

 

1. 성전은 무엇인가?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했을 때 하나님은 허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성전'이라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그저 '내가 살 집(히:바이트)'이라고 불렀습니다(5, 6, 7, 13절). 더구나 누구에게 건축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냐고 반문합니다(7절). 하나님에게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필요없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사는 집과 같으면 족하고 오히려 하나미은 다윗에게 믿음의 집을 세워주길 기뻐하셨습니다(참고, 7:14, 16, 29).

 

2. 왜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집을 지을 사람은 '네 몸에서 날 네 씨'라고 합니다(12절). 이때 이미 솔로몬이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함고, 1절). 그러면 솔로몬이 아닌 다른 후손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게 될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참고 요2:19-22).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울 하나님의 집을 굳이 다윗을 통해 '성전'처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고 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지어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분명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건물이나 예배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믿음의 집을 짓기 원하십니다(참고, 고전3:9-17). 때로는 하나님나라의 가장 큰 장애물이 선전과 교회가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