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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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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한 사람

2022. 10. 23. 12: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23.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상 14:6-7
제목 : 행동하는 한 사람

 

 

모두 숨죽이고 있을 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을 때,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말씀을 듣고 읽어도 감동이 없을 때, 그러나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 갈 때 성도들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할 때 진퇴양난의 상황에다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책망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참고, 13:13-14). 이런 상황을 반전시킨 사람은 바로 그의 아들인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이 보여준 믿음의 모습을 함께 살펴봅시다.

1. 행동하는 한 사람(6-7절).
이스라엘 백성은 다 흩어지고 남은 600명으로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상대해야 할 사울은 자기 안전에만 신경 쓰고 있습니다(참고, 2절). 이때 요나단은 비록 혼자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적진으로 달려갑니다. 그 결과 20명 정도의 적군을 죽이는데(참고, 14절), 이 여파로 전쟁의 승기를 잡게 됩니다. 걱정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2. 숨겨진 사람들(20-21절).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앞두고 블레셋 영토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강제로 징집되어 전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동족과 상대로 싸워야 할 이들이 요나단의 모습을 보고 도전받아 오히려 블레셋 군인들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다 적군으로 보이지만 믿음의 헌신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숨겨 놓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함께 일하게 하십니다.

3. 숨은 사람들(22-23절).
이런 상황을 도망가 숨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다가 다시 돌아와 함께 싸움으로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현 상황만 보면 혼자지만, 순종하여 헌신하면 숨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도전을 주어 삶과 신앙의 회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국, 요나단 한 사람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화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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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밭을 보라

2022. 10. 21. 22:11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16. 주일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4:35
제목 : 눈을 들어 밭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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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아픈 손가락

2022. 10. 9. 12:27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09. 주일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후서 2:4
제목 : 바울의 아픈 손가락

 

 

2차 선교 여행 중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1년 6개월을 머울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떠났습니다(참고, 행18장).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바울은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고(고전5:9), 사람을 보냈고(고후9:3), 자신도 몇 번 다녀올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쏟았습니다(고후13:1). 그 이유는 가장 특별하게 여긴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들이 바울을 아프게 하는 손가락일까요?

1. 자기애적 우월주의(고전 1:17).
고린도전서 1장에서 교회의 분열 상태를 언급하면서 바울이 베푼 세례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그 이유는 바울의 세례가 분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바울에게서 세례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세례가 가장 가치있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람의 경력도 자랑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참고, 고전1:29-31).

2. 주관적 지식주의(고전 2:6-8).
고린도 지역은 상업과 학문이 발달한 곳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인간이 가진 지식과 지혜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으로 이해하고, 자신이 경험한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일부의 교인들이 바울에게는 아픈 손가락들이었습니다.

3. 영적 엘리트주의(고전 3:1).
'신령한 자'(헬: '프뉴마티코스')란 말은 바울 서신에 24번 사용되었는데 고린도전서에서만 15번 사용될 정도로 영적인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을 향해 어린 아이들로 취급하겠다고 합니다. 영적인 삶이 단순히 성령의 은사를 나타내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며 영광 돌리는 신실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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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성숙의 내적 결실

2022. 10. 2.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2.10.02. 주일오전예배
본문 : 에베소서 3:7-9
제목 : 신앙성숙의 내적 결실

 

 

에베소서는 바울의 사역 후반기에 로마 감옥에 갇혔던 시기에 쓴 옥중서신입니다. 사역중에 틈틈이 쓴 바울의 편지에는 사역 초기의 자신감으로 가득한 열정에서부터 사역 후반기로 오면서 보다깊고 풍성한 노사역자의 영적 성숙과 그 결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갖은 역경을 이겨내면서 걸어 온 바울의 인생을 통해 성도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해지고 그에 따른 열매를 맺는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해 봅시다.

