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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김포한강4로 278번길 7-15(석모리 882-2) 교회 031-996-9100 목사님 010-2500-2004 e-mail : jaekimpst@gmail.com 선교후원 : 농협 301-0068-48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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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말씀'에 해당되는 글 708

  1. 2020.02.09 사탄의 교회 전략
  2. 2020.02.02 사탄의 기도 전략
  3. 2020.01.26 사탄의 고급화 전략
  4. 2020.01.19 새 언약의 삶
  5. 2020.01.12 떠날 수 없는 이유
  6. 2020.01.05 가짜와의 전쟁
  7. 2019.12.29 한 해의 마무리
  8. 2019.12.22 예수님의 시작
  9. 2019.12.15 에클레시아의 교회
  10. 2019.12.08 에클레시아의 열매

사탄의 교회 전략

2020. 2. 9. 15:10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2. 09.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에스라 5:1-2

제목 : 사탄의 교회 전략

 

 

사탄은 기도생활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로 방해하는데,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도록 하지만 결국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기만족에만 머물게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성전은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성전을 열심히 재건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이유를 살펴보면서 각자의 신앙을 점검해 봅시다.

1. 신앙의 중심에는 성전(교회)이 있어야 합니다.
고레스 왕 원년에 포로에서 돌아와(스1:1, BC 538년) 폐허가 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 하지만(스3:8, BC 536년), 여러 가지 방해로 인해 16년간 공사가 중단됩니다(스4:24, BC 520년). 이에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함께 성전을 재건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서 공사를 독려하여 중단되었던 재건공사가 4년만에 완공됩니다(스6:15, BC 516년).

2. 학개가 성전(교회)을 지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선지자 학개가 다리오왕 제2년(학1:1, BC 520년)에 성전재건 공사를 다시 사작할 것을 권면하자(학1:7) 다시 공사가 시작됩니다(학1:14). 그러나 공사 시작 후 1개월 만에 성전의 규모에 낙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임을 전하고(학2:3-5), 또다시 2개월 후에(학2:10) 거룩한 삶으로(학2:14) 예배해야 함을 전합니다.

3. 스가랴가 성전(교회)을 지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학개와 같은 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슥1:1). 성전 재건공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고(1장-6장), 세워질 성전에 하나님의 임재(슥8:3)와, 장차 예수님의 입성을 예언하고(슥9:9), 죄사함(슥13:1)과 하나님의 왕되심(슥14:9)을 말씀합니다. 사탄은 열심히 성전을 짓기만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미혹하지만, 하나님은 성전을 통하여 왕이신 하나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영적 삶으로의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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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기도 전략

2020. 2. 2. 12:42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2. 0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6:33

제목 : 사탄의 기도 전략

 

 

사탄은 우리의 기도생활을 끊임없이 방해하려고 하는데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우선은 기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기도를 하게끔하지만 잘못된 기도 응답을 받게하여 기도를 중지시키려 합니다. 출애굽기 32-33장의 모세의 기도를 참고해서 사탄의 기도전략을 분석해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성경의 가르침을 상고해 봅시다.

1. 기도는 문제해결에서 멈추면 안됩니다(출33:1-2).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하나님께 간절희 기도합니다(참고, 출32:32). 이에 하나님은 사자를 앞서 보내어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는 응답을 주십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이 기도응답이기에 여기서 기도를 멈춥니다. 그러나 모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 기도합니다. 기도의 최종목적은 문제해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기도는 환경의 변화나 마음의 평안에서 멈추면 안됩니다(출33:14).
모세는 하나님이 친히 함께 갈 것을 요구합니다(출33:12-13). 이에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가서 모세에게 쉼을 누리게 하겠다고 응답하십니다(출33:14). 많은 기도자들이 이것이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기도를 멈춥니다. 그러나 모세는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기도응답이 환경이 바뀌거나 마음의 평안이 임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출33:18, 마6:33).
모세가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 기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은 기도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결론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의 궁극적인 응답은 우리가 가진 염려가 해결되는 것이나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란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경험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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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고급화 전략

2020. 1. 26. 14:57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1. 26.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마가복음 7: 5-9

제목 : 사탄의 고급화 전략

 

신앙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되지만, 그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때때로 사람이 만든 가르침이 하나님의 가르침보다 앞서고 중요히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위 신앙의 고급화란 하나님의 말씀보다 가치 있게 여겨지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신앙의 고급화 전략을 살펴봅시다.

