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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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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예배입니까? 대면 예배 입니까?

2020. 9. 13. 12:32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9. 13.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로마서 12:1

제목 : 비대면 예배입니까? 대면 예배 입니까?


비대면 예배입니까? 대면 예배입니까?

 

비대면 예배라는 신조어가 일상화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혼란과 오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면예배는 우리의 생명이다고 외치는 목회자들이 있는 반면,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야하기에 비대면 예배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과연 성경이 말하고 예배의 참 의미와 모습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로마서 121절의 의미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장까지 어떻게 구원을 받을 것인가?’의 내용이라면, 12-16장까지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121절은 11장까지의 내용을 결산하고 앞으로 이어질 주제에 대한 도입 부 역할을 합니다. , 구원의 방법과 구원에 합당한 삶은 영적 예배로 이어짐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적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 교회예배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제사나 예배나 하나같이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예수님은 한결같이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예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님에도 사람들은 성전예배가 예배의 전부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예배는 어떤 모습일까요?

 

3. 예배는 드림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는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산 제물이란 단순히 육신의 생명이 붙어있는 생명체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생기로 인하여 생령이 된(참고, 2:7)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영적 예배란 성령의 임하심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회복해야 할 예배의 참모습을 새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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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주 특별합니다.

2020. 9. 5. 20:01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9. 06. 주일 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후서 2:14-16

제목 : 우리는 아주 특별합니다.


우리는 아주 특별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병들게 하는 곳이란 오명을 쓰는 상황에서 함께 예배드리지 못한지도 3주째를 맞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신앙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성도들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성도의 거룩한 자존감을 잃지 말고 성도의 신분에 맞게 당당한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1. 우리는 예수님의 양입니다(참고, 10:27)

성경에는 하나님과 믿는 자들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데,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자녀’, 또는 하나님의 것’(1:6) ‘등으로 표현합니다. 이 모든 관계적인 수사는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은 하나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특별함은 아들인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낼 정도입니다. 비록 현실은 힘들지라도 그 특별함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행복해집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고후2:15).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향기입니다. 향수병 안에 들어있으면 그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밖으로 뿌려졌을 때야 비로소 그 냄새를 풍기듯이, 우리는 지금 비대면 예배로 곳곳에 흩어진 것은 세상에 뿌려진것입니다. 우리는 모여있을 때나 흩어져 있을 때나 예수님을 전하는 향기입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감당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사명자입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참고, 고후3:3).

편지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편지의 내용, 즉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복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코로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지에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항상 재난 속에서 믿는자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기초가 복음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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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양들의 운명

2020. 8. 30. 10:36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8. 30.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요한복음 10:22-28

제목 : 흩어진 양들의 운명.


제목 : 흩어진 양들의 운명

 

지난 주에 <흩어져야 산다>는 제목으로 거짓 목자의 우리에서 흩어져야 참 목자인 예수님을 따라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흩어진 양들이 예수님을 목자로 섬기기 위해서는 선한 목자인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또다시 거짓 목자의 꾐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따르는 양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1. “내 음성을 들으며

양들은 자신을 인도하는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자의 음성이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데, 선한 목자와 거짓 목자를 분별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거짓 목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 선한 목자는 자신을 던져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합니다. 따라서 대면 예배냐’, ‘비대면 예배냐와 같은 방법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복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2. “나는 그들을 알며

안다라는 의미는 단순한 지식적인 앎이 아닌 경험을 통한 인격적인 앎의 상태입니다. 또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참고, 14-15).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를 알고 있듯이 우리 또한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지식은 우리의 일상에서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양이 목자를 따르는 것은 강제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그 이유는 선한 목자를 따를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는 경험적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만을 바라보고, 목자만을 의지하고, 목자만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전부이자 유일한 소망이 될 때 진정한 성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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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야 삽니다.

2020. 8. 23. 10:25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8. 23.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에스겔 34:7-10

제목 : 흩어져야 삽니다.