1. 긍정(7절).
바울은 감옥에 갇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일꾼'임에 큰 자부심이 있습니다. 현 상황이 주는 아픔이나 무게에 눌리지 않고 그러한 상황까지 모두 수용하면서 오히려 더 담대히 자기 삶에 대한 가치를 자랑합니다(참고, 13절). 신앙이 무르익을수록 살아온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2. 겸손(8절).
초기 바울의 편지를 보면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참고, 행9:26, 갈2:11-14).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겸손하고 남을 낫게 여기는 모습으로 변모합니다(참고, 고훕12:1-2, 딤전1:13). 겸손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의 전제는 자격을 갖추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자격을 가지려다 교만에 빠지고 맙니다.

3. 갈망(9절).
경륜이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서 늘 새롭고 예측 불가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오랜시간 쌓아 올린 자기 업적이나 결과물에 만족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고백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기도도 오직 한가지 예수님의 더욱 깊이 아는 것이었습니다(참고, 15-19절). 결국, 가장 아름다운 결실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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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십년

2022. 9. 25. 12:24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9.25.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도행전 9:26-30
제목 : 침묵의 십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된 바울은 즉시로 복음을 전하지만 죽음의 위기를 겪습니다(참고, 23절).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지만 또다시 죽음의 위협을 당하는 바울을 형제들이 고향인 다소로 보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왜 다소로 보냈을까요? 십년동안 아무런 기록이 없는 다소 생활을 마친 바울은 놀라운 하나님 구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참고, 행 13장).

1. 복음에 대한 깊은 묵상의 시간.
비록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에 합당한 지식 없이 자신이 가진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년의 침묵곳에서 깊은 말씀의 묵상과 이해를 얻은 후에 행한 전도에서는 많은 구원의 열매와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참고, 행13:16-41). 우리에게도 봉사나 사역보다 먼저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과 교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는 깨어짐의 시간.
바울은 독립심과 독자적인 추진력을 갖춘 아주 주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변화되자마자 혼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십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겸손하게 되고 협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옆에있는 사람을 세울 줄 아는자가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바울을 높이고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깨달음의 시간.
변화된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의 신임을 받는 것이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몇십년의 시간을 보낸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무명의 도시인 안디옥에가서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의미를 깨달은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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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고백

2022. 9. 18. 12:26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9.18. 주일오전예배
본문 : 사무엘하 23:1-7
제목 : 나의 마지막 고백

 

 

누구에게나 마지막 순간은 찾아옵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이 사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피할 일도 아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온 다윗이 마지막을 맞이하면서 고백하는 모습에서 우리도 어떤 마지막을 맞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함께 귀 기울여 봅시다.

1. 내가 고백하는 나(1절).
다윗은 자신을 '높이 세워진 자', '기름 부음 받은 자', '노래 잘하는 자'로 고백합니다. 자기 삶을 자수성가한 성공인으로 고백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삶임을 고백합니다. 가장 낮은 목동에서 시작해서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성취감이나 자부심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고 예배하며 살아온 삶이었음을 고백합니다.

2. 하나님이 고백하는 나(3-4절).
하나님이 다윗을 향해 '공의로 다스리는 자',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이게도 인간적인 약점과 허물이 많았음에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으로서 행한 어떤 업적이나 치적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떤 마음과 믿으믕로 살아왔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결과보다 살아내는 과정입니다.

3. 삶이 고백하는 나(2절, 5절).
다윗은 자기 삶의 마지막을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확신으로 마무리합니다.(참고, 6-7절). 그 이유는 자기 삶을 '영원한 언약' 아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성령도 '말씀이 혀에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듯,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삶이 인생의 마지막을 큰 확신과 당당함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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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성장의 3가지 요소

2022. 9. 11. 12:18 | Posted by 소망지기

 

2022.9.1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6:13
제목 : 믿음 성장의 3가지 요소

 

 

어떻게 생활하면 믿음이 잘 자랄까요? 교회 예배에 빠지지 않고, 말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많이 하면 믿음이 자랄까요? 이런 것들은 좋은 믿음의 결과이지 수단은 아닙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본받아 흉내 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배워서 우리의 신앙에 그대로 적용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통해 믿음이 자라는데 필요한 요소를 살펴봅시다.

