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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심과 흩으심

2017. 12. 31. 14:58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2. 31 주일 오전예배

 

창세기 10:31, 11:9

 

 

 

2017년을 되돌아보면서 새해를 맞이하기 앞서서 지나온 시간속에서 어떤 신앙의 자세로 살아왔는지 말씀을 통해 되짚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홍수심판 이후 노아의 아들들을 축복하여 온 땅에 '난(히:파라드)'셨지만 또한 반역하는 사람들을 '흩으(히:푸쯔)'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누심'과 '흩으심'이 있습니다.

 

1. 시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에서 하나님의 나누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예배, 기도, 봉사, 헌신, 섬김 등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흩으심은 분주함, 바쁨, 피곤, 짜증, 불평 등으로 나타납니다. 올해는 시간의 '나누심'의 은혜로 살아오셨는지요?

 

2. 물질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나누심은 드림, 헌신, 섬김 등으로 물질의 청지기직을 감당함으로 기쁨과 함께 겸손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흩으심은 가난, 부족, 불평, 사건사고 등입니다. 열심히 모으려고 하지만 새어버리고 마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누심에는 물질의 양이 아닌 보람과 만족이 있습니다.

 

3. 기도

하나님의 나누심은 이웃을 위한 중보기도입니다. 자신의 기도제목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고자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흩으심은 자신의 문제속에 빠져 기도보다는 염려, 걱정, 근심, 불안, 초조 등으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4. 사랑

하나님의 나누심은 헌신과 희생, 기쁨과 감사, 그리고 인내함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흩으심은 낙심, 실망, 상처, 부정적인 생각을 나타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인내하며,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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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속에 담긴 비밀

2017. 12. 24. 15:19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2. 24 주일 오전예배

 

누가복음 2:13-14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타생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찬양하는 천사들의 고백속에 놀라운 성탄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드러내는 하나님의 계획이자 뜻입니다. 이 비밀의 의미를 깨닫고 뜻 깊은 성탄을 맞이합니다.

 

1. 하늘과 따의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즈극히 높은 곳'이란 '하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땅'과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하늘'은 곧 '하나님' '영원' '생명'을 상징한다면 '땅' 이란 '세상' '유한'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서로 대조되는 개념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엡1:10). '하늘'이신 예수님이 '땅'에 임하여 그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 땅', '삶의 터전'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마6:10).

 

2.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들의 평화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은 철저한 율법준수가 그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적과 이적을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중의 평과'가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평화(히: 샬롬)'란 단순히 생활의 평안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걸림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더 이상 율법적인 삶에 매일 필요가 없고, 하나님 안에서 감사(고후4:15), 고백(빌2:11), 풍성한 연보(고후9:13), 선한 행실(벧전2:12) 등 우리의 실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들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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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적이 위험하다

2017. 12. 17. 15:22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2. 17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1:21-23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기적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판단하거나 부정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기적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성도들이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함께 살펴봅시다.

 

1. 기적은 지금은 일어납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인가의 한계나 자연의 경계를 뛰어넘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상들과 구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앙의 영역에서 '현상'은 일어나지만 우리의 이해력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런것은 하나님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겸손히 믿음의 대사으로 '신비'의 영역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2. 기적의 '현상'보다 담긴 '메세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는 이유는 기적 자체보다 하나님의 의도나 메세지를 더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적의 '메세지'보다는 기적의 '현상'에 더 관심을 가지다보니, 기적에는 열광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메세지에는 무관심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적이 단순히 현상만 쫒는 기형적인 신앙으로 변질시킬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3. 동정녀 탄생의 기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알려주는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출생의 의미를 이사야 7장 14절의 마씀을 이루기 위함임을 분명히 말씀해 줍니다. 그런데 이사야 7장의 배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않고 세상의 힘과 권세를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징조'가 바로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탄생의 기적의 의미도 동일하게 세상의 원리가 아닌 하나님의 원리에 따른 구원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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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치명적인 실수

2017. 12. 10. 15:03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2. 10. 주일 오전예배

 

민수기 20:10-13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의 끝나갈 즈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어 불평합니다. 이에 모세는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낼는 하나님의 말씀(8절)과는 달리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11절) 물이 나도록 했습니다. 작은 듯 보이는 실수가 모세에게는 치명적이 되어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소하지만 조심해야할 신앙요소는 무엇일까요?