 

인간화(Anthropomorphosis)

인간화란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는 정도에 따라 신앙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사람에게 완벽하게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를 필요로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도록 주신 것입니다(3:20). 그런데 사탄은 사람이 만든 규례와 전통을 준수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능히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미혹시킵니다.

 

2. 합리화(Rationalization)

신앙의 합리화란 다수의 사람이 인정하는 논리나 이치로 신앙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합리화가 오랜 시간 인정받을 때 전통이 됩니다. 그런데 합리화의 주체는 바로 사람인데, 사람의 측면에서 볼 때 성경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나 신앙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합리화가 언뜻 고급스럽게 보이긴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는 경우가 많습니다(8, 9, 13).

 

3. 체계화(Systematization)

동일한 신앙으로 모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조직화, 체계화시킬 때 보다 고급스런종교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자칫 내용은 잃어버리고 형태만 남는 화석화현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손 씻는 문제를 마음의 문제로 설명합니다(20-23). 이는 이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신념만을 섬기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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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의 삶

2020. 1. 19. 14:43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1. 19.  주일오전예배 - 조필대 목사

고린도후서 3:6

 

영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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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이유

2020. 1. 12. 12:39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1. 1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출애굽기 33:7-11

 

 

지난주에 여호수아를 통해 '유사 신앙'과 '참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일평생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 여호수아의 신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참 믿음의 신앙은 어느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사역에 귀하게 쓰임받을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신앙의 훈련과 과정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믿음의 요소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막이 만들어지기 전에 임시 예배처소로 회막을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마치고 모든 사람이 다 흩어져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배 인도자나 예배 분휘기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동하고 하나님만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해야 합니다.
모세의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에게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모세의 능력('두나미스')은 하나님이 주신 권세('엑수시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권세'를 구해야 합니다.

3. 죄를 심각히 여겨야 합니다.
지금 상황은 금송아지 사건(32장)으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습니다(33:5). 그런데 여호수아는 금송아지 사건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참고, 32:17). 그러나 금송아지 사건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회막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죄는 물론이고,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의 죄악일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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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와의 전쟁

2020. 1. 5. 12:38 | Posted by 소망지기

 

2020. 01. 05.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여호수아 24:18-22

 

 

2020년의 신앙목표가 '전하고, 권하고, 가르쳐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을 전파하고 세우기 위해서는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신앙의 3대 요소로 '경외함' '온전함' '진실함' (14절)을 말합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자칫 신앙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오늘 본문에서 살펴보면서 각자의 신앙을 점건해보고 주변 신앙인들에 바른 믿음을 전하고 권하고 가르칩시다.

1. 경외함의 이기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이유를 '가나안을 주고 자신들을 보호함'에 찾습니다(16-18절). 이에 여호수아는 19절에서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호와를 '경외함'이란 어떤 이유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이유를 오직 하나님께 둬야 합니다.

2. 온전함의 합리주의.
'온전함(히: 타밈)'이란 성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원래의 의미는 '끝까지 가다' '완수하다' '끝마치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신앙을 확인하는 이유는 '완벽한'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상관없이 변치않고 끝까지 한결같은 믿음을 가질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적당한' 신앙보다 '한결같은' 신앙이어야 합니다.

3. 진실함의 상대주의.
'진실함(히: 에메트=진리, 진실)'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신앙을 의미압니다. 상황과 형편에 따라 신앙의 기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직 점령할 땅이 많이 남아있음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를 환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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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무리

2019. 12. 29. 15:10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29. 주일 오전예배

본문 : 야고보서 2:18-22

 

 

오늘 본문은 2019년을 시작하면서 첫 주일 설교본문이면서 올해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에 안주하지 않고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을 강조했던 한 해였습니다. 교회 안에 머물며, 예배의 참여자가 아니라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에클레시아'의 회복을 꿈꾸는 2019년이었습니다. 2019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 동안 도전 받은 말씀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1. 온전한 믿음을 추구합시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는 것은 귀신들도 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님을 강조합니다(19절). 그렇다면 온전한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22절에서 분명한 대답을 줍니다. '믿음과 행함이 함께 일하는'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 행함과 믿음이 함께 드러나는 신앙을 추구해야 합니다.