1. '부르사' = 지금, 여기서 시작합니다.
예쑤님은 특별한 사람 중에서 사도를 세운 것이 아니라, 평소 따르던 많은 제자 중에서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여기서(Here), 지금(Now), 이것으로(This) 시작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특별한 환경이나 상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현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이 믿음 성장에 좋은 시간입니다.

2. '택하여' = 세밀하나 부분까지 믿음의 선택을 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를 택하실 때 세상적인 스펙으로 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하셨습니다. 믿음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좋은 신앙이란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믿음의 선택을 하지만,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경우는 믿음의 선택이 세밀하지 못하고 자의적이거나 원칙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믿음은 바른 '선택'을 먹고 자랍니다.

3. '칭하셨으니' =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합니다.
비록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선발된 12명의 제자의 면면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도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믿음의 선택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자기 주변의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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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치명적 반전

2022. 9. 4. 12:20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9.04. 주일 오전 예배
본문 : 야고보서 1:17-18
제목 : 믿는 자의 치명적 반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고 섬긴다는 사실은 단순한 종교적 신념을 넘어 삶의 가치나 태도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수 안에서 믿는 자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반전은 이 땅의 삶은 물론이요 영원한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종교적 행위에 열심을 내기보다는 일어난 변화에 합당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활로 이어져야 합니다.

1. 삶의 반전 =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사와 선물(17절).
타락한 인간은 땀 흘려 수고하며 사는 형벌을 받았습니다(창3:17-19). 그런데 예수님으로 인해 성도들에게 필요한 '은사'(헬: '도시스' = 공급, 제공)와 선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욕심낼 필요 없이(참고, 15절) 범사에 자족하면서 감사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2. 존재의 반전 = 피조물 중에 첫 열매(18절 상).
성경은 사람이든 가축이든 수확물이든 첫 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첫 것을 통해서 나머지 것도 하나님의 소유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피조물 중의 하나인 성도를 첫 열매로 삼으셨다는 것은 우리의 가치를 높여 주시고 존재감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든 만물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감의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3. 관계의 반전 = 피조물에서 자녀로(18절 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예수 그리도로 인하여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사람만이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태어난' 하나님 자녀들입니다. '피조물'이 '자녀'가 되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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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의 치명적 매력

2022. 8. 28. 12:21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8.28. 주일오전예배
본문 : 창세기 1:26-28
제목 : 믿는 자의 치명적 매력

 

 

다른 사람에게는 많은 관심과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정의를 내립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형편은 각기 다르지만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공통적인 정체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신도 몰랐던 나의 모습, 또는 잊혀진 나의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요?

1. 내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27절).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외적인 모양이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과 소통하며 공유할 수 있는 성품이나 성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외적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비록 자기 모습이나 성격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잊지 맙시다.

2. 나는 이미 복 받은 존재이다(28절).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미 복을 주었습니다. 이 복은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히 거하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을 죄로 인하여 잃어버렸고, 세상적인 복에 미혹되어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 회복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나는 세상을 다스릴 사람이다(26절).
하나님은 인간 창조의 필요성을 '다스림'에 두었습니다. 이 '다스림'은 힘의 우위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다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관리'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처해있을지라도 그 상황을 능히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어서 환경에 지배받기보다는 오히려 다스릴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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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의 치명적 착각

2022. 8. 21. 12:23 | Posted by 소망지기

 

2022.08.21. 주일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3:5-9
제목 : 믿는 자들의 치명적 착각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순간적인 판단의 오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착각은 단순한 착오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광야와 요단강에서 사역하는 세례요한에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찾아옵니다. 어쩌면 이들은 기존의 종교인들과는 다른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례 요한으로부터 신랄한 책망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신앙에 대한 착각
율법과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 하나님이다'라고 착각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지 '하나님에 관한' 무엇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믿었기에 세례 요한은 광야와 요단강에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바울은 이방 나라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2. 무리에 대한 착각
자신의 틀을 버리지 않고 '무리' 속에 머물러 있다고 같은 무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 요단강에 세례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단순한 '이동'에 불과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 것은 단순히 무리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동'은 '변화'가 아닙니다.

3. 구원에 대한 착각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의 구원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참고, 눅19:9). 이 구원은 혈통이나 종교적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이미 받은 성도는 구원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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