<흩어져야 삽니다.>

에스겔은 25세의 나이에 베벨론으로 포포로 끌려와 30세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포로된지 12년 후, 결국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하루 전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참고, 겔33:21-22).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진 이유와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대면예배 금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하나님의 음성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1. 흩어진 이유는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34:1-6)

34장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나라의 멸망 이유는 바른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5절). 이스라엘에 지도자들은 많지만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함으로 인해 백성들이 흩어졌듯이,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진정한 신앙의 지도자가 없음이 코로나19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2. 흩어져도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합니다(9-31절)

흩어짐으로 인한 두려움이 떠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줍니다. 다시 히복시키며(10-12절), 구원하며(10-13절), 좋은 꼴로 먹이며(14-16절), 심판하며(17022절), 언약을 맺을 것(24-31절)을 말합니다. 이는 거짓 목자들로 인해 뿔뿔이 흩어짐과 포로됨이 결코 망하거나  죽는 것이 아님을 말ㅇ씀합니다. 흩어짐이 오히려 구원의 기회가 됩니다.


3. 흩어져도 하나님이 목자가 되면 살 수 있습니다(15절)

거짓 목자들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양 떼를 뿔뿔이 흩어지게 하겼고, 결국 하나님 자신이 선한 목자가 되어서 양 떼를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합  니다. 그렇다면 흩어짐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보다는 선한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양으로 살아갈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은 양이 목자를 따르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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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확실함

2020. 8. 16. 12:28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8. 16.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베드로전서 1:7-9

제목 : 믿음의 확실함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는(참고, 6절) 디아스포라 교인들에게 위로와 권면을 주기 위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고난과 연단속에 있는 성도들이 빠질 수 있는 그릇된 신앙관이나 이단들의 미혹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고 바른 믿음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면하는 현실적 상황을 기준으로 신앙이 좋고 나쁨을 판단하려는 경향 속에서 진정한 믿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1. 예수를 보지 못하나 사랑합니다(8절 상).
예수님은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유물이나 형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예수님의 복음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관은 보고, 만지고, 경험해 봐야 신뢰하고 믿는다고 합니다. 믿음의 확실함이란 인간의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예배하는 헌신입니다.

2.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합니다(8절 하).
사람들은 즐겁고 행복하게 살길 원합니다. 특히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즐거움이나 기쁨의 원천은 세상적인 것에 두지 않고 '영광스러운'것에 둡니다. 이는 곧 현실은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성도의 삶으로, 말씀과 기도와 예배함으로, 천국소망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3. 영혼의 구원으로 만족합니다(9절).
현실의 고난 속에서 몸부림칠 때 뭄제의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귀의 미혹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심, 불평, 원망, 불순종,.. 등, 하나님에 대한 신뢰과계가 무너지고 맙니다. 이는 믿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확실함은 세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이루고, 영생의 소망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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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가는 성도

2020. 8. 9. 12:40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8. 09. 주일 오전예배

본문 : 고린도후서 4:1-2

제목 : 한 길 가는 성도



바울은 자신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하여 구차한 변명이나 제 삼자의 추천서가 필요 없는 이유(참고, 3:1-2)를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나 사역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당당하게 주어진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4가지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으로 각자의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1.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1절).
낙심하지 않는 근거를 자신의 능력이나 환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mercy, 은혜)'에서 찾습니다. 여전히 죄인임에도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당당하게 사역할 수 있습니다(참고, 7:11, 6-18). 신앙의 원동력은 오직 은혜.

2.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2절 상).
사람들은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기에 드러나는 행동에 조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그리고 내적인 마음과 생각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신앙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3.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2절 중).
'속임(헬: 파누르기아)'이란 아주 교묘하고 그럴듯하게 속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믿음을 말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이용하는'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2절 하)
'혼잡(헬: 돌로스)'의 원래의 의미는 '섞다' '희석하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형편에 따라 적당히 변질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전파하는 것은 오직 진리인 예수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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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밀이 크도다

2020. 8. 2.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8. 0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에베소서 5:31-33

제목 : 이 비밀이 크도다


*** 음성이 녹음이 안 되어 영상을 삭제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바울은 5:22부터 6:9까지 가정 안에서 부부관계, 자녀관계, 종의 관계에 대한 신앙적인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부부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 담긴 비밀이 바로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참된 부부관계 속에 있는 참된 교회관은 무엇일까요?

1. 교회는 질서 공동체입니다(5:22-24)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과 아내의 역할이 구별되어 있어야 질서가 생깁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맡은 역할을 감당해야 가정이 건강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과 기능이 구별되어야 질서가 있습니다. 이 질서는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지는 심리적 질서이며, 세상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은사가 기준입니다.