 

1. 자기감정

약 38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가데스'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누이 미리암이 죽고, 출애굽2세들이 또다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감정에 빠져 화를내며 분노합니다. '감정'은 있어야 하지만 '자기감정'은 자신을 넘어지게 합니다.

 

2. 자기경험

38년 전 출애굽한 직후 르비딤에서 같은 일을 당했을 때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참고, 출17:5-6). 그래서 이번에도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그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3. 자기상식

지식이 굳어진 것이 상식입니다. 모세는 광야생활을 통해 어느새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게 됩니다(참고, 10절 '우리가...') 그러나 물을 내는 능력은 모세나 모세의 지팡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자기상식에 빠지면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습니다.

 

4. 자기 의

모세의 불순종에도 반석에서 물은 나왔기에 사람들은 모세의 실수를 알아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12절)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를 드러내기 보다는 하나님의 거룩합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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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림자'

2017. 12. 3. 14:52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2. 03. 주일 오전예배

 

로마서 7:21-25

 

 

 

심리학에서 외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페르소나', 내면의 가리워져 있는 나의 모습을 '쉐도우'라고 합니다. 이 두개의 자아가 때로는 갈들을 일으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이 탄식하며 고백하는 '곤고함'이란 이런 내적갈등으로 인한 것입니다. 믿음생활하는 성도들이 종종 이런 내적 곤고함'에 빠지는 원인을 분석하고 이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1. 내 안의 '나'를 인정합시다(21절).

비록 외적으로는 '건강한' 모습이지만 내면의 모습은 여전히 약하고 부족한 상태인 거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는 것과 숨기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생깁니다. 마귀는 약함을 감추고 강함으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성령은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저아길 바랍니다.

 

2. 내 안의 '나'를 드러냅시다(22-24절).

내 안에 있는 약한 '나'는 개선의 대상이지 문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바울이 자신의 약한 부분을 로마교인들에게 스스럼없이 고백하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회개, 고백, 탄식 등으로 숨김없이 드러내야 합니다. 숨길려고 할 때 마귀는 더 역사합니다.

 

3. 예수님께 감사합시다(25절).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약한 내면의 '나'를 새롭게 하고, 그 '그림자'를 ㅈ울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해결의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성령으로 행합시다(롬8장).

예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바로 성령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성령으로 행함으로 1장의 탄식이 8장의 횐희의 기쁨으로 바뀌는 것입니다(롬8:31-39). 성령으로 말미암지 ㅇ낳고는 내 안의 '나'를 바꿀 수 없습니다. 나를 넘어뜨리는 것은 바로 내 안의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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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는 열심히 배우게한다

2017. 11. 26. 13:27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1. 26. 주일 오전예배

 

호세아 4:6-10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알자'고 호소하였습니다(참고,호6:3).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안다' 또는 '지식'이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그 의미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지금 '하나님을 안다'는 성경적 바른 개념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아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안다'라는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말해주는 구절이 창4:1입니다. '동침하매'로 번역된 단어가 바로 '안다(히:야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는 방식은 단순히 논리적이나 정보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친히 동행하시면서 경험적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참고,출33:17).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닌 삶으로 말입니다.

2.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안다' '앎' '지식'의 개념은 삶으로 살아내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렘22:15-16은 '하나님을 앎'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임을 분명히 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서도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었음을 말합니다(요17:3, 25-26). 베드로 사도도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세상의 더러움을 피하는' 삶을 말씀합니다(벧후2:20-21).