2. 일상의 신앙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실행되는 현장은 우리의 일상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삶의 현장은 바로 우리 자신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 세가지 현장 속에서 믿음이 뿌리내리고 자라서 열매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곧 믿음의 현장이자 예배처소입니다.

3. 믿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행함이란 행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항상 '위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속에서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 뜻을 깨달아 성취해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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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작

2019. 12. 22. 14:28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22.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마태복음 2:1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수 천년 전에 미리 계획하신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참고, 창3:15).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오신 아기 예수는 베들레햄에서 탄생하는 것을 시작으로, 예루살렘으로, 애굽으로, 그리고 나사렛으로 그 장소를 옮겨가는 것을 봅니다. 이런 과정 속에 깃들어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살피고,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낮아지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는데, 작은 시골인 베들레햄의 마구간의 구유에, 세상 왕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고, 나사렛이란 성경에 등장하지도 않는 시골 촌 구석에서 목수의 아들로 성장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지만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2. '변두리'에서 사작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변두리'를 싫어합니다. 모두가 세상의 중심과 중앙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신앙의 중심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 주변이나, 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가치관과는 달리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세상의 '중심'이자 세상의 '중앙'이기 때문입닌다.

3.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시작으로 모든 삶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베들레햄에서 출생(6절), 헤롯의 위협 속에서도 예루살렘 성전으로(눅2:22), 애굽으로 피신(14-15절), 나사렛에 정착(23절) 등, 모든 상황에서 삶을 결정하는 기준을 말씀이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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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교회

2019. 12. 15. 15:11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15.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누가복음 19:45-46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드을 다 내쫒으시며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이 성전청결 사건은 우리가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케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성전'이나 신양시대의 '교회'는 모두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함께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집
"내 집:이란 하나님의 집을 말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모든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서전을 통해 자신들의 유익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장소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교회란 웅장한 건물이나 화려한 예식이 중요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영광돌리도록 구별된 거룩한 곳입니다.

2. 기도하는 집
'기도하는 집'이란 항상 기도만 하는 곳이란 의미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장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구함으로서(예, 눅11:9-13, 렘29:12-13) 하나님의 뜻 가운데 문제해결을 요청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3. 섬기는 집
본문과 연결되는 내용이 요한복음 2장에 등장합니다. 성전을 헐면 사흘동안에 다시 세우겠다(요2:19)는 말씀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자신의 육체임을 말합니다(요2:21-22). 결국 교회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섬김의 도구로 내어 놓는 곳입니다. 교회는 '이용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섬기러' 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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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클레시아의 열매

2019. 12. 8. 15:09 | Posted by 소망지기

 

2019. 12. 08. 주일 오전예배

본문 : 디모데후서 4:16-18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죽음을 예감하면서 쓴 가장 마지막 서신서입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돌아보며 느낀 소회를 믿음의 아들이자 신앙의 후배인 디모데에게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 성도들이 걸어가는 믿음의 길의 끝에서 어떤 결실을 맺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에클레시아로서 사역과 신앙의 열매가 무엇일까요?

1. 예수 그리스도(17절, 18절 상)
삶의 마지막(참고, 6절)을 맞이하면서 오랜 사역기간 동안 잃어버리고 떠나간 많은 것들이 있었겠지만(참고, 16절) 끝까지 늘 함께하시는 분이 '주님'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란 것을 깨닫고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열매는 결국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면서 세상에 보여 주고싶은 열매는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님입니다.

2. 진리의 말씀(17절: '선포된 말씀' = '케리그마')
바울은 일생동안 많은 교회개척과 기적과 이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했지만, 그 사역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사역은 바로 말씀을 '온전히 전파'(헬: '플레로포레오')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역경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이유를 진리의 말씀이 변질되지 않고 온전히 전달되는 것에서 찾고 있듯이, 사역의 규모보다 진리의 말씀이 열매입니다.

3. 사람(16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렸고(눅23:34),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그와 같이 용서의 기도를 드렸듯이(행7:60), 바울도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을 다 품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의 열매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역도 결국은 사람을 살리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도구가 아니라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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