2. 교회는 사라의 공동체입니다(5:25-30).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예수님처럼 '자신을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25절). 그렇다면 예수님이 교회에 베푸시는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인간적인 사랑을 넘어 말씀과 은혜로 날마다 정결하고 거룩한 믿음의 삶으로 인도하는 사랑입니다(26-27절). 교회는 인간적인 사랑과 배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과 은혜로 교제하는 사랑을 해야합니다.

3. 교회는 연합의 공동체입니다(5:31-33).
부부가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듯이 교회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로 연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떠나'야 합니다. 부부가 각자의 삶의 영향력에서 떠나 서로에게 맞추어 가며 살듯이 교회도 세상적인 관점이나 경험에서 떠나 그리스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경험에서 '떠나온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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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나비효과

2020. 7. 26.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7. 26.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출애굽기 1:15-22

제목 : 영적 나비효과




'나비효과'란  보잘것없이 사소한 사건이 나중에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신앙에서도 처음에는 사소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나중에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게 만드는 '영적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출애굽의 대 구원역사가 모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평범한 두 여인의 나비효과임을 기억해야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에 헌신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서막을 여는 출애굽기의 시작은 고통스러운 애굽생활을 그리고 있습니다(참고, 출1:1-14). 지도자 모세가 등장하기(출 2장) 전에 십브라와 부아라는 산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바로의 명령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두 여인의 '나비효과'입니다.

2.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합시다.
두 산파는  애굽의 바로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경외하는 사람이기에 바로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합니다. 바로라고 하는 두려움의 존재보다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길 때 그 생명들이 바로 '나비효과'입니다. 성경에는 육적인 생명보다 더 중요한 생명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생명입니다. 복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 훨씬 보람된 사역입니다. 영적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합시다.

3. 순종함으로 헌신합니다.
상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많은 산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 산파의 대부분은 바로의 명령에 순종했겠지만, 십브라와 부아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 일이 발각되어 바로 앞에 서게 되는 위기(18절) 앞에서도 꿋꿋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현재의 순종이 고통스럽지만, 오랜 후에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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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2020. 7. 19. 12:30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7. 19.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17:5-10

제목 : 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의 의지대로 크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큰 믿음으로 많은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 드리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큰일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봅시다.

1. 내용의 배경(5절).
1절의 상황('예수께서 제자들에게...')과 5절의 상황('사도들이...')은 서로 다른 사건입니다. '제자'는 말 그대로 스승에게서 배우는 사람의 의미이지만,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 제자들이 어떤 사역을 하러 갔다가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낙심하고 돌아와 예수님께 푸념하면서 '큰 믿음을 주세요'하는 상황입니다. 큰일을 할 수 있는 믿음이란?

2. 겨자씨의 비유(6절).
'큰 믿음'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첫번째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겨자씨'입니다. '겨자씨'가 작은 것의 상징이라면, '뽕나무'는 뿌리가 깊이 박히는 식물의 상징입니다. 이 두가지 대비적인 비유를 통해 '큰 믿음'이란 외적인 모양이나 능력이 아니라, 내적인 생명력에 있음을 말씀합니다. 세상이 기대하는 '큰일', '큰 능력', '많은 결과'가 아니라, 비록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큰 믿음임을 말씀합니다.

3. 종의 비유(7-10절).
두번째 비유는 '종'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은 노예로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평가를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종의 모습을 상기시키면서 '일의 결가'보다 '일하는 태도'를 말씀합니다. 즉, '큰 믿음'이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앞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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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무지를 벗어라

2020. 7. 12. 12:41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7. 1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마가복음 9:23-29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크게 두가지 내용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말씀들입니다. 이런 내용을 듣고 배우고 그대로 전했습니다('파라티데미'). 그런데 오늘날의 성경 이해는 말씀 중심이 아닌 듣는 사람들의 상황과 형편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변질되고 있을까요?

1. 사건의 배경(14-22절).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 못하는 귀신들린 아이를 놓고 변론하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귀신을 쫒아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탄식하며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하시며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믿는 자에게는 못할 일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2. 능력보다 믿음이 우선입니다(23절).
'믿음'이 마치 도깨비방망이처럼 이해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의 문제에만 매여있는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하니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함입니다. 문제해결의 능력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먼저 구할 때 기적은 믿음을 따라 나타납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3. 기도를 부탁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29절).
문제해결을 못 한 이유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문제를 놓고 '변론'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를 놓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한번도 기도를 '부탁하라'는 말은 없고,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이는 곧 기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문제해결의 능력을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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