3. 성경공부의 목적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많은 신앙의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하나님을 아는 삶'의 행위는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귀는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열심히 설교를 듣도록합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행위의 삶은 귀찮고 피곤하게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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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추수감사절

2017. 11. 19. 12:39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1. 19. 주일 오전예배

 

요한복음 7: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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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부담스럽다

2017. 11. 12. 15:13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1. 12. 주일 오전예배

 

고린도전서 15:9-11

 

 

 

성도들이 가장 받고 싶은 기도응답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도 '은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은혜의 의미를 여러가지 방향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자격없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또는 호의'입니다. 그 대표적인 은혜가 믿음과 구원이며, 우리의 일상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는데, 은혜받았으니 열심히 봉사, 수고하는 경우와, 은혜 속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는 경우입니다. 참된 은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은혜입니까?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공짜로 은혜를 주신다고 생각해서 은혜를 '싸구려'처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1.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신 은혜이고(롬5:15), 2. 분명한 목적이 있는 은혜이며(딛3:7), 3. 받은 은혜에 대해 반드시 결산(고전3:10)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입니다(고후6:1).

 

2.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입니까?

바울은 믿는 자들을 박해하던 자신을 사도로 세움받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며, 이 은혜를 따라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수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더 많이 수고'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해아는 삶이 은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3. 은혜받은 자는 어떤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목적이 '하나님과 함께함'이라면,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경말씀을 배우고 연구해야 하며, 그 말씀대로 우리의 일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교회 안이 아니라 밖에서 은혜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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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질문에 답하다

2017. 11. 5. 15:23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1. 05. 주일 오전예배

 

사도행전 4:5-12

 

 

베드로가 3장에서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장애인을 고친 사건으로 인해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는가?"는 질문에 베드로는 단호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했다고 대답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수한 질문을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들도 문제 앞에서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합니다. 여러분은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습니까?

 

1.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0절).

건강에 대하여, 재정에 대하여, 미래에 대하여, 세상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때 무언가 대단하고 놀라운 대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장의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거니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장애인의 인생문제에 답을 줍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입니다.

 

2. 세상지식으로는 이해 못할 수 있습니다 (11절).

이런 대답은 세상사람들에게는 식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시편에 미리 예언되었고(시편 118:22), 예수님도 스스로 언급하였으며(마21:42), 베드로 자신도 후에 다시 이것을 상기시켰던(벧전2:7) 말씀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존재의 가치를 설명합니다. 가장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건축자')도 그 가치를 몰라보고 버렸던 돌이 가장 중요한('머릿돌') 존재였음을... 세상의 전문가들도 인정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예수님이 해답입니다.

 

3. 그래서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12절).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Good News)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복잡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들의 환경의 모든 문제 속에서 해답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신앙의 전부롷 생각했습니다(참고, 행4:29-30, 고전1:22-24). 오늘날도 복음의 능력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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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열매가 아니라 나무

2017. 10. 29. 13:11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0. 29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7:20-21

 

 

결실의 계절인 가을입니다. 풍성한 결실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만족을 줍니다. 신앙의 결실은 영원한 기쁨을 주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큽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을 거짓 선지자들에게 대한 경고로 '나무와 열매'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도전은 무엇일까요?

 

1. 나무와 열매의 비유(15-20절).

거짓 선지자들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로 비난하시면서 이들의 모습을 너무나 상식적인 '나무와 열매'로 비유합니다. 나무가 좋으면 좋은 열매, 나무가 나쁘면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통해 '열매'보다 '나무'가 중요함을 말씀합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은 좋은 양의 모습을 할지라도 그 자체가 나쁜 나무이기에 좋은 열매는 전혀없다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의 적용(21-27절).

'나무와 열매'를 말ㅆㅁ하신 후에 두가지 신앙의 실제에 적용합니다. 먼저는 '주여 주여 하면서 많은 능력을 행하는 사람(21-23절)'과, 둘째는 '집을 짓는 사람(24-27절)'입니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드러나는 '열매'를 보고 판단하지만 예수님의 판단은 열매가 아닌 나무에 있습니다(21절, 23절, 27절). 예수님이 보시는 '나무'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21절)'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24절)'입니다.

 

3.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적인 '나무'보다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열매'를 강조하다보면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만한 것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다보면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만한 것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함이 없는 신앙'의 열매는 그 모양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쁜열매'이고 그 나무는 찍어 불에 던져야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함이 있는 신앙'의 열매는 그 모양과 사람들의 평가가 어떠하든지 간에 '좋은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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