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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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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에 해당되는 글 675

  1. 2017.10.01 창조의 하나님
  2. 2017.09.24 소방관과 예수님
  3. 2017.09.17 세상의 빛이 되자
  4. 2017.09.10 북방에서 오는 경고
  5. 2017.09.03 고난이 오면 비웃어라
  6. 2017.08.27 느끼지말고 해석하라
  7. 2017.08.20 착시(錯視)와 착각(錯覺)
  8. 2017.08.13 베드로의 유언
  9. 2017.08.06 너희도 가려느냐
  10. 2017.07.30 경건으로 위장한 반역

창조의 하나님

2017. 10. 1. 13:37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10. 01 주일 오전예배

 

시편 8:1-9

 

 

일전에 한 장관후보자의 일로 창조론과 진화론에 얽힌 해묵은 논쟁이 다시 일어났었습니다. 신앙과 과학이 서로간에 선명하게 설명될 수 없듯이 이러한 논쟁은 쉽게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창조에 관한 분명한 입장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창조과학'이 아니라 '창조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과학의 확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과학은 신앙을 설명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1. 우리가 믿는 것은 '창조론'이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창조론' 또는 '창조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과학 또는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학문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의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많은 부분에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대상입니다.

 

2.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구체적인 '창조'나 '진화'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성경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나 진화를 통해 주된 관심사는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반응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의 고백이 바로 창조의 하나님 앞에선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3. 성경해석에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침묵에 인간은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겸손함은 하나님이 열어주시고 깨닫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를 포함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지식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계시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경륜에 과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의 힘을 가지고 해석하려하면 안됩니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지혜와 때를 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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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과 예수님

2017. 9. 24. 15:13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9. 24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16:13-17

 

 

 

소방관의 주업무가 불 끄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일을 처리하는 직업이 되었듯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을 명확하고도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본업(?)에 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부수적인(?) 일에 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심과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바른 신앙과 삶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다음의 3가지 질문에 대답해 보세요.

 

1.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공적인 사영을 하시면서 예수님도 자신에 대하여 사람들과 제자들이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디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기뻐하시면서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자기정체성'은 바로 우리의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초요 교회의 뿌리입니다. 이외의 것은 부수적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시기 원하십니까?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직분으로서 '구원자' '회복자'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의 신분으로서 '인간이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든 믿는자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참고, 마1:21, 눅19:10, 히2:14-15)

 

3.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다면 우리의 삶은 단순해 집니다. 이제는 우리 삶의 모양과 모습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고난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21절).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24-25절). 무슨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하여 구원의 기쁨과 함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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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이 되자

2017. 9. 17.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9. 17 주일 오전예배

 

마태복음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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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에서 오는 경고

2017. 9. 10. 15:13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9. 10 주일 오전예배

 

예레미야 1:13-15

 

 

요즘 북한의 핵문제를 중심으로 주변 나라들과의 복잡한 긴장관계로 엄중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이념적, 계층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신양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당면한 무제들과 상황 앞에서 우리가 감당해야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신앙 회복에 집중해야 합니다(렘2:13).

하나님이 북방민족을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외교, 군사,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회복을 위한 방법입니다. 그 이유는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 나라드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당면문제들을 군사,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로 여기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고집을 다 버리고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2. 신앙인들의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렘7:3-6).

유다의 신앙문제는 예배나 헌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자기들만의 신앙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입니다(렘9:24). 하나님과의 관계인 '공의'와 함께, 이웃과의 관계인 '정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과 행함'과 같이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오늘의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3. 지도자들이 각성해야 합니다(렘6:13-15).

한 사회의 문제는 구성원 개개인보다 지도자의 문제로 시작됩니다. 어떤 지도자가 세워지는가에 그 공동체의 운명이 달렸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다의 문제는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부귀와 번영과 편안함만을 가르치는 거짓된 지도자들로부터 시작했습니다(렘5:26-31). 지금은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각성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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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오면 비웃어라

2017. 9. 3. 15:20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9. 03 주일 오전예배

 

이사야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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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지말고 해석하라

2017. 8. 27. 15:22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8. 27 주일 오전예배

 

신명기 8:1-3

 

 

신명기는 40년 광야의 방황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의 마지막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출애굽 2세들에게는 의문덩어리였던 40년의 방황의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깨닫는 것은 인생은 '느낌의 영역'이 아니라 '해석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1. 모든 삶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2절).

40년의 광야 인생을 통해 '광야의 삶'이 아니라 '광야를 걷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즉, 광야의 고달픔만을 기억하지말고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즉, 광야의 고달픔만을 기억하지말고 광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든 일에 의미를 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모양이나 상황보다는 하나님의 의도를 찾고 해석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과심이 있습니다(3절).

2절과 3절은 서로 댓구형식을 츃고 있습니다. 2절의 "네 마음이 어떠한지.."는 3절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오.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과 연결됩니다. 즉 광야의 삶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보시기 위함인데,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세상적인 '떡'으로 살려하는지, '하나님의 것'으로 살려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이 땅의 광야는 종착점이 아닌 경유지입니다(1절).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광야'의 삶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알고자 잠시 체류하게 하는 곳이지 영원히 정착 할 곳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떤 고난과 고통의 순간도 반드시 지나가고 가장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자 우리의 확고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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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錯視)와 착각(錯覺)

2017. 8. 20. 14:58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8. 20 주일 오전예배

 

사사기 6:11-14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영웅들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그러나 그러한 '영웅'들에게 눈과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불행한 것은 한번 '착시'와 '착각'이 일어나면 바르게 교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 인물들을 통해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일까요?

 

1. 위대한 영웅은 없습니다.

사사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기드온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이 많고(6:11,27), 말씀에 대한 의심과(6:17,33), 자만하기 쉽고(7:2), 우상을 만든 사람(8:27)입니다. 이런 모습은 기드온 뿐만 아니라 입다(10-11장), 삼손(13-16장) 등 다른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후에 등장하는 왕들의 면면도 별반 다를바 없습니다. 우리가 흠모할만한 영웅은 없습니다.

 

2. 영웅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이처럼 연약한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12절)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용사란 의미입니다. 또한 "이 네 힘으로"(14절)는 기드온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사사시대를 대변하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21:25)라는 것은 훌륭한 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는 영웅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3. 그래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영웅을 만들려 하고, 그 영웅을 통해 위안과 자신감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족한 인간을 영웅처럼 사용하시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사용하는 '하나님'을 보도록하기 위함입니다(참고, 히11:32, 12:1-2). 성경의 어떤 위인도 '위대한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위인들을 존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사로잡혀 사용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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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유언

2017. 8. 13. 14:58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8. 13 주일 오전예배

 

베드로후서 3:14-18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특별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참고, 1:13-14) 성도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권며는 무엇일까요? 베드로후서는 각 장마다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장은 "너희", 2장은 "그들", 3장은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각각의 대상들을 살펴보면서 베드로의 마지막 유언의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1. "너희"(1:5,8,12절)는 누구인가?

1장 1절에서 말하고 있는 일반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참고, 벧전1:1-2). 여전히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거짓된 가르침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입니다(2:1, 3). 초보적인 신앙을 가졌기에 신앙적 양육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2. "그들"(2:1,3,15)은 누구인가?

이들은 바로 '거짓 선지자('프슈도프로페데스')와 '거진 선생'('프슈도디다스칼로스')'입니다. '프슈도'는 '거짓' '가짜'의 뜻을 가진 접두사입니다. 즉 이들은 비슷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일반성도들 틈 속에 들어가서 교묘하게 미혹하고 유혹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2장에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사랑하는 자들"(3:1,8,14,17)은 누구인가?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고 신살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3:1-2). 자신들의 신앙을 거짓 선생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의 마지막 유언은 '너희들'이 거짓된 '그들'의 미혹에 넘어지지 않고 '사랑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에 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3:18).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미혹에 이끌려 사사로이 풀지 말고(1:20), 억지로 해석하지 말고(3:16),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도록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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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가려느냐

2017. 8. 6. 14:37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8. 06 주일 오전예배

 

요한복음 6:66-71

 

 

 

이른바 '오병이어' 사건은 너무나 놀라우 사건이어서 4복음서에 다 기록될 정도로 사도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각인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이며 예수님은 무슨 의도로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일까요? 단순히 먹는 문제 해결일까요? 작은 헌신이 놀라운 기적을 만든다는 것일까요? 이 표적으로 인하여 오늘 본문에는 세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른 신앙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봅시다.

 

1. 떠나가는 사람들(66절).

'제자'로 표현되어지는 사람들은 12제자가 아니라, 기적과 표적을 보고 열성적으로 따르는 무리들을 일컫읍니다(참고,14-15절, 24절, 28절). 그러나 정작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는 '수군거리며'(41절), '어렵다'고 하며(60절),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따라다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면 언제든지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2. 배신하는 사람(70-71절).

남아 있던 12제자들 중에서도 마귀의 지배를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가룟유다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애국자요, 민족조의자요,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처럼 보이지만 메시야인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에 예수님을 끼워 맞추려는 성향의 사람입니다. 겉모습은 제자이지만 내면의 모습은 예수님이 자신의 뜻에 따라주길 바라는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입니다.

 

3. 영생의 말씀에 머무는 사람(68-69절).

놀라운 표적을 경험했지만 표적 자체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표적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헬: '레마')을 통해 예수님께 붙어있는 사람들입니다.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고 예수님께 주목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신앙이 건강하고 바른 신앙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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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으로 위장한 반역

2017. 7. 30. 15:05 | Posted by 소망지기

 

 

 

 

2017. 07. 30 주일 오전예배

 

예레미야 4:1-4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의 요시야왕 13년(나이21세) 때부터 입니다(렘1:2).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요시야왕은 국운이 기울어 가던 시기에 가장 활발한 영적개혁을 이룬 왕입니다(왕하22-23장, 대하34-35장). 우상을 제거하고, 제단을 헐고, 성전을 재건하고, 유월절을 지키면서 말씀으로 돌아가는 신앙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에 대한 심판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을 '진심이 아니라 거짓'(렘3:10)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런 문제는 없을까요?

 

1. 형식이 아닌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1절).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은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것(회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목적지(하나님)'가 중요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이 신앙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신앙과 성전은 우상이 되고 맙니다(참고, 렘7:1-4).

 

2. 삶의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2절).

요시야 왕의 주도로 신앙개혁을 이루면서 잃어버린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일을 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견한 듯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삶을 요구합니다. 모든 삶의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이 되길 바라고, 하나님만 드러나길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3.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3-4절).

'묵은 땅을 갈고'라는 것은 방치되었던 신앙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할례'란 이러한 회복은 행위보다 앞서 각자의 마음과 생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수동적인 행위는 언뜻보면 열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발적인 신앙이 아니라 강요된 신앙이기에 새명이 없습니다. 결국 강요된 열심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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